한국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이른바 K-콘텐츠가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세계인의 환호를 이끌어 내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이 한류 콘텐츠의 대표 아이콘으로 우뚝 선 가운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등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신한류 콘텐츠가 세계 시장의 자본을 움직이고 있다. 아이돌 그룹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까지 다각화 된 한류 콘텐츠 산업은 국내는 물론 해외 주식시장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더팩트>는 세계화된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 이면의 비즈니스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엔터Biz'를 통해 집중분석한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한림 기자]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메타버스 NFT 등 새로운 사업 모델을 통한 수익 창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공지능(AI)이나 가상현실(VR),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활용한 무형 자산의 상품화를 통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활발한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을 개척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시장 성장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홍보나 마케팅 분야에서는 여전히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상품 판매고를 높이기 위해서는 광고 모델이나 인플루언서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최근 업계에서는 '가상 인간'이 화두다. 가상 인간은 3D 그래픽이나 모션캡처 기술 등의 발달로 온라인 상에 구현된 가상의 인물을 뜻한다. 이들은 유튜브 채널이나 광고 모델로 등장해 사람처럼 말을 하고 춤을 춘다. 언뜻 보면 실제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정교하게 구현돼 있어 대중의 이목을 더욱 끌고 있다.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가 대표적이다.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가 MZ세대가 선호하는 외모와 분위기를 조합해 개발한 로지는 나이와 생일, 취미, 혈액형, MBTI 등 설정도 함께 공개된 가상 인간이다. 특히 로지는 2020년 8월 처음으로 SNS 게시물을 올린 후 특유의 외모와 분위기로 인기를 모았으나, 약 4개월 간 자신이 가상인간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면서 많은 누리꾼들을 놀라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로지의 주 활동 영역은 버추얼 인플루언서라는 직업답게 SNS와 광고, 마케팅 분야다. 신한라이프 광고 모델을 통해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후 팔도 '틈새라면' 광고 모델, GS리테일 전속모델, KGC인삼공사 '정관장 화애락 이너제틱' 제품 모델, 패션 플랫폼 W과 공동 마케팅 체결 등을 통해 활동 반경을 넓히며 '핫한' 신인 연예인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신한라이프에서 진행한 방송인 홍석천과 최재철 전 외교부 기후변화 대사와 대담을 나눈 유튜브 영상에서는 MC를 맡아 목소리를 최초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로지는 오는 22일 앨범 발매 소식을 전하면서 가수 데뷔도 눈 앞에 뒀다. 여기에 최근 영화 전문 잡지 씨네21이 선정한 '2022년 주목해야 할 작품과 배우'에서 주목해야 할 신인 여자배우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른 바 '가상 연예인'의 행보를 걸어가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몸값만 10억 원(추정치)에 달하는 로지의 행보에 대해 엔터계의 새로운 사업 모델이 될 것으로 입을 모은다. 우선 가상 연예인이기 때문에 스케줄을 소화할 때 코디나 매니저 등 인건비가 들지 않는다는 것과 연예인이 가장 주의해야 할 스캔들이 없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실존하지 않기 때문에 소속사(개발사)와 계약 기간이나 수입 분배 등 계약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영원히 늙지 않아 피부 관리나 운동 등 자기관리도 필요 없을뿐더러 최근 연예계를 덮치고 있는 코로나19 이슈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에 로지를 필두로 타타대우상용차의 모델로 나선 가상 인플루언서 미스 쎈, CJ온스타일의 가상 인플루언서 루이, 롯데홈쇼핑의 자체개발 가상 모델 루시, LG전자의 가상인간 김래아 등 가상 연예인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반면 가상 연예인의 등장을 지난 1998년 데뷔해 가요계에 충격을 안겼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사이버 가수 아담의 사례처럼 보는 이도 적지 않다. 아담과 로지의 그래픽이나 구현 기술에 대한 차이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아무리 인기를 얻어도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팬이나 대중들의 시선이 언제든 바뀔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또한 사이버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일부 온라인 상에서 구현된 버추얼 인플루언서나 글로벌 가상 모델 등의 경우, 딥페이크로 대표된 악의적 합성이나 사이버 범죄에 이미지 타격을 입고 서비스를 종료하거나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사례가 있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모든 연예인이 데뷔와 동시에 스타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중의 큰 관심을 얻어 스타 반열에 오르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부대비용이 발생한다. 다만 과거와 달리 사업이나 마케팅 등이 모두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현 시대에는 가상 연예인에 대한 존재감이 남다르다. 이들의 활동 반경이나 영향력은 비용 절감이나 대중 장악력 차원에서도 큰 메리트가 있어 앞으로도 가상 연예인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인공지능이나 가상현실에 대한 윤리 규범이 명확히 자리잡히지 않은 시점에서 가상의 인간이 사이버 범죄 수단으로 비춰질 경우 대중에게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또 마케팅 수단으로 개발된 가상 인간은 대체로 외형적인 측면에서 완벽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외모지상주의로 번져 대중의 상대적 박탈감이나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수준의 역효과도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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