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강일홍 기자] "노래가 맘에 든다며 딱 한번만 부르게 해달라는거예요. 밤에 집까지 찾아와 간청을 하는데 어쩌겠어요. 아끼는 동생이라 어쩔수 없었죠. 아, 그래서 빌려준 노랜데 지금껏 안돌려주니 참 거시기 합니다."(가수 겸 탤런트 김성환)
"노래만 먼저 취입 했지 성환이 형님이 불렀을 땐 전혀 알려진 곡이 아니거든요. 작곡가 조운파 선생님이 제가 부른 뒤 진짜 주인을 만났다며 무릎을 친 곡이에요. 잠깐 빌려준거라고 우기시지만 사실 저는 형님 집이 어딘지도 몰랐어요."(가수 현당)
조운파 작사 작곡의 '정하나 준 것이'는 가수 현당의 대표곡이다. 음반은 탤런트 겸 가수 김성환이 먼저 냈지만, 실제 히트의 기쁨은 현당이 맛봤다. 그는 나이트 카바레 등 야간업소를 전전하며 무명시절을 겪다 이 곡이 히트한 뒤 20년 가까운 긴 무명가수 꼬리표를 뗐다.
전혀 조명을 받지 못하던 곡이 손바뀜 후 빅 히트곡으로 탈바꿈하는 건 가요계에선 흔한 일이다. 장윤정의 인생곡 '어머나'는 주현미 김혜연 등 무려 5명이 가사가 낯간지럽다며 거절했던 곡이고, '꽃나비 사랑'은 강진 박상철 등을 물리치고 무명가수 이상번이 불러 히트했다.
애초 슬로곡이었던 이 노래를 현당은 빠르고 신나는 디스코 리듬으로 바꿔 불러 인생곡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전국노래자랑'에서 부른 이후 불과 몇달 사이에 가는 곳마다 저를 찾더라"면서 "노래가 히트한다는 게 가수한테 어떤 변화를 주는 것인지를 가슴 뜨겁게 맛본 노래"라고 말했다.
'가슴이 답답해서 창문을 열고 새벽 찬바람 마셔봐도/ 님인지 남인지 올건지 말건지 이 밤도 다가고 새벽달 기우네/ 내 너를 잊으리라 입술 깨물어도 애꿎은 가슴만 타네/ 정 하나 준 것이 이렇게 아픈 줄 몰랐네 아 몰랐네'(가수 현당의 '정 하나 준 것이' 가사)
이 곡은 인트로 부분의 피리 연주가 압권이다. 특히 '님인지 남인지 올건지 말건지'나 '이 밤도 다가고 새벽달 기우네' 부분은 한국적 정서가 밴 친숙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특히 '새벽달 기우네'는 '새벽 닭이 우네'로도 들리고, 중의적 가사 의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히트곡이 탄생하려면 노래도 좋아야 하지만 운도 따라줘야 한다. 현당은 운좋게도 주변에서 도움을 많이 줬다. 유명 코미디언이었던 고 백남봉이 생전 방송과 행사 무대에서 애창곡으로 많이 불렀고, 김성환도 나중엔 자신의 곡처럼 자주 부르며 일조했다.
이 곡은 또 사랑과 이별에 대한 애끓는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만큼 가요교실을 통해 유명해진 노래이기도 하다. 스타 가요강사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송강호가 전국의 가요교실 단골 레퍼토리로 이 곡을 춤을 추며 소개해 히트 저변확산에 기여했다.
현당은 음악적 자질이 뛰어나 일찌감치 유명 작곡가 고 박춘석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고도 뜻을 펼치지 못했다. 음반을 준비하던 중 작곡가가 쓰러지는 바람에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마침 군복무 직후 그는 생계를 위해 야간업소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언더그라운드에 묻혀있던 그는 가수 조용필과 동서지간이었던 JM프로덕션 고 김종민 대표에 발탁되면서 마침내 가능성을 연다. '정하나 준 것이' 히트 이후 그는 '타인' '경의선' '어머니' '사랑이 깊으면' '명동의 밤' '태종대의 밤' 등 대중 친화적인 노래들을 불러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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