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작품, 어떤 것도 놓치지 않는 진중함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의 깊이를 알 수 있을 때가 종종 있다. 매사 허투루 생각하는 것 없이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답변을 내놓기 때문이다. 배우 김혜준이 그렇다. 작품을 대하는 자세도 임하는 마음가짐도 진중한 김혜준이다.
김혜준은 최근 종영한 JTBC 주말드라마 '구경이'(극본 성초이, 연출 이정흠)에서 해맑은 사이코패스 케이 역을 맡아 주인공인 구경이와 대적하는 인물로 활약했다. 작품의 주된 내용은 게임도 수사도 버벅대는 걸 못 참는 강력팀 형사 출신 구경이(이영애 분)가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극 중 케이는 무해한 인상으로 무차별적인 살인을 즐거운 놀이처럼 즐기는 인물이다. 그는 모든 죽음을 사고사 등으로 완벽하게 위장해왔지만 구경이에게 정체를 들키며 대립을 시작, 작품의 한 축을 담당했다.
대본을 한 자리에서 진득하게 읽지 못한다는 김혜준에게 '구경이'는 예외였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5회까지 한 번도 쉬지 않았다. 신선하고 독특한 작품과 극본은 김혜준을 매료시켰다. 여기에 이영애의 출연까지 더해지며 김혜준으로서는 출연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살면서 이영애 선배님이랑 또 언제 연기를 해보겠어요.(웃음) 좋은 극본에 멋있는 선배님까지, 고민해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해 바로 출연하고 싶다고 연락드렸죠."
물론 부담감도 존재했다. '구경이'는 방송 전부터 이영애의 복귀작으로 이미 큰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김혜준은 혹시나 누를 끼치진 않을까 걱정되기 일쑤였다. 그는 "이영애 선배의 복귀작인 데다, (이영애 외에도) 평소 존경하는 선배님들이 많이 출연하는 작품이었다. 더군다나 케이는 극 중 주인공의 목표인 크고 중요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내가 빌런으로서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어느 정도 갖고 촬영을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 부담감을 떨치려고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었단다. 김혜준은 "촬영장에서 칭찬이 마를 날이 없었다. 뭐만 해도 '케이 같다'고 칭찬과 격려를 계속 들었던 것 같다"며 어느새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전 복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부담이나 압박 등을 떨치기 위해 노력하기도 전에 감독님과 선배님들이 항상 칭찬을 해주셨거든요. 특히 선배님들과 대적할 때면 비등비등하거나 기에 밀리면 안 되는 캐릭터인데, 이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전에 선배님들께서 먼저 다가오셔서 길을 열어주고 이끌어주셨어요. 덕분에 전 편하게 연기했던 것 같아요."
'해맑은 사이코패스'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부분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김혜준은 "케이의 대사 중에는 연극적인 것도 많고 만화 같은 설정도 많다 보니 너무 오바하고 과장을 하는 게 아닌지 고민이 많아질 때가 종종 있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고민 또한 마찬가지로 촬영장에서 해소됐다.
"방향을 잡지 못할 때마다 '걱정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감독님의 피드백이 있었어요. 그래서 감독님을 믿고 대본에 집중했죠. 케이가 사회성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사회성'이라고 받아들이니 이해하기 쉽더라고요. 보통 사람과 달리 작위적이고 삐그덕거릴 수밖에 없는 거죠. 또한 연극을 통해 사회에 녹아드는 친구이기 때문에 이후에는 오히려 오바스러운데 서툰 느낌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첫 방송이 된 후, 감독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유쾌하고 이상한데 끌리는 점, 감독님께서 생각했던 포인트라는 걸 깨닫는 순간 '아 감독님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고 깨달았죠.(웃음)"
즐거웠던 촬영장의 기억 때문인지 김혜준은 아쉬움 가득한 종영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출연자로서 자랑스럽고 시청자로서 재밌게 봤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행복한 마무리를 했다. 다만 더 이상 촬영장을 못 나간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케이의 결말은 만족스러울까. 극 중 케이는 결국 감옥에 들어가고, 팀원들과 함께인 구경이와 달리 캄캄한 어둠 속에서 혼자 남겨져 한 줄기 햇빛을 갈구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 사람은 진짜 죽일 놈이야'라는 말에 반응하며 살인할 때의 눈빛을 보이며 소름을 안겼다.
김혜준은 이 결말에 대해 격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케이의 마지막이 작가님과 감독님이 보여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며 "케이가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만 골라서 죽이지만, 어찌 됐든 '살인'이라는 케이의 판단은 오만하고 잘못됐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구경이 팀과 대조되는 케이의 모습이 안쓰러움을 자아낼 수도 있을 텐데, '죽일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여전히 눈빛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살인자' 케이는 변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라 좋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작품이 케이의 서사를 자세히 보여주지 않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했다. 극 중 케이는 어린 시절 산에서 일련의 일을 겪고 사이코패스 성향이 발현됐지만, 그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김혜준은 "감독님은 처음부터 내게 '케이가 안쓰럽고 사람들의 본능적인 분노들을 속 시원하게 긁어주기 때문에 응원을 받을 수는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만 그려서는 안 된다. 결국은 나쁜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작품이 말하고 싶은 주된 내용이다. 케이는 나쁜놈들을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살인을 저지르지만, 사실 이 문제는 감히 개인이 판단할 가치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고민했어요. 문득 이 점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악행을 저지르는 이들이 꼭 계기를 갖는 건 아니잖아요. 이유 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케이도 마찬가지예요. 잘못을 저지른 케이에게 당위성을 부여해 연민의 대상이 돼선 안 돼요. 그때부터 저도 케이를 온전히 이해하기보다는 '그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웃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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