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기획한 '서울드라마어워즈'에 집착하는 이유
[더팩트ㅣ강일홍·이한림 기자] 빌보드 새 역사를 쓴 방탄소년단(BTS), 아카데미 시상식을 빛낸 '기생충'과 '미나리', 넷플릭스를 점령한 한국 드라마·영화 등 한류 콘텐츠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 세계에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류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뒷받침이 더욱 절실한 때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더팩트> 취재진은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사무소에서 취임 6개월 째를 맞아 분초를 쪼개가며 현장을 뛰고 있는 황희 문체부 장관을 만났다. 바쁜 가운데서도 글로벌 한류 확산과 정부 역할에 관한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한 그는 15년 전 서울에서 열린 최초의 국제 드라마 축제 '서울드라마어워즈'를 처음으로 기획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 문체부 장관에 취임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중점적으로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처음부터 강조했던 것은 소통입니다. 정부는 일반적으로 국민들에게 국가 정책을 홍보한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홍보의 방향은 소통의 개념입니다. 국민들의 의견을 어떻게 하면 충분히 받을 수 있을 지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정책 수요자들의 리듬을 파악했습니다. 이를 위해 물리적으로는 저부터 많은 사람을 만나도록 노력했고,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무조건 현장으로 나가자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이든 진행하는 것 자체가 문체부에서 할 일입니다.
-아, 그렇군요. 문화 산업화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소통 다음으로는 문화에 대한 산업화 부분에 신경을 썼습니다. 문화 뿐만 아니라 체육 관광 예술 영화 드라마 OTT 등 하나하나 시장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시아문화전당, ABC협회, 이건희 컬렉션 등 국민들이 문화예술을 함양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했습니다. 한국의 글로벌한 성장도 더욱 알려야겠죠. 이를 위해 외신 프레스센터도 새롭게 정비했습니다. 예술인 권리 보장법이 통과됐고 보상들이 시작됐습니다. 여러가지 문제가 됐던 부분들을 자율적으로 가기 위한 로드맵도 만들었습니다. 여러 민감한 현안들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생각합니다.
황희 장관은 지난 2월 제 52대 문체부 장관에 임명됐다. 1997년 김대중 총재실 비서로 정치에 입문한 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참여수석·홍보수석실 행정관 등을 역임하며 소통에 강점을 보였다. 도시계획 전문가로 불렸던 20·21대 국회의원(서울 양천구 갑)과 국회 국방위 간사를 맡으며 전문 분야를 더하기도 했지만, 정부는 그를 소통이 중요시되는 문체부로 다시 불러 들였다.
- 한류에 대한 위상이 나날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BTS 기생충 미나리 K팝 K드라마 뿐만 아니라 게임 웹툰 K뷰티 K푸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산하고 있는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모두 창의성이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창의성이 있는 부분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훼방만 놓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요. 판을 잘 깔아주는 게 정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창의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우수한 제작자들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샌드박스 같은 공간을 만드는 것에 꾸준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년 2000억 원 정도씩 모태펀드를 잡아서 마중물 역할을 하게 하고, 일반 예산 추경을 통해 청년 예술인 창작을 지원하는 등 다방면에서 구체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응용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이 단단해야 합니다. 비교적 관심이 떨어지는 순수예술 분야도 끊임없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문화 예술 행정에 대한 깊이가 느껴집니다. 구체적으로 좀 더 말씀해주신다면.
더 나아가 우리 문화가 해외에 나갔을 때 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창구 역할을 하는 아웃바운드를 창작하고 있습니다. 그간 대사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문체부 문화원이 중심이 돼서 진행합니다. 한류 콘텐츠들을 한데 모아둔 'K-엑스포' 같은 것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간이나 토대를 구축할 수 있는 것들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그럼에도 문화계는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공연이나 콘서트는 열리지도 못하고 있는데요.
올해 10월과 11월에 많은 공연 기획이 예정돼 있어 시간이 지나면 어느정도 완화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를 지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는가'라는 안타까운 목소리도 나옵니다. 문제는 코로나19 방역지침으로 공연장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공연장이 아닌 체육시설 같은 곳에서 한다고 해도 수용인원이 매우 제한적입니다.
'위드 코로나'를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선 인지하는 게 고민 해결의 출발이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장·차관 실무자를 포함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문가 한 명의 전문성보다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 사람의 의사가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라기보다는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황희 장관은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움을 겪는 문화계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때로는 전문가보다 일반 사람의 의사가 더 맞을 때도 있다고 말할 때는 어려움을 겪는 현장을 찾아 눈으로 직접 보고 그들에게 들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조금 전에 들은 것 마냥 생생하게 전하고 공감했다.
다만 한류 콘텐츠를 활용한 국가적 사업 방향에 대해서는 확신에 찬 눈빛과 어조로 답변해 눈길을 끌었다. 기대감에 부풀어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던 이야기도 섞어가면서 초심을 되짚었다.
-15년 전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올해 16회 째를 맞은 국제 드라마 시상식 '서울드라마어워즈'의 최초 기획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유관부서 장관으로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또 한국에서 만들거나 열리는 '국제 페스티벌'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도 궁금합니다.
최초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입니다.(웃음) 제가 '서울드라마어워즈'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시 K팝 이야기를 하자면, 올해 국가 차원의 'K팝 페스티벌'과 내년 'K팝 어워즈'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K팝의 종주국이고 콘텐츠가 있는 나라인데 외국 사람들이 한국을 오면 K팝을 어디서 봐야하는지 묻습니다. TV 앞으로 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드라마 '겨울연가'가 나왔을 때 정부가 드라마에 대한 지원을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당시 저는 문화가 중심이 되는 4차 산업 보고서를 대통령께 올렸습니다. 드라마가 유행하다보니 드라마를 지원하는 것보다 시장을 형성하면 하나의 산업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봤습니다. 업체에 5억 원을 줘서 드라마를 만들라고 하는 것보다 그 5억 원을 가지고 직접 드라마를 유통하는 시장을 만들자는 개념입니다.
-추진 과정이 생각 만큼 쉽지 않았을 텐데요.
전문가들을 많이 모셨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나 기획재정부 임직원들, 엔터테인먼트 컨슈머들 업계 관계자들 등 다양한 분들 모셔서 비공식으로 '서울드라마어워즈(당시 월드드라마페스티벌)'를 출범했습니다. 한 달간 프리섹션 기간에는 각국의 출품 작품을 보게 하고, 다음 한 달간 매인섹션에서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의상을 가지고 패션쇼를 한다거나, 음악으로 콘서트, 촬영 장소 관광 등 다양한 매개체로 확장하는 그런 형태입니다.
당시 이 얘기를 듣던 사람들은 막 흥분을 했습니다. 밤에 만나도 피곤해하지 않았고 너무 재미있었죠. 매우 고무적이었습니다. 이런 페스티벌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듣고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문체부 장관인데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디자인을 한 사람이니 방송협회와 지속적으로 이런 논의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울러 OTT 시장도 더욱 확대되고 있으니 박차를 가해야 할 중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계속 유지될 수 있느냐로 보입니다.
지속성이 중요합니다. 드라마 뿐만 아니라 K팝 영화 게임 웹툰 메타버스 등 이런 것들이 모두 스토리로 연결돼 있습니다.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공간이나 랩시설 등을 지원하는 부분을 내년 예산에 반영해 놨습니다. 이런 시장을 만들고 연결이 된다면 대형 시장을 리드할 수 있습니다. 원대한 꿈이지만 이뤄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