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곡㉛] 김흥국 '호랑나비', 따라부르기 커버송 '원조'

호랑나비는 30여년간 가수 김흥국의 상징 이미지로 굳었다. 이후 2년 뒤인 91년에 자신의 두번째 히트곡 59년 왕십리를 발표하면서 또 한번 주목을 받는다. /더팩트 DB

'흔들흔들 춤' '둘리 춤' 등과 함께 각종 춤 경연대회 단골 소재

[더팩트|강일홍 기자] 월드컵가수, 콧수염, 왕십리 등 김흥국에게 붙은 별칭은 많다. 특히 콧수염 외모는 박상민 장계현 배철수 등 몇몇 가수들과 함께 그의 대표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하지만 김흥국의 독보적인 애칭은 따로 있다. 다름아닌 '호랑나비'다.

'호랑나비'는 30여년간 '가수 김흥국'의 상징 이미지로 굳었다. 배따라기 출신 싱어송라이터 이혜민이 작사 작곡한 '호랑나비'는 89년 발표됐다. 당시까지 무명이었던 김흥국은 나비가 갈지(之) 자로 나는 듯한 비틀거리는 춤을 선보여 일약 스타가수로 부상했다.

'호랑나비'의 열풍은 가요계를 휩쓸만큼 뜨거웠다. 그해 제4회 골든 디스크 인기가수상과 MBC 10대 가수상 등을 수상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춤과 함께 만들어진 코믹한 이미지 덕분에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하며 주가를 올렸다.

"요즘엔 대세 히트곡을 흉내내 부르는 커버송이 유행인데요. 당시엔 동료가수나 잘나가는 후배가수들이 리메이크 곡으로 많이 불렀죠. '호랑나비'는 노래도 노래지만, 이벤트 행사로 전국적으로 춤 경연대회도 많이 했어요. 끼많은 아마추어들이 연예계로 진출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고요."

김흥국은 '호랑나비 춤'에 이어 '흔들흔들'과 '새침떼기' '둘리 춤'을 개발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90년대 초 중반 최고의 방송 예능프로그램으로 군림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스트로 출연해 '심하다 심해'와 '거의 나의 독무대야'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밭에 앉아 있는데/ 아니 도대체 왜 한 사람도 즐겨 찾는 이 하나 없네요/ 하루가 지나가도 아무리 기다려도 찾는 이도 없는데 왜/ Woo 멍하니 기다리네 꽃 위에 머무르네 속상해서 못 살겠네/ 랄라랄라 랄랄라랄라 호랑나비야 날아봐/ 랄랄라랄라 랄랄라랄라 구름 위로 숨어라'(김흥국 '호랑나비' 1절)

김흥국은 나비가 갈지(之) 자로 나는 듯한 비틀거리는 춤을 선보여 일약 스타가수로 부상했다. 호랑나비 춤에 이어 흔들흔들 새침떼기 둘리 춤 등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더팩트 DB

'호랑나비'의 히트는 라디오 프로그램과도 무관치 않다. 그는 MBC 라디오 '싱글벙글쇼'를 36년간 진행한 강석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서울 번동에 살았던 김흥국은 라디오 DJ 강석(월계동 거주), 고 이종환(석관동 거주)과 데뷔전부터 이웃 동네 선후배로 살았다.

이들은 무명가수 김흥국을 위해 라디오 등에 앞다퉈 소개하며 끈끈한 형제애와 의리를 지켰다. 지난해 강석이 MBC 라디오 '싱글벙글쇼' 마이크를 떠났을 때 김흥국이 눈물을 흘렸던 건 이 때문이다. 그는 "언젠가는 마이크를 떠나게 마련이지만 평생 은인같은 분이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호랑나비' 이후 방송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김흥국은 2년 뒤인 91년에 자신의 두번째 히트곡 '59년 왕십리'를 발표하면서 또 한번 주목을 받는다. 닥터레게, 공일오비, 룰라 등 레게음악이 유행을 타던 94년에 선보인 '레게파티'도 김흥국 스타일 곡으로 인기를 얻었다.

서라벌고 졸업 후 해병대에 입대한 그는 전역하자마자 록 밴드 '오대장성'을 결성해 드럼 연주자로 활동한 뒤 85년 '창백한 꽃잎'이라는 곡으로 정식 데뷔했다. 88년 2월 MBC '인간시대-정아의 겨울일기'라는 프로그램에 밤무대 무명가수의 모습으로 출연한 바 있다.

김흥국의 히트곡은 '호랑나비'와 '59년 왕십리' 등 달랑 두 곡 뿐이지만 가수로서의 존재감은 변함이 없다. 히트곡이 많지 않아도 그는 뛰어난 가창력의 가수보다는 예능적 끼와 익살로 주가를 올렸기 때문이다. 대중적 시선을 받는 인지도와 명성으로만 보면 그는 다분히 예능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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