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성사, 피카디리극장과 함께 종로3가 극장가 호령도 '옛말'
[더팩트ㅣ종로=이한림 기자] '아듀! 서울극장' '서울극장과 이별의 시간을 갖다' '고마웠어요 서울극장'.
1980년대~1990년대 한국 영화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종로3가 극장가의 상징'이 이달 말 서울극장 폐관을 끝으로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온오프라인에는 아쉬움과 고마운 마음으로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글들과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관수동에 위치한 서울극장은 1979년 개관한 후 한 때는 3개 지점까지 넓히며 번성했다. 같은 종로3가에 위치했던 단성사, 피카디리극장과 함께 국내 극장가를 호령했지만 디지털화된 초대형 배급사 중심의 멀티플렉스 등에 밀리며 폐관을 거듭했고, 서울극장마저 문을 닫으며 막을 '추억의 종로3가 극장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서울극장은 지난 11일부터 폐관의 아쉬움과 극장 관객들에 대한 보답으로 무료 상영회를 열고 있지만 쓸쓸한 분위기를 지우긴 어려워 보인다. 이벤트는 '고맙습니다 상영회' 이름으로 오는 31일 문을 닫는 날까지 진행된다.
상영회에서는 극장 측이 선정한 '폭스캐처' '몽상가들' '쥐띠부인' '러브 어페어' 등 명작 영화 19편(특별·프리미어 상영작 포함)을 매일 100명(주말 200명)에게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무료티켓을 제공하는 형태다.
폐관 소식이 알려진 뒤 지난 11일 오후 현장을 직접 찾아가봤다. 대형 멀티플렉스사처럼 극장 개봉작들이 모두 상영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가디슈'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 최근 개봉해 호성적을 내고 있는 작품들이 이날 영화 상영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쓸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극장 로비에는 4~5명의 사람들이 앉아있거나 돌아다니고 있는 게 전부였다. 한 명씩 만나 영화를 보러 왔냐고 물었지만 영화를 보러 온 관객보다 건물을 유지보수하기 위해 극장에 있는 관계자들의 수가 더 많았다.
극장 1층 매점 앞에는 '서울극장 영업 종료 및 멤버십포인트 소멸 안내'와 '고맙습니다 상영회'의 안내 표지판이 배치돼 있었다. 홀로 매점을 운영하고 있던 직원 A씨는 무료티켓이 정오쯤 소진됐으며 청년부터 어르신까지 극장을 찾아 줄을 서는 등 모처럼 활기를 띄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극장 폐관에 대한 심정이나 앞으로 서울극장이 어떻게 되는 지 등에 대한 질문에는 "저도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나중에 다시 (건물이)열리더라도 극장 형태가 되진 않을 것 같다"고 짧게 답했다.
이어 영화 예고편이 나오고 있는 중소형 스크린 앞에 앉아 있던 60대 남성 B씨를 만났다. B씨 역시 이날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극장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극장이) 없어진다고 하니 한 번 들러봤다가 더워서 좀 쉬고 있다. 예전에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상징적인 장소였다. 영화 한 번 보려고 매표소 줄을 길게 늘어서고 했던 추억들이 있다"고 회상했다.
극장 내부를 돌았다. 영화 티켓을 발권할 수 있는 키오스크 3대와 빈 복도, 공간들이 눈에 띄었다. 이 곳에서 5년 째 건물 관리를 했다는 70대 남성 C 씨를 만났다. C 씨는 "극장이 없어진다고 하니 씁쓸하긴 하다. 극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지는 이미 오래됐다. 세월이 지났는데 어쩔 수 없지 않겠나"며 가던 발길을 이어갔다.
서울극장을 운영했던 합동영화사는 지난 2일 서울극장의 영업 종료를 알리며 향후 서울극장이 영화에 국한되지 않은 콘텐츠 투자 및 제작 형태의 새로운 사업을 하는 곳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극장 부지나 건물, 운영 형태 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뀔 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이날 역시 폐관에 대한 원인이나 향후 극장 건물이 어떻게 바뀔 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이는 없었다. 1층 입구에 위치한 스타벅스 커피숍의 관계자는 "(이곳은) 문을 닫지 않고 9월까지 운영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 지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한편 서울극장은 1978년 영화감독 출신의 故 곽정환 회장이 종로 세기극장을 인수하고 이름을 바꿔 설립된 영화관이다. 이후 단성사(현 사적지), 피카디리극장(현 CGV피카디리1958점)과 함께 1980년대부터 한국 영화의 종로 시대를 이끌었다.
종로 극장가의 상징으로 꿋꿋이 명맥을 유지해왔고, 2000년대 대형 멀티플렉스사가 등장한 이후에도 유일하게 2010년대까지 운영돼 왔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와 OTT플랫폼 성장 등에 따른 극장산업 환경 변화로 결국 42년 만에 폐관의 운명을 맞았다.
[연예부 | ssent@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