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 벡델 테스트 사용법 배포…영화 성평등 지수 체크
[더팩트|원세나 기자] '벡델 테스트 사용법에 대하여.'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에서 각 매체에 배포한 보도 자료의 제목이다. 하루에도 수백 건의 홍보 자료가 날아드는 기자의 메일함에서 유독 이 자료가 눈에 띈 것은 아마도 최근 분야를 막론하고 '성인지 감수성'이 주요한 쟁점으로 부상했기 때문일 터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은 (사)여성영화인모임이 1년간의 준비를 통해 2018년 3월 개소했다.
'든든'은 영화산업 내 성평등한 환경 조성을 위해 영화계 성희롱·성폭력 피해자 지원, 성희롱 예방교육과 콘텐츠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영화계의 성평등 인식을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든든'은 이 자료를 통해 영화평론가 조혜영의 칼럼을 전하며 벡델 테스트의 의미를 설명하고 테스트의 한계와 효용성 등을 되짚었다.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란 해당 영화가 얼마나 성평등한 지를 평가할 수 있는 간편한 테스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그래픽 노블 작가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이 1985년 연재한 만화 '눈여겨 볼만한 레즈비언들(Dykes for Watch Out For)'의 '규칙(The Rules, 1985)' 에피소드에 처음 등장한다.
이 에피소드에서 벡델의 친구 리사 월리스는 볼만한 영화를 고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이야기하는데,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이름을 가진 두 명 이상의 여성이 등장하는가', '그 두 명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그 대화의 주제가 남자 이외의 것인가'.
조혜영 평론가에 따르면 벡델 테스트가 등장한 이후에 여러 다양한 페미니즘 영화 비평 방법론과 성별 균형 및 다양성을 수치로 측정하는 연구조사 방법이 제시되고 적용됐지만, 3개의 질문으로 통과 여부를 가리는 단순하고 손쉬운 특징 덕에 벡델 테스트는 현재까지도 가장 인기 있는 성평등 테스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벡델 테스트는 폭넓은 유용성과 더불어 그 한계 또한 꾸준히 지적돼 왔다. 첫 번째 한계는 그 당시 '서사의 진행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여성 캐릭터가 둘 이상 존재하는가'라는 최소한의 기준에 충족하는 대중 영화가 거의 부재했다는 사실이고, 이는 현재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조사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매해 한국 영화 흥행 50위 내에 든 작품들을 살펴본 결과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비율은 50.6%였다. 2009년보다 2018년 통과 비율이 더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전문가들은 벡델 테스트는 성평등과 성별 균형을 가리는 결정적 테스트가 아니라 캐릭터 개발이 최소한이라도 돼 있는 여성 인물이 있는지를 가리는 기준이기 때문에, 통과 비율이 적당선인 70~80% 이상이 되기까지 벡델 테스트는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벡델 테스트의 또 다른 한계는 테스트를 통과한다 해도 그 영화가 성평등하다거나 페미니즘적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개별 영화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맥락을 깊이 있게 살필 수 있는 밀도 있는 비평이 함께하며 담론을 풍부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 조혜영 평론가의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 와서는 이 최소한의 기준에 여러 다른 조건들을 덧붙여 조금 더 정교한 테스트를 만드는 시도들이 있으며, 더불어 벡델 테스트 질문에서 성별 구분과 이름 및 대화의 여부는 시대 및 지역의 문화적 맥락에 따라 재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결과적으로 영화산업에서 성별 균형이 이뤄지고 다양성이 확보된다면 최저 기준인 벡델 테스트의 효용성도 점점 더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번 자료를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던 벡델 테스트에 관해 자세하고 정확하게 내용을 파악하게 됐다. 적어도 앞으로는 영화 선택에 앞서 작품의 성평등 지수가 어느 정도인지 미리 체크해 볼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작품을 대하는 나만의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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