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추세 '무역개방', 농민 반발 분위기 '히트 비결'
[더팩트|강일홍 기자] 가수 배일호는 가요계에서도 소문난 '근면 성실맨'이다. 유년 시절엔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고 한다. 그는 열 일곱의 나이에 기차비만 챙겨 '반드시 성공한다'는 굳은 각오를 새기며 서울로 상경했다.
온갖 허드렛일을 참고 견디는 생활이 계속됐다. 그러다 방송 진행 보조(FD)를 하면서부터 가수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게 됐다. 다행히 노래엔 자신이 있었다. 인기가수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끈기와 노력으로 '인생역전'을 일궈냈다.
배일호는 군복무(5사단 인사과) 후 군산 서해방송 '가수왕' 선발대회에서 1위를 한 뒤 '봐봐봐'(80년)로 데뷔했다. 묵직하고 깊은 울림의 목소리를 가진 그는 데뷔 전까지 배호 노래를 좋아하고 모창을 해오다 예명도 배일호로 바꿨다.
그가 대중적 주목을 받은 것은 '우리 몸엔 우리 농산물'이란 슬로건을 담은 '신토불이'(92년)가 뜨면서다. 농군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지게질로 생계를 꾸린 그에게 이 노래는 인생곡이 됐다.
"1990년대 초 우루과이 라운드가 화두였어요. 농민들한테는 당장 생계가 달린 문제라 심각했습니다. 지게질로 잔뼈가 굵은 저는 농민의 처지와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남의 일처럼 무관심할 수 없었죠. 농민들을 대변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작사가 김동찬을 찾아가 속내를 밝혔다. 세태를 풍자하거나 사회 추세를 반영하는 노래가 더러 히트하긴 했지만 난감한 소재였다.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수차례 논의를 거쳐 '신토불이'란 제목이 나왔고, 작곡가 박현진이 곡을 써 마침내 노래가 탄생했다.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모두 신토불이(중략)/ 쌀이야 보리야 콩이야 팥이야 우리 몸엔 우리건데 남의 것을 왜 찾느냐/ 고추장에 된장 김치에 깍두기 잊지마라 잊지마 너와 나는 한국인 신토불이 신토불이 신토불이 신토불이야'(배일호의 '신토불이' 1절)
'신토불이'의 히트는 당시 사회 분위기가 크게 한몫을 했다. 무역개방은 피할 수 없는 세계적 추세였지만 전국의 농민들이 연일 상경해 시위를 했다. 매일 관련 뉴스가 쏟아지면서 '신토불이'는 상징성을 더해갔다. 그는 가수 데뷔 13년 만인 93년 '신토불이'로 무명가수 설움을 벗었다.
"노래 한곡이 히트하려면 여러 변수들과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해요. 제 노래가 반발하는 농민이나 어민들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보니 한때 방송 금지곡이 됐을 정도였죠. 방송에서 잘 틀어주질 않았어요. 반대로 농민 시위현장에는 제가 단골로 불려다녔고요."
배일호는 배고픈 '대한민국 보릿고개' 상징 세대다. 젊은 시절 누구보다 고달픈 삶을 살았다. 긴 무명생활 끝에 '신토불이'로 바람을 일으킨 그는 '99.9' '장모님' '순이야' '꽃보다 아름다운 너' 등 내놓는 노래마다 히트를 했다.
그는 또 오뚝이 인생이다. 뒤늦게 독학으로 음악 이론을 터득한 뒤 직접 작사 작곡에 뛰어들며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했다. '꽃보다 아름다운 너' '순이야' '친구야' 등이 그의 곡이다. 고향인 논산 공설운동장 인근 공원에 '신토불이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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