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는 처음이지만 연예계는 처음이 아니니까요"
[더팩트|박지윤 인턴기자] 배우로서 첫발을 내디딘 경리는 첫 정극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수많은 남성을 상대하는 액션부터 마약에 취하는 모습까지,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하는 작품을 만나 연기의 첫 페이지를 강렬하게 작성했다.
박경리는 최근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언더커버'(극본 송자훈·백철현, 연출 송현욱)에서 90년대 안기부 언더커버 요원 고윤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작전 중 마약에 중독돼 조직에서 버려진 윤주는 오랜 세월 음지를 전전하며 피폐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박경리는 배우 한고은과 2인 1역으로 고윤주 역을 맡아 윤주의 어린 시절이자 한고은의 어린 시절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첫 리딩 때, 한고은 선배님 옆자리에 앉아서 많이 떨렸던 기억이 나요. 저는 말을 또박또박하는 편이고, 선배님은 나긋나긋하게 하는 편이세요. 그래서 한고은 선배님이 '윤주는 평소 경리보다는 말을 부드럽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셔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연습했죠. 첫 정극이라 긴장도 많이 되고 부담감도 컸지만 좋은 선배님들과 작가님, 감독님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또 윤주를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연기 도전과 함께 마주한 2인 1역은 경리에게 많은 생각과 부담을 안겨준 부분이다. 한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아역이 아닌 성인 배우 두 명이 연기하면 자칫 몰입을 깨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리는 고윤주뿐 아니라 한고은에 관한 많은 것을 찾아보며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캐스팅됐을 때는 '맡은 역할만 잘 해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인 1역이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 주는 걸 보면서 점점 더 부담됐죠. 관심 가져주시는 만큼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한고은 선배님의 연기 영상을 많이 찾아봤어요. 여러 작품 중에서 '봄날'의 김민정(한고은 분)이 고윤주랑 분위기가 가장 비슷해서 이를 많이 참고했어요."
그렇게 경리는 험난한 윤주의 청춘 시절을, 위태롭고도 불안하게 흔들렸던 윤주의 심경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김태열(김영대 분)을 교살하는 장면을 목격한 충격과 공포감부터 마약과 강렬한 액션까지. 쉽지 않은 장면들을 한 작품 안에 오롯이 녹여냈다.
"BBC '언더커버' 원작을 참고하며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어요. 또 마약 연기를 위해서 외국 드라마나 영화도 많이 봤죠. 한국 작품으로는 영화 '독전'을 다시 보면서 표정을 많이 연구했어요. 이를 토대로 상상하면서 연습을 했고, 촬영 직전까지도 준비를 많이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과 고민이 많았죠. 액션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금방 적응했던 거 같아요. 연습하면 할수록 합을 맞추는 게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더 기대하면서 열심히 준비 할 수 있었죠."
아직 연기 노하우가 부족하기에 성실함으로 그 빈자리를 열심히 채웠고, 지름길이 아닌 정면으로 부딪친 경리다. '뺨 맞는' 한 장면을 위해 본인이 직접 자신의 뺨을 때리고, 주변 사람들의 손을 빌리며 어울리는 표정을 수도 없이 연구한 경리는 그렇게 고윤주가 됐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던 경리의 기존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말이다. 하지만 그가 느끼고 표현하고 싶었던 고윤주는 우리가 본 것과는 조금 달랐다.
"윤주는 '언더커버' 요원이기에 강인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언더커버' 시절 마약을 하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고, 마약중독이 되고 조직에서 버려지는 과정이 윤주에게는 심적으로 힘든 시기였죠. 이 시기에 석규(연우진 분)가 윤주에게 관심을 가져주니까 마음이 흔들렸다고 해석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한없이 강하지만 내적으로는 여린 면모가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신인의 자세로 연기에 도전한 경리는 2012년 나인뮤지스 새 멤버로 합류하며 올해로 데뷔 9년 차를 맞이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9년이라는 세월은 경리에게 부담으로 다가와 여유를 안겨줬다. 그는 첫 정극인 '언더커버'를 끝내고 조급하게 다음 작품을 찾기보다는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초조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다년간의 경험으로 차분히 때를 기다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 경리였다.
"제가 연기는 처음이지만 연예계는 처음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더 부담이 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가수 연습생을 4년 정도 했었고, 배우를 준비한 것은 이제 1년 남짓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지금 당장 잘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고, 그 과정을 통해 능숙해지는 때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어요."
새 소속사를 만나 재정비 시간을 거친 후 '언더커버'로 팬들을 만난 경리는 지난 11일 SBS '문명 특급-컴눈명 편'을 통해 오랜만에 무대 위에 섰다. "30대의 추억을 만들어보자"는 다짐과 함께 다시 모인 나인뮤지스는 자신들에게, 팬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당시 활동할 때는 스케줄에 치이다 보니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었어요. 그런데 이번 무대 준비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을 연습했는데 너무 즐겁더라고요. 한 번 연습하고 나면 그 활기찬 에너지가 계속 이어졌어요. 그러면서 옛날에 더 즐기지 못한 아쉬움도 들었던 거 같아요."
"많은 댓글 중에 '나인뮤지스는 시대를 앞서 나가서 그때 당시 사랑을 못 받았다'는 글이 있었어요. 이걸 보면서 '있을 때 잘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만큼 뒤늦게 오는 반응이 좋기도 하면서 아쉽기도 한 거 같아요. 많은 분들이 아직도 그리움을 느끼고 있다면 저희를 계속 소환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무대 위 3분 동안 스포트라이트와 팬들의 호응을 받으며 에너지를 얻었다면 지금은 완성된 하나의 작품을 보며 이전과는 다른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 가수와 배우를 다른 선상에 놓는 것은 아니지만 가수 활동 당시 생긴 선입견과 이미지는 지우고 싶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 보여준 강렬한 이미지가 고착된 점이 경리에게 큰 아쉬움을 남겼기 때문이다.
"저는 털털하고 엉뚱한 편인데, 차가운 면을 많이 보시는 거 같아요. '경리는 되게 차가울 것 같다'를 거칠게 표현한 악플을 직접 본 적도 있어요. 이런 댓글을 보면서 저를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은 저를 그저 차갑게만 보고 어려워하는 거 같아서 속상하기도 했죠. 그래서 연기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런 선입견과 이미지를 깨고 싶어요."
경리는 그룹 그리고 솔로 가수로서 활동의 문을 언제나 열어둘 생각이다. 특히 19일 첫 방송 예정인 뷰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방면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가진 걸 포기할 필요는 없잖아요"라며 웃어 보이는 그에게서 왠지 모를 여유와 당찬 에너지가 느껴졌다.
"'언더커버'를 하고, '문명 특급'도 준비하면서 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아직까지도 나인뮤지스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그 기대에 부응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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