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곡㉒] 김종환 '존재의 이유', 더블 밀리언셀러 '전설'

김종환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미 기타를 치고 놀만큼 타고난 뮤지션이다. 자신의 데뷔곡이자 인생곡인 존재의 이유를 비롯해 사랑을 위하여 백년의 약속 등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무려 1000만장의 앨범이 팔렸다. /JH킴스뮤직

애틋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TV 드라마 '첫사랑' OST로 대폭발

[더팩트|강일홍 기자] 가수 김종환은 90년대 이후 기록적인 음반발매 실적을 남기면서 가요계의 전설로 남아있다. 국내 대표 발라드 가수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그의 애절한 목소리와 창법은 발표하는 노래마다 사연깊은 스토리로 엮어내며 특히 여성팬 층을 폭넓게 끌어안은 비결이 됐다.

그의 데뷔곡이자 인생곡인 '존재의 이유'를 비롯해 '사랑을 위하여' '백년의 약속' '사랑하는 날까지' 등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무려 1000만장의 앨범이 팔렸다. 전성기시절 HOT나 젝스키스, 김건모 신승훈 등을 제치고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한 일은 지금도 가요계의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김종환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미 기타를 치고 놀만큼 타고난 뮤지션이다. 자신의 곡을 포함해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비결이다. '바램'(노사연), '여백'(정동원), '미니스커트'(민해경), '인생이란'(윤시내), '아모르'(김수희)' '사랑하세요'(양수경)' '태양처럼'(바비킴), '위대한 약속'(리아킴) 등이 모두 그가 작사 작곡 편곡한 곡이다.

이런 그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그는 가수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까지 누구보다도 무명의 설움을 뼈아프게 견뎌야 했다. 훗날 무려 250만장의 음반이 팔린 더블밀리언셀러 '존재의 이유'는 처음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아 사장될 뻔했다. 변변한 장비도 없는 곳에서 재래식 녹음을 해야했고 TV는 커녕 라디오 문턱도 가보지 못했다.

김종환은 30대 중반 이후 존재의 이유가 세상에 알려지고 뒤늦게 그의 인생 스토리가 감동사연으로 덧붙여지며 최고 전성기를 맞이한다. /JH킴스뮤직

"어디에서라도 사람들한테 제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죠. 동대문과 남대문 DJ를 찾아가서 틀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처음엔 여기서도 퇴짜를 놓더라고요. 저도 DJ출신이라 도와줄 거라 믿었거든요. 포기하지 않고 한달 이상 꾸준히 찾아가 읍소를 했죠. 어느날부터인가 시장통이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그의 정성과 집념은 결국 통했다. DJ 중 한명이 새벽시간대에 딱 한번 틀었다가 노래 주인공에 대한 궁금증을 묻는 전화가 폭주하면서 '존재의 이유'는 마침내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곡은 불과 1주일만에 시장 상인들은 물론 단골 손님들 사이에 뜨겁게 입소문이 났고, 길거리 차트(리어커 카세트 테이프)를 휩쓴다.

"곡만 쓰고 노래는 부르지 말라"며 퇴짜를 놓았던 가요계 매니저들이 뒤늦게 무릎을 쳤다. 가요계 최초 여성매니저(이명순)를 만나 유명 레코드사에서 정식으로 음반을 내고 일약 스타가수로 등장한다. '존재의 이유'는 마침 TV 드라마 '첫사랑'의 OST로 불리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언젠가는 너와 함께 하겠지 지금은 헤어져 있어도/ 네가 보고싶어도 참고 있을 뿐이지 언젠간 다시 만날테니까/ 그리오래 헤어지진 않아 너에게 나는 돌아갈거야/ 모든걸 포기하고 네게 가고싶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려줘/ 알수없는 또다른 나의 미래가 나를 더욱더 힘들게 하지만/ 니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 니가 있어 나는 살 수 있는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네게 달려갈테니 그때까지 기다릴수 있겠니'(김종환의 '존재의 이유' 1절)

김종환은 최근 미스트 트롯 스타 정동원이 부른 여백을 발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가요계 대표 싱어송 라이터로 주옥같은 가사를 많이 쓴 그는 신춘문예를 거쳐 정식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CPBC 유튜브 캡쳐

이 곡은 힘든 시기 연인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노래다. 김종환은 1963년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2남 2녀중 막내로 출생해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성장했다. 대학시절 지금의 아내 김금숙(83년)을 만났고 오랜 무명생활을 하며 혼전 낳은 두 딸(김옹 김담)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야 결혼식을 올렸다. 둘째딸 김담은 가수 리아킴으로 활동 중이다.

1985년 '쉴 곳 없는 나' 로 데뷔한 뒤 줄곧 무명가수로 활동했고, 90년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미니스커트'를 민해경이 불러 히트한 뒤에도 가수로서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30대 중반 이후 '존재의 이유'가 세상에 알려지고 뒤늦게 인생 스토리가 감동사연으로 덧붙여지며 그는 최고 전성기를 맞이한다.

'존재의 이유'에 이어 연달아 발표한 3집 '사랑을 위하여'는 자그마치 300만장을 넘겼다. 그의 잇단 히트행보에 당시 가요계 전체가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그는 가수로 최 정상을 밟은 뒤엔 작곡가로서도 더욱 위상을 키운다. 노사연 윤시내 김수희 양수경 임수정 바비킴 등이 그의 곡을 받아 히트했다.

최근엔 '미스트 트롯' 스타 정동원이 부른 '여백'을 발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가요계 대표 싱어송 라이터로 활동하며 주옥같은 가사를 많이 쓴 그는 신춘문예를 거쳐 정식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다. 국내 문인 등용문 월간종합문예지 '문학세계'와 ㈔세계문인협회, 계간 '시세계'가 주관한 시 부문 신인문학상에 당선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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