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인사이드⑧-박성일] 韓 음악 드라마로 그려본 미래(하)

박성일 음악감독은 2021년 특별한 두 작품을 만났다. 바로 이미테이션과 안나라수마나라다. 모두 음악의 비중이 큰 드라마라 작업량이 많았지만 그는 지칠 줄 모르고 작업했다. /이선화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신년사에서 '소프트파워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할 것'이라며 문화·예술과 스포츠를 대표적인 'K-콘텐츠'로 내세웠습니다. 특별히 BTS와 블랙핑크, 그리고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기도 했죠. K-콘텐츠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여러모로 힘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행복을 주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도 합니다.

<더팩트>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한류를 이끄는 '한류 콘텐츠 메이커'를 직접 만나 K-콘텐츠의 성공과 가능성,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와 해결법을 살펴보는 기획시리즈 '한류 인사이드'를 통해 글로벌 한류의 현주소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음향 기술의 발전, 큰 변화 안겨줄 것"

[더팩트 | 유지훈 기자] 대한민국은 음악과 서사가 어우러진 작품에 유독 뜨거운 호응을 보내왔다. '비긴 어게인' '어거스트 러쉬' '원스' '라라랜드' '보헤미안 랩소디' '원스' 등은 꾸준히 영화 팬들 입에 오르는 명작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이 영화들이 모두 해외 작품이라는 것. K팝이 빌보드를 두드리고, K드라마가 지구 반대편 시청자들을 매료시키는 2021년이지만 아직 한국의 음악 드라마, 음악 영화는 히트작이 없다.

히트작이라 불릴만한 한국 음악 드라마의 탄생은 박성일 음악감독의 숙원이었다. 2019년 정경호 주연의 tvN 음악 드라마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이하 '악마가)'를 선보였지만 최대 3.1%(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박 음악감독은 목표를 바꾸는 대신 '악마가'를 통해 얻은 경험들을 곱씹었다. 그리고 심기일전 끝에 새로운 음악 드라마인 KBS2 '이미테이션'을 작업했다.

지난 7일 첫 방송된 '이미테이션'은 누적 조회수 4.8억뷰, 구독자 404만 명을 돌파한 동명의 글로벌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아이돌을 꿈꾸는 청년들의 꿈을 향한 도전을 주제로 했고 박성일 음악감독은 자신의 작업물에 각 팀의 개성과 서사를 담아냈다. '이미테이션' 이후 작품도 결정됐다. 내년에는 넷플릭스 감성 뮤직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K-OST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줄 전망이다.

-'이미테이션'이 공개됐다. 음악 비중이 '악마가'보다 더 큰 것 같다.

한 1년을 준비했어요. 음악이 큰 축인 드라마라서 오래 걸릴 수밖에 없더라고요. 음악이 나와야 촬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 준비 기간이 길었죠. 주요 배역 캐스팅보다 제 작업이 먼저였을 거예요(웃음). 워낙 음악 비중이 크니까 '악마가' 때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했어요. 대본 디테일을 위해 검수도 했고 서로 쓰는 단어들이 다르니 그걸 조율하고요. 음악 드라마는 제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힘들었는데도 기분은 늘 좋았어요.

이미테이션은 아이돌을 꿈꾸는 청년들의 꿈을 향한 도전을 그린다. /KBS 제공

-음악감독으로서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나.

기획 단계부터 제작사, 감독님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이돌 노래는 누가 잘 써?'로 대화가 시작할 법도 한 데 아니었어요. '이렇게 기획할 건데 음악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같은 조금 더 기초적인 이야기부터 시작됐어요. 드라마에 4개 아이돌 팀이 등장해요. 소위 말하는 3대 기획사의 음악이 다르듯, 이 팀들도 각자의 색이 필요했어요. 그걸 음악으로 보여줘야 했고요.

-부담스러운 작업인 만큼 아이돌 작곡가 팀과 협업도 생각해봤을 것 같다.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 작곡가 팀과 대대적으로 협업하기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았어요. 작업 방식이 달랐고 무엇보다 드라마 작업과 곡 작업의 속도를 맞춰야 하는 게 컸어요. 내부 팀원들로 작업을 소화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그래도 저희 팀 안에 아이돌 곡 작업을 하는 팀원들이 많이 있었어요. 외부에 있는 아이돌 작곡가들도 참여를 많이 시켰고요.

-말은 쉽지만 아이돌 그룹 각각의 개성을 담은 노래를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메이저 아이돌 기획사에서 한 곡의 노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이겠어요. 음악감독으로서 자부심은 있지만 메이저 3사 최고의 작곡팀이 하는 일을 혼자 다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어요(웃음). 그래도 정말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팀이 가지는 테마가 있어요. 청량함, 에너제틱, 우여곡절, 섹시함 정도예요. 그런데 이건 아주 단순화한 것이지 실제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복잡한 일인 만큼 작업 시간도 길어졌을 것 같다.

모든 게 배가 됐죠. 곡의 접근부터 오랜 기간이 필요했어요. 녹음도 마찬가지였어요. 보통의 OST는 가창자가 한 명이잖아요. 그런데 '이미테이션'은 아이돌이니까 여섯 명이 녹음에 들어가요. 한 명 녹음에 반나절인데 작업 분량이 여섯 배가 되는 거죠. 이게 엄청난 일이라는 걸 작업을 다 끝내고 나서 알았어요(웃음).

박성일은 이미테이션이 K드라마와 K팝이 만나는 방점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호기심스튜디오 제공

-홍보 방법도 독특하다. 정말 존재하는 아이돌 그룹을 보는 것 같다.

'부캐'를 만든 거죠. 실제로 '뮤직뱅크'도 출연시키는 기획도 했고요. 심지어 OST를 출시할 때는 각 팀의 미니앨범처럼 나와요. 티징을 하다 보니 K팝 팬들이 유입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드라마 팬들에게 어필하는 게 아니라 K팝 팬들에게 어필하는 방식이었어요. '이미테이션'으로 정말 리얼한 K팝 시장을 그려보자 했어요. 이런 시도가 한국에서 성공한다면 앞으로도 다양한 콜라보가 많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돌이 주제인 만큼 퍼포먼스의 역할도 크다. 이건 음악감독의 영역인지 모호하다.

안무는 배윤정 단장님이 도와주셨어요. 저는 음악감독이지만 안무까지 다 확인하고 있어요(웃음). 심지어 의견까지 드려요. '이런 부분이 좀 더 있으면 한다' 정도예요. 안무를 포함해 모든 걸 진심으로 몰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의상팀도 아이돌 공정을 그대로 따라가는 중이고, 가사에 캐릭터의 서사를 넣기도 하고, 거기에 맞게 작가님은 내용을 수정해주시고요. 팬들도 그걸 알아주시는 것 같아 기뻐요.

-'이미테이션'으로 어떤 목표를 설정했나.

K팝이나 K드라마가 꾸준히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잖아요. 이제는 영화까지 인정받았어요. 저는 '이미테이션'이 K드라마와 K팝이 만나는 방점이 됐으면 해요. 제가 알기로는 아이돌을 소재로 많은 작품들이 기획되고 있어요. '이미테이션'이 그 시작이 될 거예요. 아이돌을 주제로 했으니 타깃은 10대, 주 1회 편성인데 당장의 성적보다는 앞으로의 파급력을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나 감독님, 작가님, 출연 배우들 모두 같은 마음일 거예요.

-현재 작업 중인 '안나라수마나라' 이야기도 간략히 들어보고 싶다.

1년이 넘는 기간동안 매주 음악회의를 하고 있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지양하는 것, 지향하는 것이 명확하다는 느낌이 강해요. '어떻게 하면 저 배우가 노래를 잘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캐릭터의 진심을 음악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에 무게를 두고 연구하고 있어요. 배우들도 부담스러울법한데 모두 동의했고요. 그래서 정말 기대하셔도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넷플릭스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는 감성 뮤직 드라마를 포인트로 내세웠다. /넷플릭스 제공

-'이미테이션'과 '안나라수마나라'가 한국 콘텐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나.

노력과 성패는 따로 놓고 봐야 하겠죠. 우선 대중의 판단을 지켜보고자 해요. 그 판단에 따라 방향성이 달라질 것 같아요. 다 떠나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도전 두 가지를 2021년에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드리고 싶어요.

-지금으로서 OST 시장 전망은 밝아 보인다. 음악감독으로서 작업 환경도 점차 좋아지고 있나.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많이 좋아졌죠(웃음). 과거 드라마는 1, 2부 시청자 반응을 보고 수정하는 태가 대부분이었어요. 대본의 수정은 곧 음악의 수정이었어요. 그런데 그 수정을 나 혼자 하는 거면 모르겠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가수 일정 조절해서 연습하고 다시 녹음하고요. 물론 방송 직전까지 바쁜 건 여전해요. 하지만 이건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필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주 52시간 노동법이 생기고 OTT 시장이 커지면서 해외 저작권 이슈들을 풀어야 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사전 제작에 가깝게 작업할 수 있는 경우가 늘었어요.

-의미 있는 두 작품을 만났으니 목표도 달라졌을 것 같다.

한국 콘텐츠는 계속 세계를 향해 나아가겠죠. 제가 있는 호기심스튜디오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이제는 기술적인 측면도 무게를 두고자 해요. 5.1채널, 서라운드, 돌비 애트모스 같은 기술이 계속해 발전해나가고 있어요. 이제 특별한 장치 없이도 서라운드 기반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이를 기반으로 하는 녹음 방식이나 노하우가 없어요. 이건 콘텐츠를 제작하는 저 같은 사람들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음악 이야기로 인터뷰가 끝날 줄 알았지만 조금은 어려운 이야기 같다. 사운드 기술의 진화가 앞으로 콘텐츠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나.

제게는 매우 크게 와 닿았어요. CD에서 MP3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아이돌과 인디 뮤지션의 부흥기가 시작됐어요. 인기 있던 발라드는 한걸음 물러났고요. 저는 기술의 발전이 시장의 급변을 만들어낸다고 봐요. 그리고 다음 변화는 서라운드 기술과 함께겠죠.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즐기고 싶어 하잖아요. 기술이 모두 갖춰지고 나면, 좋은 작품은 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질 것이고 OST도 따라가겠죠. 그래서 저는 미리 준비하고 싶어요. 그걸 위해 스튜디오 이전도 준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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