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라는 단어가 생겨난 지도 어느덧 1년이 넘어섰다. 그 우울감을 해소할 음악을 만들던 사람들마저 "생존"을 외치다 지쳐 하나둘씩 떠나간다. 어느덧 음악이 멈추고 한산해진 홍대. <더팩트>는 이제 막 그곳을 떠났거나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기에 처한 대중음악계의 현실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소외 감내하며 버티고 있는 홍대 공연장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주성민 씨는 2020년 11월을 애써 기억에서 지웠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홍대를 지켜온 자신의 공연장 브이홀이 폐관했기 때문이다. 9월부터 정리를 위해 몇 차례 공연장으로 향했지만 간판을 떼던 날 만큼은 현장에 가지 못했다. "간판이 내려가는 그 모습을 보기 싫었다"는 게 그의 씁쓸한 소회다.
브이홀은 신해철이 '고스트 시어터'라는 이름으로 2007년 문을 연 라이브 클럽이다. 이듬해 '브이홀'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됐고 지난해까지 홍대를 대표하는 공연장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스탠딩 600석, 홍대 최대 규모 공연장인만큼 뮤지션들에게 '브이홀 단독 공연 전석 매진'은 인기를 증명하는 척도였다. 하지만 이 굴지의 공연장마저 코로나 여파를 이겨내지 못했다. 주성민 대표는 브이홀 폐관이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작년 1월에 상황이 시작됐죠. 대관이 연기되고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연기가 취소로 바뀌더니 모든 공연이 소강상태가 되고, 무급휴직을 하면 정부에서 직원 임금의 70%는 지원해주는데 임대료는 회사가 부담해야 했어요. 월 임대료만 1000만 원이 넘어가니까 적자는 계속 쌓였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작년 9월부터 철거 계획을 짰죠.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인 거 같아요. 그때 멈췄으니까 빚을 다 갚고 직원들 급여, 퇴직금도 다 챙겨줄 수 있었던 거예요."
주성민 씨는 언젠가 브이홀의 문을 닫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 예상했다고 한다. 공연장이 들어서며 홍대 일대는 '핫'한 거리가 됐지만 젠트리피케이션(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의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가 그의 예상을 앞당겼다. 브이홀과 같은 대형 공연장을 비롯해 홍대 음악의 성지인 작은 무대들도 조용히 사라져가고 있다.
"브이홀처럼 큰 공연장도 공연장이지만 라이브클럽들도 피해가 커요. 2.5단계에서 2단계로 내려가면서 공연할 수 있는 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구청에서 일반음식점이라고 못하게 했어요. 그때 그 유명한 '칠순잔치' 발언도 나왔고요. 이게 수많은 라이브클럽의 문을 닫게 만드는 계기가 됐어요. 결국 협의해서 다시 공연 재개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이미 많은 가게가 폐업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싶어요."
브이홀과 수많은 라이브클럽들이 간판을 내렸지만 25년 역사의 롤링홀만은 아직 버티고 있다. 롤링홀은 신촌 인근 1995년 롤링스톤즈로 시작해 2004년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변모, 합정동에서 수많은 뮤지션들의 무대를 펼쳐왔다. 홍대 음악의 역사와도 같은 공연장이지만 최근 이곳의 풍경은 다소 생경하다. 열광하는 관객 대신 빼곡한 의자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90년대 후반에는 IMF, 2000년대에는 화재 사고와 신종 플루, 2010년대에는 메르스까지. 크고 작은 사건에 위태로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김천성 롤링홀 대표는 "코로나 사태만큼은 어떤 시기보다 위태롭다"고 했다.
"이전과는 비교 불가능한 걸 체감하게 됐어요. 작년부터 많은 라이브클럽과 소극장이 폐업하면서 저도 많이 흔들렸어요.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그만둔다는 게 너무…. 버티기 위해 모든 방법을 찾아봤어요. 이제는 대출 전문가가 다 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마음속으로는 100번도 더 폐업했어요. 괴로워하다가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이러면 안 돼'하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그러다 그날 밤에 또 무너지고. 그래도 저는 제가 해왔던 일들의 마무리를 잘 짓고 싶어요. 이런 식으로는 절대 아니에요."
계속된 적자보다 김 대표를 더욱 괴롭게 한 것은 대중음악을 향한 세상의 냉대다. 클래식 뮤지컬과 달리 '모임 및 행사'로 분류된 롤링홀의 공연은 번번이 무산됐고 매번 달라지는 지자체의 주먹구구식 규제도 발목을 잡았다. 보상이 절실한 시기 정부의 언택트 공연장 건설 소식도 그의 의지를 꺾었다. 모든 방역 수칙 준수 하에 공연을 열었을 때는 누군가의 신고를 받아 불필요한 해명까지 해야 했다.
"늘 힘들어서 그런지 목소리를 내는 데 무뎌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올해부터는 누군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변하는 게 없을 것만 같아서 인터뷰도 이렇게 하고 있고요. 저희가 이렇게 힘든데 뮤지션들은 오죽할까 싶어요. 우리는 약자 중에 약자예요. 기초예술분야는 나라에서 지원해주고 있잖아요. 홍대, 인디 시장은 대중음악의 기초분야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지원이 미비했죠. 우리와 같은 공연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인 뮤지션들은 어디서 음악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들의 팬이 되고, 그들의 기획사를 자처해 큰 무대에 올릴 수 있겠어요."
롤링홀뿐만 아니라 홍대인근에 자리 잡고 있던 공연장들이 모두 위기에 처했다. 롤링홀이 소속된 한국공연장협회가 올해 초 조사한 결과 마포구 관내에 운영 중이던 라이브 클럽 및 공연장 가운데 달콤한 음악실, 블러섬랜드, 라이브 와이어, 에반스라운지, 퀸라이브홀, 프리버드 라이브홀, 브이홀 등 7곳이 코로나 사태 이후 폐업했다. 김 대표는 "85개 공연장을 조사해 확인된 곳만 7곳일 뿐이다. 연락이 두절된 너무나 많고 절반 이상이 휴업 및 주말만 간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홍대 인디 신을 지켜왔어요. 소극장 1세대 중에 남은 사람이 다섯 손가락에 꼽혀요. 그런데 현재로서 연락되는 분은 한 분뿐이고요. 나머지는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를 남겨도 읽지 않고 그러니까 걱정되죠. 돈보다는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부터는 '내가 지켜왔던 가치에 대한 평가가 이거였나' 하는 회의감이 커요. 떠난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죠. 상황이 끝나면 그분들이 돌아올까?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어요. 우리는 이미 밑바닥을 봤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