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과 혼연일체…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평강 중심'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배우 이지훈이 표현해낸 고건은 이른바 '평강의, 평강에 의한, 평강을 위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몰입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이지훈은 마지막까지도 평강을 중심으로 '달이 뜨는 강'을 추억했다.
최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극본 한지훈, 연출 윤상호, 이하 '달뜨강')은 고구려가 삶의 전부였던 공주 평강(김소현 분)과 사랑을 역사로 만든 장군 온달(나인우 분)의 운명에 굴하지 않은 순애보를 그린 작품이다. 이지훈은 극 중 평강을 사랑하지만, 계루부 고추가 고원표(이해영 분)의 장남으로서 평강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고건 역을 맡아 활약했다.
작품은 역사적 설화를 바탕으로 하며, 평강과 온달 등 실존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반면 퓨전 사극을 표방한 만큼 허구의 인물도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고건이었다. 이지훈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캐릭터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뿐만 아니라 평강을 향한 무조건적인 애정을 보여주다 결국에는 목숨까지 바치는 고건의 서사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이지훈이 고건이고 고건이 곧 이지훈이었던 셈이다.
극 중 캐릭터는 '어떤 배우가 어떻게 그려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때문에 배우의 캐릭터 해석력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지훈은 고건을 처음 만났을 때 결핍부터 헤아렸다. 그는 "어떤 작품을 하든 연기할 인물의 힘든 점과 결핍을 찾으려고 한다. 엔딩을 내기 위한 최종 목표는 '행복'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캐릭터가 지닌 서사나 결핍을 해결해야 한다"며 "고건의 경우, 첫사랑이자 마음에 담은 딱 한 명의 여인 평강이 결핍이었다. 평강도 날 사랑해줬으면 좋겠지만,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다는 결핍된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사료가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오히려 살을 붙일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고민도 많았죠.(웃음) 평강과 해모용에 대한 감정 등 고건의 심리를 계속해서 생각했어요. 고민 탓에 잠을 못 자고 현장에 가는 날도 꽤 있었을 정도예요. 물론 현장에 가도 고민이 이어지는 건 마찬가지였지만요. 작가님과 생각을 주고받고, 현장에서는 감독님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힘들었던 부분이지만, 다음 작품을 할 때면 지금의 경험이 도움이 됐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고건은 평강만을 향해 직진했지만, 반대로 해모용(최유화 분)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마지막 회에서는 해모용에게 "사랑했다"는 말을 남긴 뒤 눈을 감은 고건이다. 이에 일부 시청자들은 평강과 해모용 사이 고건의 감정에 의문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지훈은 "고건에게 평강은 말 그대로 가슴 속에 담아둔 유일한 사람이다. 잊어보고 떨쳐보려고 해도 안 되는, 자신보다 소중한 사람이 평강이었다. 반면 해모용은 고건의 거울이다. 고건이 평강에게 외면당해도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것처럼 해모용 또한 고건에게 외면당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나. 그런 해모용을 한 인간으로서 아꼈던 것"이라고 고건의 진짜 마음을 전했다. 즉 고건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평강만을 사랑했다는 것. 이지훈은 "평강에게 외면당한 뒤 해모용과 사랑을 해볼까 했지만, 노력해도 안 됐다. 마음속에 항상 평강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지훈의 설명은 고건의 마지막 대사 "네가 고스란히 나였다. 가질 수 없는 사람을 가지려 하고, 닿을 수 없는 길을 가려고 하는 나의 거울이었다. 넌 부디 멈추지 말고 살아가라. 내 너를 사랑했었다"에서도 드러난다. 다만 '사랑했었다'는 고백은 최유화의 의견을 존중했다.
"'사랑했었다'는 대사는 원래 안 하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촬영장에서 최유화 씨가 해모용 입장에서는 그 대사를 꼭 듣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전 거짓말인 줄 알면서 듣는 고백은 상처라고 생각했어요. 반면 최유화 씨는 마음에 없는 표현일지라도 사랑했던 남자의 고백을 들어야 해모용이 삶을 버틸 수 있다고 해석했죠. 그래서 '넌 꼭 살아가라'는 의미와 함께 인간으로서 사랑한다는 뜻으로 나온 대사예요."
배우들의 몰입으로 탄생한 고건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다만 이지훈은 해당 장면을 찍을 때 과호흡이 오기도 했다. 그는 "고건이 죽을 때 걸어오는 평강과 온달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그때의 감정은 연기가 아니었다. 그동안 평강을 향해 쌓아왔던 감정이 다 터진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마지막이니까 웃으면서 보내고 싶었다. 또 평강이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이야기해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당시 (김)소현이가 내 손을 잡았는데, 처음이었다. 그 순간 죽는 연기를 이어가야 하는데 감정이 올라왔다. 온달과 평강이 간 후에 과호흡이 왔었다"고 설명했다.
이 장면은 이지훈의 아끼는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지훈은 이 외에도 가장 아끼는 장면 3개를 더 공개했다. 눈에 띄는 건 모두 '평강'과 관련된 장면이라는 점이다.
그는 "고건이 궁에서 평강을 자객인 줄 알고 잡았다가 내보내는 장면이 있다. 평강이기 때문에 놓아준 고건의 모습이기에 가장 아낀다"고 밝혔다. 이어 "두 번째는 평강에게 그동안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세 번째는 신라 사신으로 있다가 고구려로 와서 평강과 마주했을 때다.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으면서 연기했다. 고건은 신라에서 4년이란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이는 고구려든 신라든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공주가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못 보는 시간 동안 만신창이로 지내다 다시 이 사람을 보기 위해 온갖 욕을 먹으면서 사신으로 가 평강을 만났다. 그 장면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이렇듯 고건에게 완벽히 동화된 이지훈이기에 감정선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지훈은 "고건은 항상 중간에 껴 있다. 아버지와 평강, 평강과 온달, 평강과 해모용 등 모든 관계에서 복잡하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은 평강에게 가 있는데 시청자들이 봤을 때는 갈팡질팡하는 역할로 보일 것 같아 힘들었다. 해모용처럼 모든 관계를 끊거나 평강과 온달처럼 쌍방향이거나 하면 되는데 둘 다 아니기 때문에 어렵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로 인해 77kg인 상태에서 작품을 시작했던 이지훈은 현재 67kg까지 살이 빠졌다.
사실 이지훈을 어렵게 한 건 감정선만이 아니었다. '달뜨강'은 방송 초반 온달 역의 기존 배우 지수가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며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반 사전제작으로 시작했던 작품은 당시 촬영의 90%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지수가 하차하고 나인우가 투입되며 많은 부분을 재촬영해야 했다.
재촬영은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다. 이지훈은 "현장에 있는 모든 분이 예민했을 터다. 나 역시 후반부 굉장히 예민해졌었다"고 밝혔다. 그는 "어떻게든 이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기 때문에 촬영을 다시 한다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이미 18부까지 고건의 감정을 따라왔고, 촬영을 완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예전의 감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다. 그러면서 또 19, 20부 촬영도 같이 해야 했다. 걱정이 많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달뜨강'은 결방 한 번 없이 마지막 회까지 완주했고, 시청자들은 어려운 상황을 딛고 막을 내린 '달뜨강'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박수를 받기까지 '달뜨강'의 모든 제작진과 배우들은 버티고 또 버텨야 했다.
"시청자분들이나 관계자들은 방송으로 보기 때문에 겉으로는 잘 흘러간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안에서 같이 작업을 한 사람들은 피 말리게 힘들었어요. 새로 합류했던 (나)인우는 들어오자마자 하루에 40신을 찍었어요. 중간에 들어와서 시작하다 보니 이리 뛰고 저리 뛰었죠. 힘들었을 텐데 워낙 밝고 유쾌한 성격인 데다 어떻게든 해내야겠다는 의지와 책임감이 강해 보였어요. 대단한 친구예요."
이지훈은 논란이 언급된 김에 많은 이들이 꼭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다들 힘들었지만, 그중에서도 (김)소현이 제일 힘들었을 터다. (김)소현이는 5개월 동안 드라마를 2개 찍은 셈"이라며 "더군다나 액션도 많았다. 어린 친구가 이 힘든 상황을 웃으면서 끝까지 마무리했다는 건 정말 존경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소현이가 정말 힘들었다는 것과 그 작은 몸으로 버텨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재차 강조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지훈은 '달뜨강'이 시청자들에게 "아무 문제 없이 잘 흘러갔던 드라마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소원했다. 현장의 모든 이들이 고생해서 만든 작품인 만큼 논란보다는 좋은 작품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품을 끝낸 이지훈은 "소속사를 옮긴 뒤 첫 작품이었다. 그래서 매니저들이 신경을 더 많이 써줘 고맙다. 큰 사고 없이 잘 마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그는 "엄청 후련하지는 않다. 6개월을 한 작품이기 때문에 그동안의 감정들이 단번에 사라지진 않는다. 아직 70% 정도의 아쉬움과 울적함이 있다"고 솔직한 심정을 덧붙였다.
끝으로 이지훈은 앞으로의 계획도 밝혔다. 그는 "살을 많이 찌운 뒤 몸을 만들어서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고 SNS에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대개 활동 계획이나 목표 등을 언급하기 마련인데 이지훈은 현실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이에 이지훈은 "내 삶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삶이 온전해야 작품도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평온이 가장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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