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신년사에서 '소프트파워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할 것'이라며 문화·예술과 스포츠를 대표적인 'K-콘텐츠'로 내세웠습니다. 특별히 BTS와 블랙핑크, 그리고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기도 했죠. K-콘텐츠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여러모로 힘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행복을 주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도 합니다.
<더팩트>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한류를 이끄는 '한류 콘텐츠 메이커'를 직접 만나 K-콘텐츠의 성공과 가능성,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와 해결법을 살펴보는 기획시리즈 '한류 인사이드'를 통해 글로벌 한류의 현주소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반지의 제왕' 참여, 제게도 비현실적인 일이었죠"
[더팩트 | 유지훈 기자] 할리우드의 전유물인 것만 같았던 화려한 VFX(Visual Effects, 시각 특수효과)로 빚어진 작품들이 속속들이 한국에서도 탄생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좀비 떼가 등장하는 '반도', 올해 초에는 한국 최초의 우주 블록버스터 '승리호'가 공개됐다. 세계인에게 '한국도 이제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어?'라는 격한 반응을 끌어내기까지 누군가는 그 초석을 다지기 위해 머나먼 미국 땅을 밟았다.
국내 디지털 콘텐츠 기업 EVR스튜디오의 구범석 이사는 VFX 할리우드 진출 1세대 중 한 명이다. 부산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던 그는 그 완성도가 할리우드 영화의 '급'을 나누게 될 정도로 성장한 컴퓨터그래픽 기술에 매료됐다. 하지만 이를 가르칠 교육기관은 한국에 전무했고 관련 서적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PC통신을 통해 동호회 회원들과 꿈을 키우던 그는 1998년 꿈을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향했고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Academy Of Art University)에서 컴퓨터 아트(Computer Art)를 전공했다.
이후 현지에서 학업과 VFX 작업을 병행했다. '콘스탄틴' '황금나침반' 등과 같은 유명 작품에 힘을 보탰고 아카데미상 비주얼 이펙트 부문을 수상한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제작에 참여하는 영광도 누렸다. 100년이 훌쩍 넘은 영화사 중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던 시기 수많은 변화를 체험한 그는 할리우드 VFX 전문가로서의 지나온 나날을 하나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유학을 시작하고 얼마 후 바로 현업 기술자로 일했다. VFX는 원래 학업과 일을 병행하게 되는 시스템인가?
그렇지 않아요. 천운이 따랐을 뿐이에요.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실리콘밸리 붐이 일었고 CG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기술자는 모두 몸값을 올려 실리콘밸리로 갔어요. 할리우드에서는 갑자기 기술자를 뺏기게 됐으니까 인력 수급이 먼저였던 것 같아요. 덕분에 막 입학한 제게도 기회가 왔던 거죠. 또 미국이 당시 특별 조치로 유학생들에게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도 했어요.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살고 있던 제 룸메이트들도 비슷한 시기 저와 함께 할리우드에 취업하게 됐어요.
-학업과 일을 병행했으니 특별한 경험들도 있었을 것 같다.
웃긴 게 제 직장에서는 인턴으로 있는 분이 학교에 가면 제 선생님이 돼 있기도 했어요(웃음).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저는 일을 시작했고, 그분은 배움을 끝내고 막 일을 시작했던 거죠. 학교에서는 미술의 근간이 되는 이론을 열심히 배웠고 직장에 나가서는 현실적으로 필요한 기술을 배웠어요. 생각해보면 학교에서보다 일터에서 배운 게 더 많았던 것도 같아요.
-수많은 작품을 했지만 역시나 눈에 띄는 것은 '반지의 제왕'이다. 어떻게 만나게 된 작품인가.
어리고 유학생 신분인데 뉴질랜드로 가서 일을 한다는 게 참 비현실적이었어요. 그리고 미국 사람이 아닌데 유학생 신분으로 뉴질랜드에서 일을 하고 임금을 받는 것 자체가 합법인지도 모호했고요. 제안을 받아서 가고 싶긴 한데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발목을 잡았어요. 그런데 '나는 그런 거 모르겠고 일단 해본다'는 마음이었어요. 뒷일 생각하지 않고 질렀죠. 운 좋게 잘 끝냈고 지금까지도 저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에요. CG가 엄청난 영화였죠. 대부분 화려한 작품도 2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잊혀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아직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걸 보면 참 대단한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할리우드에서 봉준호 감독을 만난 적 있다는 글을 봤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한데.
'반지의 제왕'을 끝내고 샌프란시스코로 복귀했을 때였어요. 지인이 영화제 끝나고 한국 영화 관계자들이 있는 자리로 저를 초대해주셨는데 거기에 봉준호 감독님이 계셨어요. 이야기를 나눴고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인데 CG가 필요해서 기술자를 찾고 계신대요. 몇 군데 소개시켜 드렸는데 성사되지 않았어요. 역시나 예산 때문이었어요. 오퍼너지(The Orphnage)라는 또 다른 회사에 제가 아는 분이 계셨고 '이 감독님 진짜 대박이에요' 하면서 계속 추천드렸어요. 그때 '살인의 추억'을 보고 저는 이미 봉 감독님 팬이 됐었거든요(웃음). 그렇게 맺어져서 나온 게 '괴물'이었어요."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광고와 애니메이션도 작업했다. 영화와 작업에 있어 차이가 있나.
애니메이션은 감독의 상상을 그림으로 만들어내야 해요. 그러다 보니 색이 중요하죠. 실제 촬영하는 게 아니니까 임의적인 날씨, 계절 이런 게 색감 하나만으로 다 느껴져야 해요. 그런데 한 작가가 모든 그림을 만들어오는 게 아니잖아요. 수많은 작가들이 자기의 판단에 따라 색을 입혀서 작업하니 편차가 있어요. 저는 감독이 가장 원하는 색을 표현하기 위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많은 작품에서 '라이팅 테크니컬 디렉터(Lighting Techinical Director)'이하 라이팅 TD 라고 소개되고 있다.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는 잘 와 닿지 않는 직함인데 설명해줄 수 있나.
처음엔 테크니컬 디렉터였고, 라이팅 아티스트, 아트 디렉터 등등 직함이 좀 복잡하죠. 지금은 간추려진 부분들이 많지만 과거에는 CG작업물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과정이 필요했어요. 모델을 만들고, 색감과 질감을 입히고, 뼈대를 심어서 움직임을 만들고, 옷의 나풀거림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하고요. 이걸 하나로 합쳐서 초당 30장으로 만들어야 영상이 되는 거잖아요. 수많은 분야 사람들의 결과물이 합쳐지는 순간인데 당연히 문제가 발생하죠.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게 테크니컬 디렉터에요. 라이팅 TD는 현실감을 위해 합쳐진 그림의 빛 반사를 조율하는 일을 총괄하는 겁니다. 문제 해결이 중요할 때는 '테크니컬'이라는 이름이 붙는데 미술적인 부분이 중요시될 때는 '아트'로 바뀌기도 해요.
-그렇다면 할리우드에서의 마지막 직함은 무엇인가.
라이팅 TD로 커리어를 마무리 지었어요. 테크닉은 현업에서 부딪히며 자연스럽게 배웠고 아트는 학교에서 많이 끌어줬어요. 문제 해결은 필드에서 습득이 가능한데 빛에 대해서 배우는 건 원론적인 것들이 필요했어요. 이미지를 볼 줄 알고 빛과 필름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과도 많이 친해져서 작가로 활동하기도 했고요. 예전 영화를 보면 영화 속 폭발이 CG로 처리되면 이질감이 느껴질 때가 많았잖아요. 이건 모니터와 필름이 가진 빛의 수치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빛을 공부하면서 이런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죠. 요즘은 프로그램을 쓰지만 당시에는 반사광을 만들고 진짜 하나하나 직접 값을 계산해서 넣고 그랬어요(웃음).
-할리우드에서 VFX 전문가로 일했던 2000년대 당시의 작품들이 2021년 구범석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았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던 과도기였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영상화됐어요. 2000년도 이전에는 영화에 특수효과가 들어간 장면을 제작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힘든 일이었어요. 자본력도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대부분의 사람이 2000년대 당시를 풍미했던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불가능하다고 느꼈던 게 시각화됐고 그걸 해내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 작품이 많지도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당시 작품들이 참 소중해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VFX 스튜디오를 차리는 대신 게임회사로 들어갔다. 의외의 행보인 것 같은데.
미국에 있을 당시에 게임의 시네마틱 영상도 작업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게임 쪽 커리어가 쌓였고 소니컴퓨터에서 기획하던 게임의 아티스트로 참여하게 됐죠. 저는 게임에서 미래를 보게 됐어요. 원래라면 계속했어야 했는데 '반지의 제왕' 제안이 때마침 와서 갈아타게 됐던 거죠(웃음). 그런데 이후에도 계속 아쉬움이 남았어요. 2000년대 후반이 되면서 게임과 영화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시장의 규모도 영화보다 게임 산업이 더 큰가.
VFX 분야에 있어서는 확실해요. 함께 작업하던 분들이 지금은 많이 게임으로 넘어갔어요. 서핑을 예로 들면 파도를 한번 타면 내가 방향을 틀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해변으로 떠밀리게 되잖아요. 고등학교 시절 혼자 PC통신에서 자료를 찾고 미국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게임 시장을 보게 된 거예요. 저와 같은 길을 걸었던 사람이라면 이 흐름을 부정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커리어에 이어 이제는 EVR스튜디오라는 회사까지 맡고 있다. EVR스튜디오로 그리는 미래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VFX 전문가로서 현재의 한국 영상 콘텐츠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한국은 더 이상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만든 콘텐츠가 아닌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제작 능력을 갖췄어요. 예전에는 특정 기술을 개발하게 되면 그것이 그 회사만의 독점 노하우에 머물렀어요. 현재는 기술이 한곳에서 머무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어요. 다양한 형태의 교류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기술 또한 상향 평준화를 많은 부분에서 이뤘다고 봐요. 영화 '기생충', 드라마 '킹덤'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나오는 컨텐츠들의 위상은 이제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찬사를 받게 된 세상이 돼서 그 일원으로서 정말 뿌듯해요.
-그럼에도 풀어야 할 숙제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좋은 시스템도 산업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결실을 맺으려면 충분한 제작 경험이 쌓여야 하고 다수의 결과물을 통해 제작 시스템이 검증돼야 해요. 그래서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부가가치가 높은 쪽에만 집중하다 보면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영역의 것들의 빈 구멍들 또한 깊어지기 마련이에요. 지금까지는 선택과 집중의 시대였죠. 앞으로는 다양한 분야에서 소외되는 영역 또한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