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신년사에서 '소프트파워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할 것'이라며 문화·예술과 스포츠를 대표적인 'K-콘텐츠'로 내세웠습니다. 특별히 BTS와 블랙핑크, 그리고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기도 했죠. K-콘텐츠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여러모로 힘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행복을 주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도 합니다.
<더팩트>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한류를 이끄는 '한류 콘텐츠 메이커'를 직접 만나 K-콘텐츠의 성공과 가능성,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와 해결법을 살펴보는 기획시리즈 '한류 인사이드'를 통해 글로벌 한류의 현주소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나이트클럽 라이브DJ→세븐틴·워너원 등 '아이돌 안무가' 되기 까지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신화 안무가' '세븐틴 안무가' '워너원 안무가' '프로듀서 안무가 겸 트레이너' 등 안무가 최영준을 언급할 때면 꼭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만큼 본인도 상대에게도 대표할 만한 안무를 만들어냈다는 방증이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다. 춤에 대한 갈망과 열정으로 가득 찼던 최영준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축적해온 모든 것들을 증명했다. 손꼽히는 'K팝 대표 안무가'가 된 최영준의 비결은 이처럼 간단하면서도 어려웠다.
최영준의 연습실 한쪽 벽에는 아티스트들의 친필 사인과 안무 연습 중 사용한 이름표로 가득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수 보아 소유 유아 WOODZ(조승연)부터 그룹 골든차일드 뉴이스트 더보이즈 레드벨벳 몬스타엑스 베리베리 세븐틴 우주소녀 워너원 트와이스 하성운 CIX 등 최영준이 담당한 K팝 팀만 수십 팀이 넘는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안무를 창작했는지 단번에 보여주는 대목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토록 많은 성과를 짧은 시간 안에 이뤄냈다는 점이다. 2016년 신화의 안무를 맡아 이름을 알렸던 그는 2017년에는 세븐틴의 타이틀곡들을 연달아 흥행시키며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만에 K팝 대표 안무가 중 한 명이 됐다.
비록 다른 안무가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해 약간은 돌아왔다고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연습과 연구, 자신감과 오기를 바탕으로 결국은 꿈꾸던 모습을 이뤄낸 최영준이다. <더팩트>는 최영준이 K팝 흥행을 이끄는 안무가로 거듭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그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봤다.
-B.O.K, 무한, 천지, 나나스쿨, 스탠바이, 프리마인드 등 지역팀부터 프로팀까지 다양한 팀을 거쳐 어느덧 Team same을 이끄는 단장이 됐다.
"스탠바이에서 나온 후 오랫동안 혼자 하던 중 프리마인드에 들어갔어요.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던 팀인 데다 실력이 좋고 잘하는 팀이니까 꼭 한번 같이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도움을 요청했죠. 이후 이것저것 하다 보니 제 개인 공간이 필요해서 따로 연습실을 얻게 됐어요. 이때만 해도 팀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팀을 안 만들 생각이었죠. 하지만 안무를 창작하다 보니 아무래도 팀원들이 필요하더라고요. 또 팀원을 받으면 다른 필요한 것들이 생기고, 그렇게 하나씩 하다 보니 어느덧 팀이 꾸려졌고 점차 커지게 됐죠."
-사실 안무가로서 경력이 많은 편은 아니다. 아직 10년이 되지 않았는데, 안무가 일을 늦게 시작한 것 같다.
"맞아요. 안무가들 대부분은 프로 안무팀을 다니면서 성장하거나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하면서 창작을 시작하죠. 저의 경우는 둘 다 아닌 셈이니 일반적인 루트를 탄 건 아니에요. 전 원래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던 라이브 DJ 중 한 사람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했고 춤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지만, 현실은 냉혹하더라고요. 19세 때니 벌써 18년 전이에요. 그때는 어린 댄서들이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 없이 먹고살기에는 너무 힘든 환경이었어요. 차비만 받고 일할 정도였으니 돈 벌기가 너무 힘들었죠. 스무 살이 되자마자 나이트클럽 댄스팀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된 이유예요. 하지만 그때도 방송 댄스계는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항상 관심을 가지면서 시간 날 때마다 연구하고 연습했죠. 그래서인지 언젠가 내 안무를 보여줄 기회가 찾아온다면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어요."(웃음)
-그 기회를 결국 만났는가.
"네. 신화를 통해 좋은 기회를 얻게 됐고, 그동안 쌓아왔던 데이터나 연습량들을 한 번에 보여줄 수 있었죠. 물론 그전에도 몇몇 신인그룹들의 안무 작업을 하긴 했어요. 다만 절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던 상황은 아니었던 거죠. 그러던 중 신화 안무팀에 어시스트로 들어갔고, (이)민우 형 눈에 띄었죠. 춤 연습을 열심히 했었던 편인데 아무래도 그 모습을 흥미롭게 봐준 것 같아요. 이후 둘이서 춤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민우 형의 솔로곡 '택시(Taxi)'를 맡게 됐고, 곧바로 신화 노래 '올라잇(Alright)'과 타이틀곡 '표적'까지 하게 됐어요. 간절했던 기회인 만큼 이 악물고 열심히 했었죠."
-작정하고 만든 덕분인지 실제로 '표적'을 통해 '최영준'이라는 이름을 많이 알렸다. 이처럼 신화의 안무를 맡고 난 뒤 많은 게 바뀌었을 것 같다.
"'표적' 이후 정말 많은 '러브콜'을 받았어요. 당시 신화는 저를 포함해 많은 엔터들이 무대를 챙겨보는 팀이었어요. 그 덕분에 '표적' 안무를 보고 플레디스, 티오피 등 여러 엔터테인먼트에서 연락이 왔어요. 사실 '표적'은 냅다 멋있게만 추는 춤이 아니라 가사와 어울리는 이야기가 담긴 춤이에요. 제가 해보고 싶던 '댄스컬(댄스 뮤지컬)' 장르를 시도한 안무였는데, 마침 좋은 아티스트와 곡을 만나 잘 맞아떨어져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냈죠."
-'러브콜'마저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신화 안무가'에 이어 세븐틴의 안무가로도 많은 주목을 받지 않았나.
"세븐틴의 무대로 자리매김했다고 볼 수 있죠. 신화 형들이 제 노력을 보여줄 기회를 만들어줬다면, 세븐틴 친구들은 이를 증명해준 것 같아요. 세븐틴과는 '물 만났다'는 표현이 딱 맞아요. 제가 구현하고자 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너무 잘 맞고 오히려 100% 이상 나올 때가 있다면 바로 세븐틴 무대예요. 서로의 시너지가 정말 좋았어요. 춤뿐만 아니라 호흡 자체가 좋았는데 이 느낌을 서로 알고 심지어 회사마저 알았어요. 여러 가지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죠. 그리고 그 좋은 기운이 무대에 녹아들어서 더 잘 나온 것 같아요."
-'프로듀스' 시리즈 안무가로도 유명하다.
"'프로듀스 101' 시즌2 때 경연곡 중 '열어줘'와 '슈퍼 핫(Super Hot)' 안무를 담당했어요. 그때 당시 '열어줘' 무대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더라고요. 그 덕분인지 워너원의 데뷔곡 '에너제틱' 안무까지 맡게 됐어요. 안무가로서 본격적으로 참여한 건 '프로듀스 48'부터예요. 걸그룹 시즌이었는데 남자 안무가도 걸그룹 춤을 얼마든지 출 수 있고,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프로듀스' 출연이 향후 최영준의 인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부분도 있을 것 같다.
"하나의 촉매제가 됐던 것 같아요. '프로듀스' 이후 많은 곳에서 절 알게 되니까 연습도 더욱 성실히 하게 되고 춤도도 더 열심히 만들었죠. 동시에 초조한 마음도 생겼어요. 또 이전까지는 안무가에 대한 호칭이 전부 '형' 혹은 '오빠'였는데, 어느새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됐더라고요. 그래서 행동과 말도 더욱 조심하고 있어요."
"대중적인 인지도가 생긴 덕분에 느낀 장점도 있어요. 예전에는 어떤 자리에서든 절 소개하기 위해 명함을 드려야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좋은 아티스트를 만나 좋은 안무를 만들다 보니 그 무대가 제 명함이 됐죠. 덕분에 아무것도 없이 그저 믿고 맡겨주셔서 일 하는 데 있어 보다 더 수월해졌어요."
-안무가 최영준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시작되는가.
"사실 안무는 2차 가공이에요. 곡이 먼저 나온 뒤에 작업이 들어가니까요. 그래서 전 가사에서 주로 영감을 받는 편이에요. 가사를 보다 보면 곡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어요. 예를 들면 사랑, 질투, 꽃 등 곡마다 각각 테마가 달라요. 그 테마를 시작으로 전체적인 주제를 잡고 창작에 들어가요."
-춤을 창작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나.
"음, 우선으로는 K팝 팬들의 시점이요. 화려한 춤이라고 해서 대중에게 멋있게 각인되는 건 절대 아니에요. K팝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안무는 달라요. 여러 과정을 겪으면서 알게 된 점이죠. 그냥 멋있는 춤과 무대에 오른 아티스트가 잘 소화할 수 있는 춤도 구별할 줄 알아야 해요. 특히 팬들 입장에서는 내 가수를 통해 보고 싶은 무대가 있어요. 아티스트별로 다 다를 수밖에 없죠. 그리고 전 각기 다른 아티스트에게 가장 어울리는 춤을 만들어내야 해요. 이 점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각 그룹의 색도 안무를 통해 잘 살리는 것 같다. 이 점도 염두에 두는 편인가.
"맞아요.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가 그룹이 지닌 색이에요. 전 제가 받아들이는 색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에요. 팀의 색은 음악에서 어느 정도 정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같은 그룹 안에서도 곡 콘셉트와 잘 어울리는 멤버가 있고 안 어울리는 멤버가 있기 마련이에요. 전 각 멤버들한테 어울리는 동작을 찾는 거죠. 사실 이 부분을 잘 모르면 그저 음악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안타깝죠. 예를 들면 인트로가 누구냐에 따라 춤의 분위기가 달라져요. 멤버들에게 잘 어울리는 안무 파트를 만들어줘야 그룹의 전체적인 색을 살릴 수 있어요."
-정말 많은 곡을 담당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혹은 뿌듯한 안무가 있나.
"모든 무대를 최선을 다해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드는 무대는 1년에 한 두 번 정도 나오는 것 같아요. 지난해에는 일단 '2020 더팩트 뮤직 어워즈'에서 보여준 세븐틴의 '폴린 플라워(Fallin' Flower)'와 '피어리스(Fearless)' 무대가 기억에 남아요. 정말 열심히 기획했고, 멤버들도 모두 열심히 연습했던 무대였어요. 또 다른 무대로는 유아의 '숲의 아이'가 마음에 들어요. 전 개인적으로 전달력 있는 무대를 좋아해요. 무대를 봤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잘 전달됐다 싶은 무대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편이죠. 그게 '숲의 아이'였어요."
"올해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15일에 발매되는 조승연의 '필 라이크(FEEL LIKE)'를 꼽고 싶어요. 이번 안무는 조승연이 섹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기대해도 좋습니다."(웃음)
-반대로 내가 잘 구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해내는 안무가 중 부러운 사람이 있는가.
"선미의 이번 신곡 '꼬리'요. 무대를 처음 보자마자 이런 창의력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랐어요. 또 몬스타엑스의 파워풀한 안무도 너무 좋아해요. 엑소와 에이티즈도 항상 챙겨보는 팀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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