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기획사의 가장 큰 역할을 꼽는다면 단연 '리스크 관리'다. 소속 아티스트가 사건 사고에 휘말리면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발 빠르게 사태를 수습한다. 그런데 그 사건 사고가 '과거'의 언행에서 시작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최근 스타들의 '학교 폭력'(이하 '학폭') 의혹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투'(학교 폭력 미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연예가 현실을 진단한다. [편집자 주]
연예 관계자들이 본 잇단 학폭 의혹의 문제점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아티스트가 자신에 맞는 창작물을 선택하게 돕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건 연예기획사의 기본 기능이다. 한데 연예계에 의외의 복병이 터지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바로 학폭 논란이다. 이전에도 스타들의 과거 학폭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최근 들어 그 빈도수가 가히 폭발적이다.
올해만 해도 배우로는 지수·박혜수·조병규·동하·심은우·김동희·I.O.I 출신 김소혜 등이, 가요계에는 에이프릴 이나은·여자 아이들 수진·스트레이키즈 현진·몬스타엑스 기현·ITZY 리아·이달의 소녀 츄·현아 등이 학폭 의혹에 휘말렸다.
TV조선 '미스트롯2' 진달래, KBS '트롯전국체전' 진해성, JTBC '싱어게인' 요아리 등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한 서바이벌 예능 출연자들에 관한 폭로까지 연이어 터져 나왔다. 계속되는 의혹에 대중의 피로감이 높아질 법도 한데 그 관심이 식기는커녕 되레 점점 더 뜨겁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스타들의 학폭과 관련된 글들이 조리돌림처럼 계속해 공유되고 있다.
한 연예 기획사 고위 관계자 A씨는 최근 벌어진 이 사태에 난감함을 표했다. 업계에 몸을 담은 후 수많은 연예인의 매니저로 일해왔고 때로는 원치 않는 구설에 휘말려 사태를 수습하기도 했다. 많은 일을 겪으며 어떤 사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나름의 해법도 찾았다. 하지만 학폭 만큼은 "불가항력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티스트의 부주의로 문제가 생기게 되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우선 입장을 밝힌다. 그 이후 당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합의점이 없다면 법적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학폭은 전혀 다르다. 전속계약 전에 생긴 일이라 회사 입장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난감하고 과거 일인 만큼 사실 확인도 어렵다. 그리고 폭로가 대부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뤄져 당사자와 직접 접촉하기도 힘들다."(기획사 관계자 A씨)
또 A씨는 몇 년 전부터 신인과 전속계약을 하기 전 수차례 과거 학창 시절을 검증하는 과정도 거치고 있다. 당시 몇몇 연예인들이 학폭 의혹에 휘말렸고 이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판단이 들어서다. 하지만 이마저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결국 생활기록부를 제외하면 주변인의 주관적인 판단과 기억에 기대야 한다. "신인과 계약하기 전 수 차례 과거를 묻게 된다. 신뢰로 시작해야 하는 일인데 의심부터 하게 된다"는 게 학폭 논란 이후 생겨난 A씨의 고충이다.
"친한 매니저가 담당하던 연예인이 학폭 의혹에 휘말렸었다. 결국 연예인은 상황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 학창시절 품행이 바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폭로 과정에 부풀려진 내용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것을 포기했다. 조목조목 따져봤자 흠집을 떠안는 것은 연예인이다."(연예 관계자 B씨)
과거 연예인을 향한 폭로가 미디어를 통했다면 최근 계속된 학폭 의혹은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뤄진다. 그래서 게시글은 폭로 대상에 관한 사실 확인은 전무하고 피해자의 일방적인 주장만이 담긴다. 댓글 창에는 사실관계를 가리기 전 가해자로 지목당한 연예인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다. 작성자의 주장을 반박하는 누리꾼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상황은 이미 기울어져 있다.
"소속사가 반박해도 믿지 않고 증거를 가져오라고 하더라. 증명을 위해 연예인의 과거 지인에게 나서 달라고 하기도 어렵다. 지인이 나선 후 악플 테러를 당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일부 케이스는 학폭으로 시작돼 다툼이었다고 결론이 나기도 한다. 한 가지 사건도 이해하기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뉜다. 하지만 학폭 의혹은 연예인은 가해자로 낙인찍히는 데부터 시작한다. 이미 기울어진 싸움이니 결백해도 약간의 트집 잡힐 구석이 있다면 속수무책이다."(매니저 C씨)
초기 연예계 잇단 학폭 관련 폭로는 피해자들이 권리를 행사하고 학폭의 심각성을 널리 알린다는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연예계 자정 작용을 불러올 것이라는 기대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연예인 K의 과거를 폭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클릭하게 만든 후 K의 모범적이었던 과거를 칭찬하는 글이 유행처럼 올라오고 있다. 아직 의혹에 휘말린 연예인들의 시시비비도 가려지기 전인데도 조롱성 놀이문화마저 생겨난 셈이다.
"연예계에 '미투' 논란이 일던 때가 떠오른다. 다들 같은 생각인지 학교폭력을 '학투'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당시 무분별한 고발과 폭로 때문에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연예계 종사자로서 계속된 폭로에 위축되긴 했지만 긍정적인 영향도 있을 거라고 봤다. 요즘은 잘 모르겠다. 어느 순간 가해자로 한번 지목되면 사실관계를 떠나 온라인에서 조리돌림을 하는 데만 더 혈안이 된 것 같다."(기획사 관계자 A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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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학투'] 과거가 바꾼 현재…엔터 업계 자정작용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