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인사이드②-모칸] 韓 우주 SF '승리호'에 탑승한 이야기꾼들(상)

모칸은 영화 승리호를 탄생시킨 시나리오 법인이다. 유강서애(왼쪽) 윤승민 작가는 조성희 감독이 만든 세계관에 각자의 아이디어를 첨가해 한국 최초의 우주 SF 블록버스터를 더욱 다채롭게 완성했다. /이동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2021년 신년사에서 '소프트파워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할 것'이라며 문화·예술과 스포츠를 대표적인 'K-콘텐츠'로 내세웠습니다. 특별히 BTS와 블랙핑크, 그리고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기도 했죠. K-콘텐츠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여러모로 힘든 이들에게 잠시나마 행복을 주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도 합니다.

<더팩트>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한류를 이끄는 '한류 콘텐츠 메이커'를 직접 만나 K-콘텐츠의 성공과 가능성,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와 해결법을 살펴보는 기획시리즈 '한류 인사이드'를 통해 글로벌 한류의 현주소를 조명합니다. <편집자 주>

"신파에 의견 분분…악평마저 감사할 뿐이죠"

[더팩트 | 유지훈 기자] 한국에서 만드는 우주 SF 블록버스터 영화. 이 어마어마한 도전에 제작사와 투자자들은 모두 반신반의했을 터다. 하지만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사람들은 환호했다. 드넓은 우주에 갈고닦아온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두 명의 준비된 이야기꾼은 들뜬 마음으로 키보드 자판을 두드렸다.

모칸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영화 '승리호'의 엔딩 크래딧에 조성희 감독과 나란히 이름을 올린 작가 법인이다. 윤승민, 유강서애 두 명으로 구성됐으며 2014년 박찬욱 감독이 만든 제작사 모호필름과 첫 작업을 시작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승리호'와의 인연은 2016년 겨울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같이 만들어보자"는 조성희 감독의 제안을 받으며 시작됐다. 소박한 작업실에 두 명의 작가와 한 명의 감독이 머리를 맞대고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각자의 개성으로 무장한 캐릭터들은 쉴틈 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 특성상 많은 부분을 쳐낼 수 밖에 없었다. 세 사람은 더 멋진 '승리호'를 탄생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더팩트>가 만난 모칸은 당시를 떠올리곤 "마치 '승리호' 멤버들처럼 어찌나 치고 받고 싸웠는지 모른다"며 크게 웃었다. 2021년 초 넷플릭스를 강타한 한국 최초의 우주 SF 블록버스터의 탄생기는 이렇게나 치열했다.

-인터뷰 장소를 북카페로 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윤승민(이하 윤): '승리호'가 SF 장르다 보니 자료가 좀 필요했어요. 이곳은 SF 관련 콘텐츠 제작자들에게는 아지트 같은 곳이에요. 과학 관련 서적이 많고 작가들이 교류를 하기도 하죠. 여러모로 의미 있는 곳입니다.

유강서애(이하 유): SF 장르 작가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에요. '신과 함께' 제작사 리얼라이즈피쳐스 원동연 대표님이 강연하기도 했어요. 정보는 몰려있고 그걸 원하는 작가들은 이곳에 오게 돼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창작자 교류의 장이 된 거죠.

승리호는 2092년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담는다. /넷플릭스 제공

-'승리호'의 탄생기에 앞서 모칸의 탄생기를 먼저 짚어보면 좋을 것 같다.

유: 당시 윤승민 씨는 한예종 영상원에 있었고 저는 그냥 회사를 다니고 있었어요. 우연히 윤승민 작가가 제가 쓴 시나리오를 보고 같이 팀을 꾸려 해보자고 연락을 줬어요. 그렇게 모칸이 만들어졌고 그다음은 승민 씨가 얘기해봐요. 그때 제 시나리오를 보고 천재라고 했던 것도 말하세요.

윤: 제가 천재라고 그랬나요? 아닌 거 같은데(웃음). 아무튼 그렇게 팀을 꾸렸고 저는 당시 영화 연출을 하고 있었어요. 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저와 유강서애 작가의 가능성을 보셨는지 같이 작업해보자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래서 '대부(LOAN)'라는 작품을 작업하게 됐고요. 지금은 확장성을 위해 팀을 모칸과 알칸으로 분리했어요. 한쪽은 버짓이 큰 상업 콘텐츠, 다른 하나는 독립 영화를 담당해요.

-'승리호'와 첫 만남이 궁금하다. 원안은 어땠나.

윤: 2011년 조성희 감독님이 쓰셨던 원안이 있었죠. 우주라는 막막한 공간에서 자식을 잃은 캐릭터의 심정이 그 안에 절절하게 담겼더라고요.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 감정만은 꼭 살리자' 했어요. 이게 결국 '우주에 가서까지 신파를 했냐'는 말을 듣게 했고(웃음).

-'승리호'는 총 몇 개의 원고가 있었나.

윤: 네 가지 버전이었어요. 애초에 웹툰, 드라마, 후속 영화 등 무한한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에 내용이 상당히 많았어요. 이걸 두 시간짜리 영화로만 보여드리게 됐으니 많이 속상했죠. 당장은 악당 설리반(리차드 아미티지 분)을 제대로 설명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그가 어떻게 괴물이 됐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우리만 알고 있으니까요.

유: 1고 작업을 할 때 '제작비 생각하지 말고 마음대로 써봐'라고 해주셨어요. 그래서인지 1고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하지만 '이거 다 구현하려면 제작비 500억 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래서 2, 3, 4고는 약간의 제약이 생겼죠. 이 때문에 우주선 안의 이야기를 더 넣어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윤승민 작가는 악당 설리반을 제대로 설명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밝혔다. /이동률 기자

-여러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다 보니 다툼도 있었을 것 같다.

윤: 조 감독님이랑 셋이 처음 4개월을 회의만 했어요. 그리고 엄청 싸웠어요(웃음). 서로 원하는 게 달라서요. 원안은 감독님 것이라 저희가 따라가 주는 것이 맞긴 했는데 SF라는 특성, 스토리 텔링 기법, 담을 수 있는 분량들이 부딪히면서 그 조율에만 반년 정도 걸렸어요.

유: 작가로서는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스토리가 있었고, 감독으로서는 꼭 들어가야 하는 그림이 있었고, 그런데 또 원안에 꼭 살려야하는 것도 있고(웃음). 진짜 쉽지 않았어요. 결국 다 '승리호'에 애정이 있어서 생긴 다툼이죠.

-'승리호'의 신파 스토리에 의견이 분분하다. 작가로서 하고 싶은 말은 없나.

유: 개인적으로는 신파를 좋아하지 않아요. '승리호'를 보면서 그걸 다시 한번 느꼈고요. 그런데 달리 생각해볼 부분도 있어요. 현실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감정을 우리가 신파라고 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유독 영화 속 부성애는 보기 싫어하시는 것 같아요. 도로시(박예린 분)가 태호(송중기 분)의 친딸이어야 설득력이 있다는 반응도 봤어요. 원안에는 도로시가 친딸로 나와 있긴 해요. 영화 마지막에는 도로시와 승리호 선원들이 대안 가족이 되잖아요. 일종의 일관성에 있어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저는 생각해요.

윤: 자식을 찾고 싶은 태호가 가족을 잃어버린 도로시를 만났을 때 드는 생각은 딱 한 가지였을 거예요. '가족을 찾아주고 싶다'요. '내 아이는 괴도 밖을 떠돌고 있는데 도로시에게 신경 쓰는 게 맞을까'라는 내면 갈등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유강서애 작가는 우리 세 사람 모두 승리호를 향한 애정이 커서 많이 다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스토리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은 그래도 나름 뜨거운 관심 속에 '승리호'가 공개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 어제 친한 배우님과 저녁 식사를 하는데 건너편 테이블에서 '승리호'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한쪽은 '재미있다'고, 다른 한쪽은 '신파가 너무했다'고 하면서 토론을 하고 있었어요. 댓글로만 봤던 그 호불호 토크가 제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져 있는 거죠(웃음). 토론에서 안 좋은 이야기도 나오니까 배우님이 제 눈치를 보시더라고요. 저는 그저 행복했고 감사하기만 할 뿐이에요.

윤: 저 역시 관객들이 어떤 형태로든 봐주시니 좋아요. 스토리가 미흡했다는 말조차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우리가 써놓은 '승리호'의 수많은 이야기를 다 들려드리지 못한 것만 아쉬워요. 그리고 넷플릭스는 190여 개국 관객 동시 공개잖아요. 몇몇 분들은 극장 개봉을 못 해 아쉽다고 하는데 저는 오히려 더 좋기도 했어요.

-SF 장르인 만큼 자료 조사도 많이 했을 것 같다.

윤: 저랑 조성희 감독님이랑 리서치를 참 많이 했어요. 상상력이 기반이긴 하지만 너무 큰 구멍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유: '승리호'를 쓰면서 2년 동안 안드로메다라는 SF 장르 독서 모임을 했었어요. 한 달에 한번씩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제 구상한 것들 들려드렸을 때 '합당한 상상력'이라는 말을 들을 필요가 있었어요. 스토리는 결국 논리예요. 얼개가 맞지 않으면 안 되니까 필요한 부분에 한해서는 자문을 받았어요.

-SF 장르인 만큼 시나리오 역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기 위한 장면들도 넣었나

윤: 시각적 구현에 있어 조성희 감독님에게는 조금의 의심도 없었어요.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분이니 '우리는 스토리만 잘 써보자' 했어요. 영화에 나오는 궤도 엘리베이터는 저희가 설정하긴 했어요. 원안은 셔틀을 타고 사람들이 왕래 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효율적인 운송 수단이었고 비주얼적으로도 좋았어요.

유: 영화에 나오진 않았지만 오프닝이 광화문에서 시작하는 거였어요. 지구는 황폐해졌고 황사 때문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위인 동상들의 머리만 땅 위에 비죽 나와 있었죠. 시각적으로 지구의 생명력이 끝났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었던 거예요.

유강서애(왼쪽) 윤승민 작가는 SF 장르 승리호의 디테일을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참고했다. /이동률 기자

-'승리호'에서 나노 물질이 큰 역할을 한다. 어떻게 넣게 됐나.

윤: 유강서애 작가님 동생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노 물리학자에요. 그래서 회의할 때 이거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감독님도 마음에 드셨는지 '이 아이디어는 꼭 살려보자'고 말씀해주셨어요.

유: 동생한테 자문을 구했었죠. 그런데 동생은 이건 자문이 필요 없는 영역이라는 거예요. 동생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나노 물질을 만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과학적인 접근은 오히려 상상력에 한계를 만들 뿐이니 마음대로 써봐. 90년 후는 박사인 나도 어떻게 될지 몰라'라고 하더라고요. 그 조언이 많은 용기를 줬고 '그래 질러보자!' 하면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시나리오 수정을 거치며 영상화되지 못한 몇몇 부분을 소개해주자면?

윤: 우주쓰레기 청소부들이 그 궤도 상에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지구는 황폐해져서 수익을 기대할 수 없고 그래서 그 가족을 위해 우주로 나갔던 거죠. 그런데 분량상 묘사를 하지 못했어요. 만약 영상화됐다면 '승리호'가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는 게 조금 더 와 닿지 않았을까 싶어요.

유: 원안에는 강아지가 하나 있었어요. 이름이 맹구라고(웃음), 삭제한 이유는 이 아이를 매력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에피소드가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안 그래도 분량 때문에 골치였는데 그래서 빼는 게 맞았죠. 그리고 우리에게는 도로시 하나로 충분하잖아요. 이 외에 UTS에서 키우는 영재들, 장선장(김태리 분)의 전사, 설리반의 탄생 과정도 있어요. 카밀라(카를라 아빌라 분)는 정말 매력적인 전사가 있는 악당인데 전혀 담기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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