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씨네리뷰] 아름답게 빚어진 韓 최초 우주 SF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이렇게 잘 만들어 놨으니 빨리 보여주고 싶어 얼마나 애가 탔을까?
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는 2092년,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과정을 담는다. 러닝타임은 136분이며 12세 이상 관람가다. 당초 2020년 여름 텐트폴 영화로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수차례 일정을 변경했고 결국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를 통해 지난 5일 베일을 벗었다.
작품은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조종사 태호(송중기 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그는 우주 해적단을 이끌었던 리더 장선장(김태리 분), 거칠어 보이지만 따뜻한 내면을 지닌 기관사 타이거 박(진선규 분), 익살스러운 매력의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유해진 분)와 함께 승리호를 타고 우주를 누빈다. 선원들과 우주에 떠도는 쓰레기를 수거하며 살아가지만 늘어가는 건 잔고가 아닌 빚이다.
파산 위기에 몰린 승리호 선원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한 소녀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소녀가 얼마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봤던 대량살상 로봇 도로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도로시는 천진난만한 면모로 승리호 선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하지만 태호만은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도로시를 테러 조직에 넘겨 일확천금을 받아낼 계획을 짜고 다른 선원들도 고민 끝에 이를 동의한다.
하지만 일은 점차 꼬이기 시작한다. 살상로봇이라고 하기에 도로시는 너무나 천사 같고 이 때문에 선원들은 갈팡질팡한다. 그리고 도로시와 관련된 인물과 조직들이 대거 등장하며 태호가 꿈꾸던 일확천금은 점차 멀어져 간다.
선행된 성공 사례가 있어야 기대감도 충만한 법이다. 충무로는 진화를 거듭했지만 유독 우주 SF와 관련해서는 불모지와도 같았다. '승리호'는 이런 상황에서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우주 SF'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당차게 출사표를 던졌다. 이런 배경 덕분에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사이 '승리호'는 수차례 개봉 일을 변경했다. 그리고 기대는 우려로 점차 변해갔다.
베일을 벗은 '승리호'는 그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는듯하다. 무엇보다 관객이 기대할 다채로운 볼거리를 영화 가득 채웠다. 각양각색 개성으로 무장한 우주선들은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돼 수려한 자태로 우주를 누빈다. 그 우주선들의 추격도 캐릭터들의 전투도 모두 특유의 SF적인 분위기를 살려내 연신 눈을 즐겁게 만든다.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등 '승리호'의 선원들은 여전히 믿고 보는 배우라는 것을 증명한다. 모션 캡처에 목소리 연기까지 모두 소화한 유해진도 CG로 빚어진 업동이 캐릭터 속에서 살아 숨 쉰다. 단편 '남매의 집'부터 '늑대소년' '탐정 홍길동' 등에 이르기까지 조성희 감독이 보여줬던 아역 활용 능력은 '승리호'에서도 빛을 발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관객 모두가 도로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전망이다.
완전무결한 작품은 아니다. 한국 우주 SF 그 자체는 새롭지만 몇몇 설정들은 할리우드 SF 영화들과 기시감이 든다. 하지만 그만큼 이 장르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고민해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설득이 필요한 모험 대신 친숙함을 택한 '승리호'의 정공법이다. 대신 작품 곳곳에 한국의 문화를 녹여내 참신함을 꾀했다. 한국영화 특유의 신파 요소마저 화려한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니 새롭다.
'승리호'는 IP의 무한한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작품이다. 이번 영화를 시작으로 웹툰 소설 게임 등 2차 창작물과 이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다채로운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다. 오랜 준비 기간 끝에 썩 괜찮은 결과물을 내놓은 '승리호'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과 함께 K 콘텐츠의 미래를 보여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