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122-김미화] "데뷔 38년과 행정가, 내 삶 자체가 인생역전"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4개월을 넘긴 방송인 김미화는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체계적이고 시스템화된 예술지원 사업을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산=임세준 기자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 4개월 "매사 솔직함으로 선입견 털어내"

[더팩트|안산=강일홍 기자] 김미화(金美花·57)는 두 얼굴의 방송인이다. 천성적으로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간직한 예능인이지만 자신만의 강한 소신과 철학을 가진 방송인이기도 하다. 그는 10년 넘게 시사뉴스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약하며 여성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의미있는 목소리를 냈다.

우선 개그우먼으로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예능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1983년 KBS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한 뒤 '젊음의 행진' '유머1번지' 등을 거쳐 '쇼 비디오 자키'(87년)에서 김한국과 콤비를 이룬 '쓰리랑 부부'로 꽃을 피운다. '음메, 기죽어'란 유행어를 만든 일명 '순악질 여사'의 캐릭터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될 정도다.

여성들을 대표하는 사회활동가로도 이미지를 굳혔다. 그는 MBC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2003년)을 진행하면서 시사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50여 개에 이르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했고 녹색연합, 유니세프,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홍보대사를 맡기도 했다.

2000년대 초 그는 효순-미선 사건(미군 장갑차 사망) 촛불시위와 이라크 파병반대(국회 앞) 1인 시위 등에 잇달아 참가했다. 이후 '연예인 김미화'에 대한 호불호는 엇갈렸지만 그의 용기있는 행동은 찬사를 받았다. 대중이 그의 편에 선 건 평소 쌓은 편안하고 친숙한 이미지도 한 몫을 했다.

"저한테는 지금껏 살아온 삶의 이력이 모두 인생역전이에요. 남의 얘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나 여성들의 권익을 더 절실히 대변하고 싶었어요. 호주제 폐지운동 역시 제 삶의 일부였고요. 정치적 색깔을 입혀 이용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격려와 위로를 해준 분들이 더 많았으니까요."

의도는 순수했지만 세상은 그를 뒤흔들었다. 그럴수록 김미화는 '부당함을 공론화 하고 개선하려면 연예인이라서 손해를 보더라도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이는 그가 방송 데뷔 이후 절반 이상을 블랙리스트로 살게 된 족쇄가 됐다.

지난해 8월 그는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부임하며 또 한번 변신을 거듭했다. 2021년 새해를 맞으며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새로운 각오와 포부를 들어봤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연말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안산문화재단 문화예술의 전당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김미화는 개그우먼 출신 첫 지자체 산하 공기관 사령탑을 맡은 주인공이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연말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안산문화재단 문화예술의 전당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임세준 기자

-꽤 오랜만이다. 교통방송 라디오 진행을 처음 맡았을 때 만났으니 벌써 5년이 지났다. 오늘은 왠지 느낌이 달라보인다.

강 기자님을 처음 만난 지는 '유머1번지'까지 거슬러올라가면 자그마치 30년째예요. 새삼스럽게 달라보일 게 뭐가 있겠어요. 그렇게 보이신다면 아마도 제가 그 사이 문화재단 대표이사라는 직함을 갖게 된 탓일 텐데 사실은 지금이 저는 가장 편안하고 만족한 일상을 보내는 시기예요. 치열하게 방송활동을 하면서도 체계적이고 시스템화된 예술지원 사업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이거든요. 오랜 기간 방송 예술인으로 살면서 쌓은 인적 네트워크가 이 일을 하는데 큰 자산이 됐어요.

김미화는 개그우먼 출신 첫 지자체 산하 공기관 사령탑을 맡은 주인공이다. 임기 2년의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출근한 지는 막 4개월을 넘겼다. 그는 지난해 8월 10여 명의 경쟁자들과 함께 면접을 진행해 5명 안에 들었고 최종 2차 면접까지 거쳐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안산문화재단은 사회간접자본과 기간산업에 대한 투자, 정부업무의 위탁 등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공직 유관단체다. 옛 이름은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으로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최첨단 인프라를 갖췄다.

-방송 블랙리스트에 올라 오랜 기간 핍박을 받지 않았나. 그런 이유로 문화재단 대표이사 취임이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시작부터 질문이 매우 껄끄럽고 직설적이시네요. 아니, 오히려 질문을 잘 해주셨어요. 잘못된 편견과 오해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하니까요. 전혀 사실무근입니다. 그런 구설 이젠 정말 지긋지긋해요. 저는 처음 사회활동가로 나설 때나 지금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는 '1'도 없어요. 사전 교감은 커녕 전문성을 갖고도 연예인이란 이유로 역차별을 받을까 오히려 전전긍긍했어요. 안산시장님이나 시의회 의원분들도 취임한 뒤에야 처음 인사를 나눴으니까요. 자발적 지원과 엄격한 심사를 거쳐 적임자로 발탁됐기 때문에 떳떳하고 당당합니다.

김미화는 수 년 전부터 경기 용인에 카페(호미)와 펜션, 야외공연장을 갖춘 복합 문화예술공간 '시골마을'(일명 '김미화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예술인들을 초청해 공연도 하고 사회적 기업을 위한 장터를 제공하는 등 더불어 사는 길을 열었다. 그는 "조용하고 한적한 전원 삶을 꿈꾸며 교외에 터를 마련했는데 수많은 분들이 호응하면서 1석 2조의 보람있는 일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시골마을'은 그가 안산문화재단에 취임한 뒤엔 조력자 역할을 해온 두 딸이 직접 운영을 맡고 있다.

방송인 김미화는 지난해 8월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또 한번 변신을 거듭했다. 그는 천성적으로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간직한 예능인이지만 자신만의 강한 소신과 철학을 가진 방송인이기도 하다. /임세준 기자

-방송이 개인 중심의 일이라면 지금 맡고 있는 문화재단 업무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협업의 일 아닌가.

맞는 말씀입니다. 혼자 자기 관리만 잘하면 되는 방송과 달리 이곳 일은 협업을 거친 뒤에도 대표이사인 제가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합니다. 개그우먼으로 활동하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할 때도 그랬지만 무슨 일이든 솔직하게 임하면 진심이 통한다는 믿음이 있어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잘 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자신감이 아니라 좀더 창의적이고 진정성 있는 '나만의 방식'이 중요한 것같아요. 당연히 좋은 결과를 낼 때가 많죠. 이미 충분한 소통으로 교감을 확인을 했고요.

김미화는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8년 반, CBS 라디오 '김미화의 여러분'에서 1년 반, 도합 10년간 하루 2시간 씩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둘 다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등 다방면의 분야를 다루는 시사성이 강한 종합프로그램이다. 그는 "방송에 출연하는 게스트들과의 대담과 진행을 위해 항상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소화하며 공부했다"고 말했다. 통상 게스트들의 대본은 이미 짜여져 있지만, 그는 스스로 분석한 질문을 더해 방송의 재미와 질을 높였다는 평가를 들었다.

-수많은 지자체 예술단체 중에 특별히 안산문화재단에 지원하게 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안산에는 다문화 가정(106개국 출신)이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도시예요. 안산은 아주 오래전부터 제가 다문화 공연 MC를 맡으면서 정든 도시가 됐어요. 세월호 사건 후엔 단원고 학부모 모임을 통해 부모의 마음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교감한 적도 있고요. 저한테는 결코 낯설지 않은 곳인 데다 같은 경기 도민(용인시 거주)으로서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안산은 또 문화인프라가 높은 도시예요. 문화시민의 자부심도 크고요. 영조와 정조의 어진을 그린 단원 김홍도가 태어난 곳이고 심훈의 '상록수'가 탄생한 도시잖아요.

김미화 대표는 한문연(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당연직 부회장이다. 예술단체장으로서 안산시가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다. 그는 "안산시가 문화와 예술 방면의 뛰어난 인재들이 즐비한 곳인 만큼 문화적 수준 또한 전국 기준으로 봐도 꽤 높은 편에 속한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 용인에서 안산까지 자가운전으로 직접 출퇴근을 하고 있는 그는 "남편이 매일 도시락을 직접 챙겨줄 만큼 살갑게 외조해 일에 대한 성취욕이 더욱 남다르다"고 귀띔했다.

김미화는 처음 사회활동가로 나설 때나 지금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는 1도 없다고 했다. 사진은 김미화가 지난 2017년 소설가 황석영(왼쪽)과 가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 개선위원회 기자회견 당시. /더팩트 DB

-재혼한 지 벌써 14년째다. 필자도 당시 단독 기사를 쓰면서 '기사가 먼저냐, 인간적 의리를 지키느냐'로 고민한 적이 있는데 윤 교수님은 잘 계신지 궁금하다.

네, 덕분에요.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항상 먼저 현장에 뛰어가는 건 예나 지금이니 변함이 없네요. 당시 결혼을 약속한 우리 부부 말고는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는데 MBC 라디오 스튜디오까지 찾아와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걸 보고 솔직히 많이 놀랐죠. 원래는 아무도 몰래 결혼식부터 하고 언론에 공개하려고 계획을 짜놨었거든요. 결혼 기사를 며칠만 보류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안 통하는 걸 보고, 오랜 인간적 친분도 다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남편은 아직 학교에 있으니 크게 달라진 건 없고, 부부금실만 더 깊어졌습니다, 하하.

김미화의 남편은 성균관대 윤승호 교수다. 늦깎이 대학공부를 하면서 지인 소개로 만나 인연을 맺은 뒤 결혼했다. 김미화는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부 사회복지학과(학사)를 졸업했다. 동 대학 언론정보대학원에서 광고홍보를 전공(석사 논문 '연예인 평판이 방송연출자의 진행자 선정에 미치는 영향')한 뒤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7년 윤승호 교수와 재혼했다. 당시 스포츠조선에 몸담고 있던 필자는 두 사람의 재혼소식을 '김미화, 대학교수와 제2의 삶'이란 제목으로 단독 보도한 바 있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고 하지 않나. 방송인으로 최 정점에 선 뒤 모든 방송프로그램 진행을 중단해야했던 당시 속내가 궁금하다.

저는 데뷔 이후 동기들에 비해 비교적 빠르게 인기를 얻었어요. 어려운 환경에서 힘겹게 살았기 때문에 방송은 출연하는 그 자체만으로 저한테는 이미 인생역전이었어요. 물론 남모르는 피나는 노력은 있었죠. '개그콘서트'까지 승승장구했는데 대학공부를 시작하면서 사소한 오해로 한번 갈등이 생기니 자꾸 일이 꼬이더라고요. 아시다시피 이후론 출연과 하차가 반복됐고요. 세상사는 누구나 입장과 처지에 따라 이해관계가 바뀌게 마련이지만, 친했던 PD나 작가들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을 땐 자괴감도 컸었죠.

김미화는 경기도 용인군 기흥면 신갈리(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서 태어난 뒤 유년시절 대부분을 서울 성북구 수유동(현 강북구 수유동)에서 자랐다. 그는 2012년 말 쯤 방송 하차를 선언한 뒤 고향인 용인으로 내려가 우렁이를 이용한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당시에 대해 그는 "사실상 은퇴하는 심정이었고 우선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고 싶었다"면서 "남편과 재혼하면서 미리 터전을 마련해둔 곳이어서 다행히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미화는 윤승호 교수(성균관대, 오른쪽)와 2007년 재혼했다. 아래 사진은 그의 남편이 지인들과 구성한 윤승호밴드 첫 정규 앨범 발표 당시 객원가수로 참여한 모습. 위는 SBS송년특집 개그대축제(2015년)에서 후배 김경식과 재연한 리바이벌 쓰리랑부부. /더팩트 DB

김미화(2녀)는 남편(1남1녀)과 재혼을 통해 모두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는 "네 아이들이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끈끈한 우애를 보여준다"면서 "남편과 제가 서로 존중하며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동화된 것 같다"고 웃었다.

김미화의 원래 성은 박씨다. 어머니(김씨)가 유부남인 걸 모르고 속아 사실혼 관계에 있던 친부(박씨)의 호적에 올렸다가 뒤늦게 자신의 호적에 등재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경제적 도움은 전무했다. 무허가 셋집에 살다 영문도 모르고 쫓겨나 마당에서 비닐 장판을 깔고 잤던 적이 있다고 한다.

모진 환경 속에 살았어도 그의 유쾌함은 타고났다. 여고시절 수학여행이나 소풍을 가면 아예 '웃기는 아이'로 정평이 났을 정도다. 신경여상 졸업 직후인 만 19세 때 제2회 KBS개그콘테스트에서 '사부와 석순이'란 코너로 은상을 수상하며 방송과 인연을 맺는다.

"어려서부터 생존 자체에 짓눌린 삶이었어요. 웃음이란 걸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요. 세 끼 밥을 먹는 것도 호사였어요. 어머니를 돕느라 식당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족발을 다듬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와중에도 희망은 버리지 않았어요. 인생역전 돌파구는 바로 개그우먼 도전이었죠."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마주한 김미화는 베테랑 방송인과는 또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그는 "제 인생에 꼭 필요한 일, 해야할 일을 최상의 결과로 일궈내고 싶다"고 말했다. 어렵게 인터뷰 시간을 낸 그는 "어차피 약속된 시간이니 최선을 다하는 게 도리"라며 시종 열과 성을 다했다. 2021년 새해가 그를 통해 더 밝게 빛날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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