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에 무너진 세계적 거장…故김기덕 감독 61년 행적

지난 11일 김기덕 감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합병증 여파로 사망했다. /더팩트 DB

김기덕 감독, 지난 11일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향년 61세

[더팩트|윤정원 기자] 김기덕 감독이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인해 라트비아 체류 중 향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에서 상을 휩쓴 그였지만 성추문과 '미투' 논란 속 명예와 불명예를 오가다 끝내 타지에서 씁쓸하게 숨을 거뒀다.

11일(현지시각) 델피, 타스 통신 등 외신은 김기덕 감독이 라트비아 병원에서 코로나19 감염 및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기덕 감독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에스토니아를 거쳐 지난달 20일 라트비아에 도착했고, 5일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김 감독은 라트비아 북부 휴양 도시 유르말라에 저택을 구입하고, 라트비아 영주권을 획득할 계획이었다고 외신은 전했다.

하지만 영주권 획득 과정에서 그가 예정된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수색 작업이 진행됐고, 코로나19로 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한 사실이 확인됐다. 김기덕 필름 관계자는 "외신 보도 후 확인 결과 김기덕 감독이 라트비아에서 사망한 게 맞다"며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 후 2일 만에 사망하신 걸로 알고 있다. 가족들도 몰랐던 소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또한 "11일 새벽 우리 국민 50대 남성 1명이 코로나19로 병원 진료 중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 주 라트비아대사관은 우리 국민의 사망 사실을 접수한 후 현지 병원을 통해 관련 경위를 파악했다"며 "국내 유족을 접촉해 현지 조치 진행 사항을 통보하고 장례 절차를 지원하는 등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1996년 '악어'로 데뷔한 김 감독은 한국인 감독 중에서는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수상한 인물이다. 김 감독은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은곰상), 같은 해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은사자상),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아리랑'으로 주목할만한 시선상, 2012년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 작품상(황금사자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대자본이 장악한 한국 영화계에서 저예산 독립 제작 체제로 작업하며 각본·연출·미술을 거의 스스로 담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쁜 남자'(2002) 등을 통해 소외되고 도태된 자들의 원초적인 삶을 자극적인 영상미학으로 선보이는 게 그의 장기였다.

하지만 특유의 폭력적인 작품세계 이면에서 영화 제작 현장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2017년 그는 강요, 폭행, 강제추행 치상 등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미투' 운동이 발발했던 2018년 MBC 'PD수첩'을 통해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여배우·스태프들에 대한 인권 침해 및 성폭력 혐의 등도 폭로됐다.

그는 반박 고소 및 고발로 명예 회복을 시도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폭행·강제추행치상 등 혐의 기소건은 벌금 5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고, 여배우와 PD수첩에 대한 고소건은 불기소 처분됐다. 1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소용이 없었다. 이후 그는 국내 활동은 전면 중단하고 해외로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은 일본영화제 초청을 받았고, 그는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당시 영화인으로서의 능력은 인정받아야 한다는 일부 목소리도 있었지만 각계각층에서는 비난을 쏟아냈다.

충무로는 그가 한국 영화계에 남긴 족적을 기억하겠지만 굴곡진 삶의 말로는 꽤나 초라하다. 그의 유작은 카자흐스탄에서 제작된 '디졸브'(2020)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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