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경, 멋진 빌런인 동시에 사랑받고 싶은 아내"
[더팩트 | 유지훈 기자] 배우 김정은은 늘 '핫'한 트렌드와 함께했다. 조폭 코미디 영화가 유행하자 '가문의 영광'의 여자 주인공이 됐고 이후 신데렐라 스토리가 호응을 얻자 SBS 드라마 '파리의 연인'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세상은 여전히 김정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모양이다. 2020년에는 안방극장의 '핫'한 트렌드인 부부 잔혹극을 그의 손에 건넸다.
김정은은 최근 종영한 MBN 월화드라마 '나의 위험한 아내'(극본 황다은, 연출 이형민 김영환)에서 주인공 심재경 역에 분해 활약했다. 작품은 적이자 동지로 살아가는 부부들의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극 중 김정은 역시 딜레마의 일부가 됐다. 자신을 독살하려 했던 남편 김윤철(최원영 분)에게 복수를 꿈꾸고 엎치락뒤치락 숨 막히는 심리전을 벌인다. 사랑과 증오를 오가며 뜨거운 분노 속 다채로운 감정을 계속해 꺼냈다. 그 열연은 시청자들에게 닿았다. 25년 차 베테랑 배우인 그에게 '김정은의 재발견'이라는 찬사가 뒤따랐다.
결혼 후 홍콩에서 지내고 있던 그는 올해 3월 서울로 도착해 '나의 위험한 아내'를 만났다. 7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한 작품을 떠나보내는 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인터뷰가 어려우니 서면으로나마 소회를 털어놓았다. "솔직하고 정성스럽게 답변하고자 누구의 도움도 없이 3일을 꼬박 썼다"로 시작되는 답변지에는 꾹꾹 눌러 담은 진정성이 가득했다.
Q. OCN '듀얼' 이후 3년 만의 복귀작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7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심재경이라는 인물로 살아왔다. 작품이 끝난 후에 찾아오는 허무감? 혼자만 느끼는 외로움? 배우로서 느끼는 우울감은 좀 있다. 물론 안 그런 척하며 잘 지내고 있다. 걱정도 긴장도 많았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빨리 캐릭터에 적응할 수 있었고 나중엔 '내가 언제 쉬었었나' 할 정도로 신나서 연기했다. 악조건 속 잘 견뎌준 모든 스태프들, 배우들께 고마운 마음뿐이다."
Q. '나의 위험한 아내'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하고 출연을 결심했나.
"심재경이 결국 모든 사건을 주도면밀한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점이 좋았다. 이런 여성 캐릭터를 정말 만나기 쉽지 않다. 겉으로는 평범하고 약해 보이는 현모양처라서 그 반전이 큰 쾌감을 줬다. 드라마에서 아내는 주로 약자로 그려지는 데 같은 아내의 입장에서 통쾌하게 느껴졌다. 현실의 우리 아내들이 얼마나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를 위해 희생하며 사는가! 하지만 그 희생이 그만큼 높이 평가받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편들! 평범한 주부를 얕보지 마라' 하는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
Q. 속내를 감추고 주도면밀하게 복수를 계획하는 캐릭터다. 연기하는 동안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았을 것 같다.
"이런 아내가 현실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현실적인 인물로 그리는 게 가장 신경이 쓰였다. 평범했던 주부의 변화를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장면들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다. 또한 가장 멋진 빌런이지만 여자로서 아내로서 사랑받고 싶어하는 느낌도 표현하려고 했다."
Q. 최원영과 연기 호흡이 참 좋았다. 어떤 배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가.
"최원영 씨 같은 상대 배우를 만난 것이 최고의 행운이었다. 정말 유연하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큰 눈으로 진정성을 주는 연기도 잘하고 코미디도 그 누구보다 강하다. 아이디어도 참 좋아서 오래 휴식했던 내게 정말 많은 도움과 조언을 해주었다. 좋은 시너지가 있었던 것 같다. 후반에 웃긴 장면을 찍을 때마다 서로 뭐라고 말로 장황하게 설명 안 해도, 척하면 척척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코미디 호흡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Q. 다른 작품을 통해 최원영과 만나 사이좋은 부부 연기를 해달라는 반응도 많았다.
"언제나 환영이다.(웃음) 후반에 최원영 씨와 같이 했던 코믹한 장면들이 정말 재미있었다. 서로 요리를 하면서 독을 몰래 넣으며 서로를 견제했던 마지막 만찬 그리고 진선미(최유화 분)를 죽인 척한 후 주차장에서 삽을 톱으로 자르던 씬들이 기억에 남는다. 최원영 씨가 정말 재미있게 연기해서 가끔 웃음 참기가 힘들었다. 그때마다 '코미디로 내가 질 수 없다' 생각하고 이 악물고 참았다. 달달한 것도 좋고, 아예 '병맛' 장르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난 정말 코미디를 사랑한다."
Q. 광기 어린 캐릭터를 이렇게 잘 소화해낼 줄은 몰랐다. 그걸 살려내기 위해 잡은 포인트나 특별한 노력 같은 게 있다면?
"나도 몰랐다! 다들 너무 잘 어울렸다고 말씀해주시고 '너 실제로 그런 면이 좀 있지?'라는 의심까지 받았다. 특별한 노력을 한 건 없지만 다들 걱정들을 많이 했었다. 그래도 주인공인데 너무 나쁜 여자처럼 보이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있었다. 4부에 독이 든 와인으로 남편을 협박하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다. 이마에 피가 흐르는 채로 와인을 마시며 신나 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혹시 진짜 와인 마신 거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감독님들이 모니터 후 매력 있다고 응원해주신 이후에는 정말 신나서 한 것 같다. 피도 얼굴에 더 많이 발라 달라고 하고 '검댕 칠'도 얼굴에 더하고.(웃음) 심혜진 선배 앞에서 더 깐족거리고! 더 사이코처럼 보이게 노력했다."
Q.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가.
"홍콩에서 유일하게 즐겼던 취미가 하이킹이었다. 홍콩 사람들은 하이킹을 정말 좋아한다. 좁고 높게 땅을 쓰니 가까운 곳에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가파른 산이 참 많다. 주말마다 신랑이랑 많이 올라갔다. 숲에 둘러싸여 올라갈 때는 시야가 좁지만 힘들게 아무 생각 없이 가다 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뷰가 내려다보인다. 내가 뭘 잘 해내서가 아니라, 어느덧 나도 시간이 흘러 나만의 역사의 작은 뷰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뷰를 가진 배우로 남고 싶다."
Q. '나의 위험한 아내'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과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밤 11시는 사실 내게 한밤중이다. 신랑 덕분에 아침형 인간이 됐고 그래서 11시 드라마는 가끔 졸면서 보기도 했다. 11시 정각에 방송한 '나의 위험한 아내'를 봐주셔서 특별하게 감사하다.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힘든 시간을 견딜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구체적인 활동 계획은 없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할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남편 따라 홍콩에 갈 수도 있다. 홍콩에 가면 14일 동안 또 격리를 해야 하니 꼭 떠나기 전에 미리 연락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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