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3년간 거제도서 귀양살이…사람 그리웠다"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참 친숙한 얼굴이고 덕분에 많이 웃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때보다 인터뷰 현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며칠간 뭘 물어봐야 할지 질문을 어떻게 에둘러 할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만난, 새치 무성한 오달수는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난 19일 배우 오달수 인터뷰를 위해 삼청동으로 향했다. 사람이 적을 것 같은 3시 타임을 신청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14 매체가 몰렸고 급하게 한 시간을 앞당겼다. 취재진이 미리 자리를 잡았고 이후 오달수가 의자에 앉았다. 10초의 정적 끝 그가 먼저 뱉은 말은 "2018년 2월 말 즈음일 거예요"였다. 2018년 2월 영화 '이웃사촌'(감독 이환경)이 크랭크업했고 오달수는 '미투' 의혹에 휩싸였다.
"그때 촬영이 끝났는데 본의 아니게 감독님한테 시간을 많이 드렸습니다. 편집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후반작업들이 굉장히 손이 많이 갔다고 그래야 할까.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게 잘 나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웃사촌'에 무한 책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리를 해봤습니다. 간담회 때는 오랜만에 무대에 서서 카메라 플래시 빛도 받았고 정말 떨리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그 불빛에 타죽지는 않을까 겁도 나고 그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죠."
오달수의 손에는 펜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중언부언하지 않기 위해 기자들의 질문과 자신의 대답을 적었다. 말을 할 때는 펜을 내려놓고 마이크를 잡았다. 손은 계속해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을 향한 불편한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터뷰를 택한 오달수다. "그저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세와 태도, 이런 게 현재의 저"라며 질문에 하나씩 답했다.
"단순하게 살자는 다짐으로 귀양살이를 했습니다. '미치겠다' 뭐 이런 생각들을 모두 지우려고. 가장 단순하게 내 노동력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인력시장을 나갈 수도 없고. 아 나가도 되긴 하네요.(웃음) 큰 형님 내외분이 거제도에 계세요. '단순노동을 반복하자. 그러면 다른 생각도 없어지겠지'하고 거제도에 내려갔죠. 없애고 싶은 생각은 연기를 하고 싶다가 아닙니다. '엉뚱한 생각'입니다. 그 생각을 하지 않게 하려고 가족들도 항상 제 옆에 있어 줬죠."
오달수의 '(웃음)'은 다른 인터뷰 속 '(웃음)'과는 달리 옅고 헛헛한 느낌이다. 종결어미도 '요'가 아닌 '죠' 혹은 '다'와 '까'가 대부분이다. 말투는 느릿했고 중간중간 뱉을 단어를 고르느라 침묵하기도 했다.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기분 나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로 시작되는 질문들도 이어졌다. 그때마다 오달수는 모든 대답을 끝낸 후 "물어보신 게 이것 맞습니까?"라고 되물었다. 어떤 곤란한 질문을 회피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불편한 시선이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부인한다고 부인될 게 아니니까요. 그러나 영화 속 저를 보신다면 이왕이면 (그 캐릭터와) 친해지셨으면 좋겠고 마음을 열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만 양해를 구하고 싶은 부분은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발언의 기회가 있지만 그분들('미투' 의혹을 제기한 A·B씨)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과 다르다는 제 입장은 변함없지만 제 말이 그분들께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 이후에 그분들과 따로 만난 적은 없습니다."
2018년 2월 오달수는 '이웃사촌' 막바지 촬영 중이었다. 충청도 한 대교에는 오달수를 비롯해 300여 명의 보조 출연자, 수많은 스태프 그리고 빌려온 80년대 복고풍 차량들로 붐볐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끝내고 돌아온 서울은 그가 알던 세상과 달랐다. 오달수는 1990년대 초 두 명의 극단 동료를 성추행했다는 '미투' 의혹의 당사자가 돼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덤프트럭에 치인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촬영을 하고 왔을 뿐인데 제가 어디 모처에 숨어서 변호사들과 계획을 짜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술에 의지하다 병원 신세를 좀 지고 그러다 부산의 어머니 집으로 갔고. 그런데 거기도 기자분들이 왔는지 카메라도 있고 낯선 사람도 있고 하니까. 어머니가 '너 여기 있으면 더 힘들겠다' 하셨죠. 이후에 거제도로 가서 오만 것을 다 키웠습니다. 고추 상추 심지어 포도도 몇 개 있고 아침에 물 주는 데만 한 시간 반 걸렸어요."
농사일이라는 게 해가 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긴 밤이 그를 괴롭게 했던 모양이다. 다시 오달수를 취재진 앞에 서게 만든 것은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연기를 고민하던 시끌벅적한 밤만은 다시 찾고 싶단다.
"무한 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에서 욕심이라고 해야 할지. 욕심이라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지만 어쨌든 배우인데 그 생활이 툭 끊겼죠. 농사는 해가 지면 셔터를 내리거든요.(웃음) 어두울 때 그 시골에서 여러 번 많이 느꼈죠. 외롭다. 사람이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툭 끊기니까 그립긴 하더라고요. 제안을 주시고 저도 좋은 작품이라고 느낀다면 하고 싶습니다. 저는 역행하는 게 아니라 다시 가고 싶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에게 "영화 재미있게 봤고 진지한 연기도 참 인상 깊었다. 무거운 이야기만 오간 것 같아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하니 "괜찮아요"라며 미소와 함께 고개 숙였다. 그도 고민 끝에 용기를 낸 인터뷰였을 테니 나 역시 기사를 쓰기까지 많이 고민했다. 평범한 인터뷰로 썼다가 '내가 본' 포맷으로 다시 적어본다. 어쨌든 인터뷰를 털어내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오달수 역시 '이웃사촌' 개봉을 앞뒀으니 3년 동안 가지고 있던 부채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이웃사촌'은 1985년 독재정권 시절을 배경으로 좌천 위기의 도청팀장 대권(정우 분)이 자택 격리된 정치인 의식 가족의 옆집으로 위장 이사를 오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오달수는 차기 대권 주자로 손꼽히는 야권 정치인 의식 역을 맡는다. 오는 25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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