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사건 공범' 재심 준비 중…전문가 "다 소설이다"
[더팩트|문혜현 기자] 2008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간첩 원정화'가 조작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1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그알)는 베일에 쌓인 원정화 간첩 사건을 파헤쳤다. 제작진은 당시 공범으로 지목된 황 전 중위와 원정화 주변 인물들을 찾아가 원 씨의 정체를 둘러싼 의혹을 집중 조명했다.
2008년 7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 원정화는 함경북도 청진시 출신으로, 1988년 고무산여자고등중학교 4학년 재학 시절 학업 성적이 우수해 '이중영예 붉은기 휘장'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당시 검찰 공소장은 원정화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 발탁돼 공작원 양성소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독침 등 살상 무기 사용법, 사격 등의 훈련을 받은 후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포섭돼 탈북자로 위장하고 남한으로 넘어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후 원정화는 우리 국군 장교였던 황 전 중위와 내연 관계를 맺은 뒤 군사기밀을 빼돌리다 체포됐다. 그는 황 전 중위가 자신이 간첩인 사실을 알면서도 내연관계를 유지했다고 주장해 충격을 줬다. 원정화에겐 징역 5년이 선고됐으며 2013년 만기 출소했다. 원정화는 출소 이후 간첩 출신 북한 전문가로 다수 방송에 출연하는 등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반면 황 전 중위는 원정화가 간첩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반인이라고 생각했다. 탈북자고 강연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원히 군복을 벗게 된 황 전 중위와 달리 원정화는 화려한 이력이 알려지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원정화는 자신이 15세에 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위원장에게 발탁돼 낮엔 조직부 서기, 밤엔 정치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이 집안의 성분이 좋아 일찍이 공작원으로 발탁됐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무역업체를 차리기도 했다는 원정화의 이야기는 일반적인 간첩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제작진이 만난 탈북 인사들은 대부분 원정화의 주장에 의구심을 보였다.
그러나 방송에서 한 전문가는 "금성 정치대학은 성인들이 가는 곳이고, 원씨가 다녔다는 대학엔 야간반도 없다. 사로청에는 서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른 전문가도 "원정화가 훈련을 했다는 805 훈련소는 없고 815 훈련소는 있다"며 "그가 미군기지에 대한 정보를 넘겼다고 하는데, 그런 건 위성지도를 보면 다 나와서 군사 기밀로는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날 방송에선 원정화가 거짓말을 했다고 말한 녹취록이 공개되기도 했다. 수사기관이 원정화의 상부로 지목한 의붓아버지 김 씨는 무역업을 한 것만이 진실이라며 원정화가 거짓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다. 녹취록에서 원정화는 "솔직히 말하면 김현희처럼 살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 내가 국가안전보위부다 거짓말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상부라고 한거다. 난 경찰서 유치장에서 살 때 미치는 줄 알았다"며 수사관의 회유가 있었음을 실토했다.
이전에 간첩 활동을 했던 한 인물은 원정화 사건에 대해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라며 "공작금을 스스로 벌어서 쓰라고 했다던데, 돈이 없으면 공작을 안 시키지 스스로 벌어서 쓰라고는 안 한다"고 했다.
'그알'에선 원정화 사건을 조사했던 보안수사대장과 의붓아버지와의 인터뷰, 당시 조사 과정 녹화본 취재 내용을 공개하고 소고기 파동으로 대규모 촛불집회가 일어났던 상황에서 수사기관의 설계로 만들어진 사건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한편 황 중위는 더이상 자신과 같은 간첩 사건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재심을 준비 중이다.
황 전 중위는 "국가가 개인한테 이러면 안된다. 본인도 그렇고 날 생각해서라도 진실을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 사람도 어떤 회유와 협박이 있었을거다. 나한테 했던 것보다 더 했을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이야기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황 전 중위는 방송에서 원정화를 찾아가 만남을 요청했지만 원정화는 경찰을 부르는 등 거부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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