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상업 경계 허문 팝 아티스트, "악몽은 빨리 잊겠다"
[더팩트|강일홍 기자] 낸시 랭(43·Nancy Lang)은 '걸어다니는 아트'로 불릴만큼 핫(Hot)한 팝 아티스트다. 대중적 인지도만큼이나 곧잘 논쟁의 중심에 서 온 그는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허문 독특한 작품세계로 더 유명하다.
한국에서 태어나 줄곧 한국인으로 살면서도 미국에서 오랜기간 사업을 한 어머니 영향을 받아 미국 시민권자 신분을 갖고 있다. 이름도 원래 한국 이름 박혜령에서 랭(Lang)이라는 성(Last name)을 만들어 법적으로 개명했다.
낸시랭이 처음 대중적 관심사로 떠오른 건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당시 수영복을 입고 바이올린을 켜는 길거리 퍼포먼스로 눈길을 끌면서다. 이후 폭넓은 예술적 스펙트럼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2006년 '인간극장' 출연에 이어 2007년엔 LG전자 LCD 모니터의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 광고에 출연했다.
아트디렉터로서 낸시 랭의 특징적 작품세계는 '평범함을 깬' 독창성이다. 그는 개인전 및 다양한 기획전시회를 통해 이를 입증했다. 2010년 YTN '뉴스&이슈'에서는 생방송 중 자신의 마스코트인 '낸시고양이'(코코샤넬)를 남자앵커 어깨에 올려놓는 퍼포먼스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홍익대 미술대학 서양화과(학사/석사) 졸업 직후부터 개인전을 시작, 꾸준한 작품활동을 해왔다. 국내외 다수의 기획전 등 해외 아트페어 그룹전과 함께 총 22회 개인전을 소화했다. 올해만 아트디오션(6월) 이유(8월) 진산(11월) 등 3건의 개인전을 진행 중이다.
자신만의 예술적 세계로 주목받던 그가 '깜짝 회오리'의 중심에 선 건 다름아닌 결혼과 이혼이다. 최근 그는 이혼소송을 일단락 지은 뒤 "빨리 악몽을 잊고 다시 태어나겠다"고 말했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12일 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진산갤러리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혼 소송 등으로 마음 고생이 많았을 텐데 표정이 매우 밝아보인다. 소송은 2년 만인 최근 일부 마무리 지었는데 심경이 궁금하다.
홀가분해요. 빨리 끝내고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법적 절차라는 게 합리적 이유가 있어도 금방 쉽게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상대방이 항소를 했다는 얘길 듣긴 했는데 1심 판결로 사실상 모두 끝났다고 생각해요. 이혼 소송에서 위자료 5000만 원 판결은 상대방의 귀책사유가 크고 위중한지를 말해주는 지표예요. 뒤집힐 만한 근거가 없어요. 물질적 정신적으로 너무 어이없는 일에 긴 시간을 소모하다 보니 우울증을 앓을 정도였어요. 지금 마음은 편안한데 다만 무익한 논란에 휩쓸린 게 부끄럽고 죄송하죠.
낸시 랭은 지난 9월 10일 이혼 판결(서울가정법원 가사6단독)을 받았다. 결혼 2년 9개월 만이다. 결혼한 직후부터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에게는 그야말로 악몽이 따로 없었다. 잘못 묶인 끈을 풀어내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 낸시랭은 2017년 12월 왕진진과 혼인신고를 했으나, 2018년 10월 성관계 동영상을 동원한 리벤지 포르노 협박 및 지속적인 감금·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이혼소송을 진행하는 동시에 왕진진을 상해·특수협박·특수폭행·강요 등 12개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2년 전 남편과 한창 논란이 진행 중일 때 서울 역삼동 갤러리 오월에서 필자와 만난 적이 있다. 인터뷰 하다말고 심경변화로 도중 중단됐을 만큼 당시엔 심리적으로 불안해 보였다. 지금은 괜찮나.
그땐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제가 말하지 않은 얘기들이 이상하게 변질되고 뒤틀려 확산되곤 했어요. 강 기자님과는 이미 사전에 약속된 인터뷰라서 끝까지 진행하고 싶었는데 태연히 대화를 계속할 수 없었어요. 아시다시피 뭐가 뭔지 헷갈릴 정도였는데 한번 꼬이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전 남편'이란 호칭을 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이에요. 아무튼 제 처지를 이해하고 양해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강 기자님을 비롯해 주변 분들의 격려에 용기를 얻어 씩씩하게 잘 헤쳐가고 있어요.
낸시 랭은 2017년 12월 27일, 돌발적인 결혼을 발표했다. 상대는 이른바 '위한컬렉션 회장'인 왕진진(전준주)이었다. 전씨는 당시로부터 6년 전인 2011년경 SBS를 통해 자신이 사망한 장자연과 지인이며 50통의 편지가 사건의 증거라고 제보해 언론을 탄 적이 있던 인물이다. 처음엔 사건의 화제성 때문에 폭발적 주목을 받았지만 후에 모든 게 날조된 것으로 확인되고, 강도와 상해, 성폭행, 특수강도강간죄 등의 전력을 가진 전과자로 실체가 밝혀졌다.
-결혼 발표 직후 각종 사기사건 소송이나 과거 전력 등 객관적 판단만으로 주변에서 먼저 말렸다고 들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두둔하는 듯한 인상을 보여주지 않았나?
제가 어리석었어요. 한마디로 속은 거죠. 그 사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대개 대학교수이거나 회사 대표들이었는데, 이들의 그럴듯한 사업계획이 처음엔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느낌이 좀 이상해도 제가 결정하고 법적 남편으로 선택한 이상 책임을 지고 싶었어요. '속았다'는 객관적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죠. 이제 와서 얘기지만 트럼프에게 쓴 장문의 편지글도 모두 그 사람이 임의로 작성해 제 SNS에 올렸어요.
그는 "이혼 외에 그 어떤 것도 원하는 게 없다"면서 "경제적으로 완전 무일푼이어서 재산 분할은 물론 위자료 5000만 원도 승소라는 상징적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낸시 랭은 전 남편과의 결혼 이혼 과정을 거치면서 8억 원의 빚더미에 올랐다고 한다. 이 빚은 현재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9억 8000만 원에 이른다. 그는 "주변에서 권하는 파산 신청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고, 코로나 상황임에도 국내 전시회 반응도 좋다. 어떻게든 스스로 일어나 본래 자리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팝 아티스트로 '터부요기니'라는 독특한 장르와 작품세계를 만들어냈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있고 어떤 방식의 기법인지 궁금하다.
터부요기니는 표현 그대로 인간에겐 금기시되는 신적 존재를 의미해요. 천사(Angel)와 악마(Satan)의 혼합된 이미지를 갖고 있고, 신과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느 영적인 메신저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표현하는 요기니 시리즈를 보시면 건담 메카닉의 로봇보디 이미지가 많이 차용된 걸 알 수 있어요. 인간의 꿈을 이뤄주는 수호신 콘셉트인데요. 작품을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꿈과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어요. 기법은 다양해요. 콜라주, 아크릴릭 페인팅, 스탬핑, 드로잉, 포토이미지 콜라주, 금속 및 프라모델 오브젝트, 홀로그램 페인트,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규빅 등 여러 재료와 방식이 동원되죠.
낸시 랭은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당시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 게릴라 퍼포먼스로 큰 주목을 받았다. 가부키 분장과 블랙스완 헤어, 하이힐 과 란제리(빅토리아 시크릿) 차림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퍼포먼스였다. 단번에 전 세계인의 이목이 쏠렸다. 그의 꿈은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어려서부터 전 세계를 여행하고 필리핀 국제학교 유학까지 유복했다. 그는 하필 대학에 진학할 무렵 어머니의 암투병과 아버지의 경제적 무기력함으로 소녀가장으로 내몰린다. 이는 훗날 그가 자신만의 독특한 팝 아트 세계로 빠져드는 계기가 됐다.
-인터뷰차 오늘 진산갤러리에 와보니 이전 전시 때 봤던 '터부요기니' 시리즈와 느낌이 바뀌었다. '스칼렛 페어리'는 어떤 콘셉트인가?
비온 뒤에 땅이 더 단단히 굳는다잖아요. 사기 결혼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받고 개인적으로는 작품 세계가 더 깊어졌다고 생각해요. 스칼렛은 채도가 매우 높은 빨간색인데 제 모습과도 흡사해요. 스스로 '낙인' 또는 '찍힘'의 의미라고 할까요.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를 연상하시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 제 아픈 경험을 토대로 전 세계 여성들이 겪고 있는 불합리한 고통과 문화적 차이, 이를 바라보는 여러 사회적 관점 등에 공격적이지만 유쾌한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스칼렛(Scarlet) 시리즈는 여성들이 겪는 고통과 시각을 캔버스에 표현한 작품들이다. 낸시랭은 작가라는 아티스트 신분을 떠나 한 여성으로서 자신이 겪은 극심한 가정폭력과 포르노리벤지 협박, 사기결혼, 이혼녀 등을 진지하게 고민한 뒤 '사회적 낙인'(Stigma)을 새로운 작품세계로 만들어냈다. 여성이 갖는 삶과 물음을 신작 '스칼렛' 시리즈를 통해 극사실주의 기법의 유화로 펼쳐냈다. 지난해부터 미국 마이애미, 이스탄불,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출생이나 나이, 가족사 등 여러 의혹과 진위 논란에 자주 휩싸이곤 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솔직하게 실체를 말해줄 수 있나.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니 의혹으로 번져가더라고요. 76년 서울에서 태어나 압구정초(구정국민학교)와 신구중학교를 다녔어요. 필리핀 국제학교(마닐라 인터네셔널 스쿨)에 다닌 뒤 홍익대에 진학했고요. 미국에서 25년 사업을 하신 엄마가 시민권자여서 어려서부터 이중 국적으로 살았어요. 18살 때 미국시민권을 선택했고요.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고, 엄마가 모든 걸 해결해줬어요.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제 언급은 엄마가 생전에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했기 때문이고, 엄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을 때도 아버지는 없었어요. 함께 살던 아주머니와 단둘이 장례를 치렀어요.
낸시 랭은 2012년 4월 시사평론가 변희재와 온라인 채널 인사이트 TV '3분토론'에서 논쟁을 벌였다. 가족사에 대한 의혹과 논란은 변 씨가 2013년 4월부터 낸시 랭의 당시 발언들에 대한 진위 의혹을 집중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부친 생존 여부가 논란이 됐다. 낸시 랭이 자신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밝혔기 때문인데, 실제 아버지 박상록 씨는 오래 전 가족을 떠나 교류가 단절됐다고 했다. 그는 "아픈 아내와 외동딸에 대한 부양 책임은커녕 모든 짐(사업실패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떠넘기고 사라져 가족간 유대가 끊어진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낸시 랭'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상징적 이미지가 있다. 마스코트처럼 어깨 위에 올려놓는 '낸시 랭 고양이'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네,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보시면 되요. 제가 세계적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열렬한 팬이어서 이름을 '코코샤넬'로 지었어요. 앤디 워홀 같은 유명 팝 아티스트도 꽃이나 기계적 이미지를 차용해 추상적 표현주의 작품을 많이 만들어요. 명품 로고 이미지를 상업 예술로 결합하기도 하죠. 저한테 코코샤넬은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속에 등장하는 장미꽃 같은 존재예요. 코코와는 일본 도쿄에서 가진 초대작가 기획전 오프닝 때 인연을 맺었죠. 처음엔 팔에 끼고 다녔는데 어딘가 부자연스러웠어요. 제가 보기보단 글래머 체형이라 어깨 위에 올려놓으니 딱 안성맞춤이더라고요.
낸시 랭은 코코샤넬과 수제 고양이인형 가게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동안 수차례 리폼을 하면서 12년째 함께하고 있다. 그는 "하필 그 무렵 방송 출연이 유독 많이 쏟아졌는데 PD들이 시청자들의 눈에 거슬리고 거북하다며 불편해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연예인들이 불필요하게 큰 선글라스나 모자를 쓰고 나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종의 콘셉트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뉴스 생방송 패널로 출연해 돌발적으로 남자앵커 어깨에 올려놓는 퍼포먼스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낸시 랭은 현재 서울 마포구 합정동 진산갤러리에서 전 세계 여성들의 고통과 시각을 담은 '스칼렛 페어리'를 전시 중이다. '시선37.7도' '스칼렛 판타지'에 이은 올해 세번째 개인전이다. 작품에는 사기결혼과 가정폭력 등 최근 몇년 사이 자신이 직접 겪은 아픈 경험들이 표현됐다.
"잘못된 인연으로 저는 짧은 기간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어요. 가정적으로도 불행했어요. 엄마가 4번이나 재발을 반복해가며 17년간 암투병을 했고, 그런 와중에 아버지는 가족을 외면했어요. 터부요기니 시리즈처럼 신작 시리즈 '스칼렛'은 그런 저의 내면의 아픔들이 담겨 있는 셈이에요."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해서는 구사마 야요이나 루이즈 브르주아를 예로 들었다. 야요이는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정신착란 증상을 겪은 뒤 일본의 조각가로 우뚝 선 설치미술가다. 루이즈의 작품세계 역시 유년 시절 부모의 아픈 가족사로 배신과 불안감, 복수심, 집착, 불균형, 고독과 관련이 있다.
낸시 랭은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허문 국내 첫 팝 아티스트라는 입지를 다졌다. 화장품 회사를 직접 경영한 바 있고, LG, 삼성, KT 등 대기업 광고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이는 '낸시 랭'이라는 이름이 곧 작품이고 브랜드라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스페셜인터뷰이로 만난 그는 처절했던 지난날의 아픔을 자양분 삼아 새로운 도전과 열정을 보이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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