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X이정은X노정의의 특별한 연대
[더팩트 | 유지훈 기자] 탐문수사의 재미에만 푹 빠져있었는데 어느덧 감동이 밀려온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 세진(노정의 분),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현수(김혜수 분)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 순천댁(이정은 분)의 이야기를 담는다. 단편 '여고생이다'로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지완 감독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현수의 삶은 엉망이다. 남편과는 이혼 소송 중이고 경찰로서 복직도 쉽지 않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 위해 그는 세진이라는 소녀의 실종 사건을 맡는다. 세진이 지내던 섬으로 향하고 다시 퍼즐을 하나씩 맞추기 시작한다. 섬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현수는 말을 하지 못하는 순천댁이라는 인물을 알게 된다.
순천댁은 말 대신 건네는 메모지 위 글씨도 행동도 모든 게 투박하다. 하지만 세진의 행적을 추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범죄사건의 주요 증인으로 채택된 세진을 돌봐주던 두 형사, 연락이 두절된 가족을 차례로 만난다. 현수는 어느덧 고등학생 소녀가 홀로 감내하고 있었을 슬픔의 무게를 알게 된다. 그리고 모두의 만류를 뒤로 한 채 홀로 진실에 다가선다.
전체적으로 무거운 톤을 유지하는 영화다. 웃음이라는 곁가지 대부분을 쳐내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만 집중한다. 위트 대신 현수가 세진의 주변 인물들을 탐문 수사하는 과정으로 추리의 재미를 첨가했다. 그저 현수가 다른 사람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들이 이어지는 데도 긴장감은 계속된다.
현수 세진 순천댁 모두 각자의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래서 서로가 숨기고 지내는 상처가 얼마나 쓰라린지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실종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으로 시작된 인연이지만 어느덧 서로의 상처를 짐작하고 있는 연대로 발전한다. 그 연대는 스크린을 넘어 관객에게 형용하기 어려운 위로로 전달된다.
충무로를 대표하는 김혜수 이정은라는 두 명의 연기 배테랑과 아역에서 어엿한 배우로 성장한 노정의는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김혜수는 삶에 찌들어 초췌하다가도 몇몇 순간에는 눈빛을 바꿔 카리스마를 뿜는다. 진실에 다가서며 변화하는 내면 연기도 좋다. 이정은은 제대로 뱉는 말 한마디 없이 눈물샘을 자극하고 노정의는 모든 것을 잃은 소녀의 면면을 자신만의 연기로 빚어낸다.
억지로 짜낸 신파가 아니라 눈물과 함께 전달되는 메시지도 끝까지 힘있다. 후반부 펼쳐지는 극적인 장치만 이겨낸다면 깊이 있는 이야기를 지닌 영화가 탄생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터다. 박지완 감독은 "결코 여성 영화라는 생각으로 작업하지 않았다"고 강조해왔다. 세 주인공 모두 여성이지만 아픔을 지닌 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12세 이상 관람가고 러닝타임은 116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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