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반도' 이정현, 여전사의 모성본능

이정현이 반도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여전사 민정역으로 분한 그는 남다른 생존본능에 모성애를 겸비해 상렬한 카리스마를 뿜는다. /NEW 제공

"모성애가 곧 전투력, 매력적인 설정이었죠"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이정현은 1996년 개봉한 '꽃잎'에서 10대 소녀라고 믿기지 않는 무시무시한 연기력으로 중무장한 '충무로 기대주'였다.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연기 대신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게 버거워 한동안은 해외 활동에 매진했고 2011년부터는 박찬욱 감독의 단편 '파란만장'을 시작으로 다시 배우로 활약 중이다. 이렇게나 연기를 잘하는 이정현인데 당시 세상은 야속하게도 '테크노 전사'라는 수식어로 불렀다.

이정현은 지난 15일 개봉한 '반도'(감독 연상호)에서 여전사 민정 역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영화 속 그는 좀비로 황폐화된 세상에서 두 딸 준이(이레 분) 유진(이예원 분)을 위해서라면 뭐든 척척 해낸다. 좀비들을 향해 맹렬히 총을 쏘고 처절한 액션을 펼친다. '명량'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군함도' 등에서 돋보였던 생존본능에 모성애까지 덧입혔으니 또 다른 주인공 정석(강동원 분)마저 웃도는 맹활약이었다.

"민정의 강인한 생명력은 아이들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강렬한 액션을 소화하는 게 다 이해가 됐어요. 모성애로 생긴 전투력이라는 설정이 참 좋았어요. 영화를 본 어머니들이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코로나19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성적이 좋아서 다행이에요. '반도'를 기점으로 영화관에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정현은 이예원 이레(왼쪽부터)의 어머니 역을 맡았다. 두 딸을 위해서라면 맹렬한 좀비들의 돌격도 능히 이겨낸다. /NEW 제공

이정현은 딸만 다섯인 집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 덕분에 여덟이나 되는 조카의 육아를 도왔다고 한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먹이면서 어머니의 삶이란 무엇인지 가늠했던 나날들은 모성애로 중무장한 민정 캐릭터 이해에 도움이 됐다. 딸 역할을 맡았던 이레와 이예원도 그를 어머니처럼 따랐고 그 특별한 유대는 이정현 표 '처절 액션'으로 이어졌다. 두 딸을 위해서라면 그는 전투력 '만렙'의 여전사가 된다.

"영화 촬영 전에 무술 감독님께 얼마나 연습을 하면 되는지 여쭤봤어요. 그러니 감독님이 어려울 거라고 하셨어요. 혼자 액션 스쿨에 가서 구르기 이단 옆차기 별에 별걸 다 했어요. 그런데 막상 촬영 현장에 가니까 그런 무리한 액션은 안 시키시더라고요(웃음). 연상호 감독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영화에 정확히 필요한 컷을 알고 계시고 그 이상으로는 지시하지 않으세요."

'부산행'의 팬이었던 이정현은 수차례나 영화를 관람했고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역'도 챙겨봤다. 그리고 꿈처럼 연상호 감독에게 연락이 왔을 때 '드디어 올 게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무슨 캐릭터를 맡게 될지도 모른 채 시나리오를 읽었고 민정 역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서 좀비들에게 총을 난사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짜릿한 일이었지만 그린 매트에서 숨 막히는 차량 추격신을 찍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

이정현은 반도이 액션을 소화하기 위해 촬영 전부터 액션스쿨을 다녔다. /NEW 제공

"카체이싱 촬영을 많이 걱정했어요. 제가 운전을 잘하지 못해서 그랬어요. 이걸 '어떻게 찍지' 싶었는데 전부 다 CG였어요. 현장에 가니까 트럭 앞머리만 잘려져 있더라고요(웃음). 촬영하고 나면 바로 CG를 입혀서 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어요. '한국 영화가 이렇게나 발전했구나' 하고 놀랐어요. 매년 조금씩 영화 현장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이정현은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모두 강렬한 인상이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세상을 향한 복수를 펼치는 5포 세대, '명량'에서는 가족을 잃은 언어 장애인, '군함도'에서는 강인한 조선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정현의 뜻이 아니었다. 관객의 취향이 변하자 그도 점차 강렬한 인상의 캐릭터를 맡게 됐을 뿐이었다. 비록 그가 좋아하는 작품에서의 로맨스는 없지만 현실의 그는 지난해 결혼에 골인했고 지금은 풋풋한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다.

"신랑은 제가 물어보는 작품마다 다 좋기만 하대요. '이건 재미없다' '이건 하지 말아라' 하는 게 없어요(웃음). 저도 로맨스를 하면 좋긴 하겠지만 그래도 계속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살래요. 대신 오랜만에 드라마가 하고 싶긴 해요.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들어오면 움직여보려고요."

이제 세상은 그에게 마이크를 들고 춤추라고 부추기지 않는다. 방송사는 그를 초대해 남다른 요리실력과 인간적 매력을 뽐낼 기회를 주고, 충무로는 배우로서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라며 시나리오를 건넨다. 한동안 그의 활약은 계속된다. 올해에는 '반도'에 이어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이 개봉하고 차기작 '리미트'는 올여름 크랭크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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