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트로트 오디션 앞두고 더 옹색해진 기성 가수 입지
[더팩트|강일홍 기자] '4인방'(四人幇)은 60년대 중국 문화혁명 시기에 마오쩌둥 주변에서 권력을 장악한 4명의 인물들을 지칭하면서 탄생된 말이다. 국내 가요계에서는 90년대 이후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가 방송출연 등을 싹쓸이하며 '4인방'으로 불렸다. 본래 의미가 부정적이어서 사실 용어부터 '4총사'로 수정돼야 맞다.
"젊은 사람들이 트로트를 좋아하게 된 건 내가 길을 터놨기 때문이다. 비(정지훈)와 내가 '라송'(LaSong)을 할 때부터였다. 내가 (멍석을) 깔아둔 거다. 원래 현철 송대관 형님과 설운도씨, 이렇게 트로트 4인방이었다. 요즘 진성이 들어와서 5인방이 돼가는 것 같다. 진성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진성아 사랑한다. 영웅아 사랑한다."
태진아는 최근 SBS PLUS '밥은 먹고 다니냐'에 출연해 트롯 열풍에 대한 속내를 이렇게 털어놨다. 수십년간 트로트 터줏대감으로 군림해온 '관록의 가수' 태진아이기에 언급할 수 있는 말이다. 경쟁자를 의식하지 않는 대범함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지켜본 상당수는 다르게 해석했다. 우선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 '미스-미스터 트롯' 폭발 이후 환경 급변, 인기 사다리 붕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트로트 매니저 출신의 연예기획사 대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을 빗댔다. 그는 "불과 2년 전까지만해도 이 얘긴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지금은 절대 아니다. 아무리 예능프로그램에서 농담처럼 언급했어도 공감이 안 가는 얘기라 낯뜨겁게 들린다"고 했다. '자기중심적 편향 해석'이라고 꼬집었다.
가요계에서부터 이런 반응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트로트 환경의 급변이다. '미스, 미스터 트롯'의 폭발 이후 기성가수들의 입지는 갈수록 옹색해지는 분위기다. 트로트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뜨거울수록 대중의 관심은 뉴페이스에 쏠린다. 이는 수십년 공들여 올라선 '인기 사다리'가 하루아침에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 트로트 '4인방', 장기간 경쟁자 없이 독주하다 스스로 해체
한때 가요계는 몇몇 인기 가수들이 트로트 분위기를 주도했다. 인기를 앞세워 히트곡 흐름과 장르까지 장악했다. 방송 출연에까지 영향력이 생기다보니 일부 신인들은 그들의 주변에 줄을 서야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른바 '트로트 4인방'으로 불린 주인공들은 장기간 경쟁자 없이 독주하다 스스로 붕괴 또는 해체 상황을 맞았다.
올 가을 방송가에는 지상파까지 가세한 4편의 굵직한 트로트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진다. 와중에 기성가수들의 입지도 재편되는 분위기다. 각 프로그램마다 누가 아마추어 신인들을 컨트롤할 '트로트 멘토'로 합류하느냐는 새로운 자존심이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진성 강진 조항조 등이 소위 '신 트로트 주역'으로 언급되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인기는 거품이다. 정상은 올라서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다. 안주하면 언젠가는 추월당하기 마련이다. '잘 나갈 때 더 겸손하라'는 말은 늘 금과옥조로 들리지만 막상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가요계의 판도는 트렌드 변화와 함께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4인방'이나 '5인방'은 이제 의미가 없다. 트로트 열기가 만든 신풍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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