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D-베스티(BESTie) 출신, "트로트 깊은 맛에 푹 빠졌어요"

[더팩트｜강일홍 기자] 신세대 트로트 가수 강혜연(29)은 걸그룹 EXID와 베스티(BESTie) 리드보컬로 활동하다 전향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워낙 트로트를 좋아했던 데다 주변에서 장윤정 선배님을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살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거부감이 없었다"고 했다.

트로트와 만남도 자연스러웠다. 걸그룹으로 활동하면서 Mnet 트로트 서바이벌프로그램 '트로트X'에 출전할 만큼 트로트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기 때문이다. '트로트X' 무대에 도전한 그를 눈여겨본 현 소속사 최용수 대표가 대성 가능성을 일깨웠고, 그는 서슴없이 장르 이동에 동의했다.

트로트 가수 데뷔 2년차인 강혜연은 '젊은 트로트'를 이끌고 있는 상큼 발랄의 상징이다. 미니 1집에 실린 데뷔곡 '왔다야'는 경쾌한 리듬의 세미트로트로,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왔다' 또는 '그 사람이 최고야'라는 중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장윤정의 데뷔 시절 분위기와 닮은 특유의 애교와 사랑스러운 느낌이 잘 배어난 노래다.

강혜연의 진짜 매력은 가창력이다. 그는 맑고 청량한 음색과 보이스에 특유의 고음역대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평소 마야, 자우림, 린, 거미,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현미, 장윤정, 조용필 등 존경하는 트로트 선배들을 꼽는 첫번째 기준 역시 가창력이다.

트로트 잠재력을 먼저 알아본 곳은 가요계다. 매회 쟁쟁한 선배가수들이 등장하는 '가요무대'에서는 2018년 11월 '바다가 육지라면'(조미미)을 부르며 첫 무대에 선 뒤 최근까지 무려 16회 출연할 만큼 전통 트로트곡 소화력을 인정받았다. '트로트 젊은 피'의 주역을 직접 만났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0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아이돌 가수로 활동하다 성인가요계로 방향을 틀었다. 활동무대가 전혀 다른 데다 음악적 차이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기자님은 정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족집게처럼 찝어내시네요. 네, 지금은 많이 적응된 편인데 처음엔 힘들었어요. 아이돌 멤버시절엔 소속사에서 시키는대로 하면 됐거든요. 방송할 때도 약속된 코멘트와 정해진 리액션을 하면 그만이었어요. 그런데 트로트 가수로 홀로 서보니 모든 게 저한테 초점이 맞춰지더라고요. 걸그룹 시절 혹독한 훈련이 나름 도움이 되는 건 있는데 실수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금방 표가 나요. 또 트로트는 발라드나 댄스 못지 않게 공부를 많이 하지 않으면 맛을 낼 수 없는 장르예요.

강혜연은 EXID 초기멤버(2012)로 가요계에 입문한 뒤 이듬해 베스티의 리더로 활동했다. 트로트 가수 변신은 베스티 활동 중에 Mnet 서바이벌 '트로트X'(2014)에 출연한 게 계기가 됐다. 결승까지 가진 못했지만 4년 뒤 트로트 진출의 교두보가 된 셈이다. 그는 "트로트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섬세한 음악적 깊이를 새삼 깨닫는다"면서 "이전 아이돌시절보다 두 배 세 배 더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겸손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창력은 선배들로부터 빠르게 인정받았다. 베스티 시절엔 다수의 피처링에 참여하기도 했다.

-얼마 전 '가요무대'에서 선배가수 나미의 '인디언 인형처럼'을 부른 뒤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올랐다. 역동적인 율동이 화제였다.

걸그룹 시절 아이돌 중심 음악프로그램엔 숱하게 출연했지만 의미가 달랐어요. 트로트 신인인 제가 '가요무대'에서 댄스를 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에요. 사실 연출자 선생님의 특별한 요청이 있었어요. 늘 조용하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가요무대 분위기에 생기발랄한 이미지를 살려보라고요. 이 노래를 부른 뒤 제 존재감이 한방에 상승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마침 주어진 노래도 댄스풍의 노래여서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었죠.

강혜연은 한 달여 전인 지난달 6월1일 '가요무대'에 등장해 경쾌한 무대를 선보였다. 이날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경쾌한 토끼춤을 선보인 그는 다양한 안무 동작과 함께 노래를 열창했다. 방송 직후 그는 심야시간대임에도 네이버 검색 순위를 장악했다.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2주 후인 지난달 15일엔 자신의 곡인 '왔다야'를 불렀다. '가요무대'에서 신인이 신곡을 부르는 건 이례적인 일이지만 이 역시 방송 직후 포털 검색 순위에 오르며 관심을 받았다.

-트로트 신세대답게 유튜브 채널에서도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유튜버로서 주로 어떤 스타일의 방송을 하는지 궁금하다.

선배님들의 대중 히트곡을 부르는 커버송인데 반응이 좋아요. 원곡보다 잘 부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저만의 스타일과 음색으로 재해석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10개월 정도 됐고 지금은 고정 구독자(시청자)가 꽤 늘었어요. 매주 화요일 저녁엔 2시간씩 라이브 방송도 해요. 즉각적인 피드백이 생기다 보니 늘 긴장을 하는데 다만 TV와 다른 점은 제 방식대로 편안하게 진행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다른 방송 스케줄이나 행사 때문에 부득이 라이브를 할 수 없을 때는 양해를 구하고 미리 고지를 하기도 해요.

강혜연은 유튜브 채널 '강혜연'을 운영하며 나훈아, 이미자, 심수봉 등 선배가수들의 커버곡을 주로 업로드하고 있다. 최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산슬(유재석)의 '합정역 5번 출구' '사랑의 재개발', 송가인의 '가인이어라' '이별의 영동선' 등에서부터 30년대 가수인 남인수의 '울며 헤어진 부산항'같은 노래도 있다. 집근처에 따로 마련된 연습실에서 영상을 담아 음원을 합성(녹음실)하는 방식으로 커버송을 만든다. 그는 "아직은 세미트로트가 편하긴 한데 연습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차츰 전통트로트를 더 많이 부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벌써 신곡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아직은 대중적 히트곡이 없는 상태여서 신곡을 내는 일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어떤 마음가짐인지.

트로트 선배님들 중엔 노래 한 곡 히트하기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란 얘기를 들었어요. 그만큼 오랜 정성과 공이 들어가야한다는 거죠. 히트 사이클이 3개월 또는 6개월로 짧은 아이돌 장르와 비교하면 전설 같은 얘기예요. 잉태한다는 말은 낯설고 외람되지만 너무 기대가 되요. '사랑의 미끼'란 곡인데요. 두렵기는커녕 데뷔 곡을 낼 때보다 더 업되는 기분이에요. 도입부에 내레이션을 담은 독특한 댄스 장르인데 한 마디로 딱 제 스타일이라고 보시면 되요. 앨범 녹음은 모두 끝났고요, 이번 달 중에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마무리 작업 후 다음달 중엔 발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강혜연은 이번 신곡에 자신의 깜찍 발랄 이미지를 맞춤형으로 장착했다. 사랑을 쟁취하려는 순수한 의도를 '낚시성 미끼'에 담아 적극적으로 구애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감칠맛 나는 트로트 느낌에 댄스와 율동을 가미한 신나는 곡"이라면서 "녹음을 하면서 뭔가 느낌이 오는 것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마도 그게 히트 조짐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강혜연은 Mnet '트로트X'에 이어 KBS2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에도 도전한 바 있다. 자연스럽게 발라드에서 트로트로 전향한 걸그룹 출신 홍진영과 강변가요제 출신의 선배가수 장윤정을 롤 모델로 삼았다.

-첫 만남부터 매우 명랑 쾌활 발랄한 느낌을 준다. 원래 성격이 그런가. 평소 스타일이나 일상의 관심사도 궁금하다.

명랑 쾌활 모드가 제 원래 성격인데 혼자 있을 땐 조용한 편이에요. 때론 매우 사색적이에요. 아이돌 활동하면서 통제되고 억압된 생활을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바뀌더라고요. 방송 카메라 앞에선 연기하듯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습관처럼 됐어요. 본성 그대로가 아니라 어느 순간 표정관리도 일이 돼 있더라고요. 점점 사람을 기피하게 되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보다는 자유로운 저만의 시간을 갈구하게 됐어요. 다행인 건 트로트 전향 후엔 사교성 넘치는 제 본 모습이 하나씩 드러나는 것같아요. 만나는 분마다 적극적으로 달려가 인사하고, 애교있게 행동하죠. 선배님들도 이런 저를 많이 예뻐해주세요.

강혜연의 일상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구석이 있다. 그는 집 베란다에서 100여 가지의 다양한 식물을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그는 "노래 연습하고 유튜브 하고 인스타그램이나 패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제 나이대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라면서 "화초를 관리하는 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나 하는 걸로 생각하는데 제가 직접 해보니 이것만큼 정서적으로 유익한 일은 없는 것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돌 시절 과도한 리액션에 습관이 돼 영혼마저 탈탈 털린 기분이었는데 식물과 대화하듯 조용히 지내는 시간이 많아 너무 행복하다"면서 "저를 닮은 귀여운 시바견(일본을 대표하는 개)과의 교감은 또다른 즐거움"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상형 남자 또는 미래의 배우자상에 대한 기준, 바람이나 소망이 있다면 알려달라.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을 나이 아닌가?

이성에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하겠죠. 한데 전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연애나 사랑 같은 애정문제에 올인하는 일에선 좀 벗어나 있어요. 지금 저한테는 노래가 전부이거든요. 물론 적극적으로 제 이상형을 표현한 적도 있었죠. 뮤지컬 배우 조정석 씨 같은 스타일이 좋았어요. 배우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훼손하면서까지 연기에 몰두하는 진지함이 맘에 들었어요. 일에 대한 열정 못지않게 유머감각도 넘치고요. 한때 드라마 촬영장까지 가서 응원할 만큼 열성팬이었는데 어느날 가수 거미(박지연)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허탈했죠. 이성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지나면 바뀌는 것 같아요.

"마음이 서로 소통 교감 되는 남자라면 누구라도 좋다. 아직 사귀는 남자는 없지만 서른 중후반 쯤엔 결혼하고 싶다." 강혜연은 자신의 감정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놨다. 대신 진지하거나 심오한 남자보다는 긍정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남자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스로 장난끼가 많아서다. 일상의 가벼운 장난을 활력소로 받아줄 화통하고 유쾌한 상대를 만나고 싶은 소망은 이 때문이다. 강혜연은 베스티 시절에도 소속사 대표를 웃겨줄 만큼 늘 분위기 메이커였다.

강혜연은 여고 2학년 때인 2007년 제9회 부평청소년가요제에서 머라이 캐리의 '히어로'를 부른 뒤 당당히 금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는다. 이미 중학교 시절 그는 '가수 장윤정 선배를 닮았다'는 얘기를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자연스럽게 '어머나' '짠짜라' 등을 자주 따라 불렀고, 트로트와도 친숙해졌다.

"일찍부터 트로트를 좋아했던 만큼 곧장 트로트 쪽으로 데뷔를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죠. 당시엔 트로트를 평가하는 시선이 달라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어요. 그렇다고 아이돌 시절을 후회하진 않아요. 오히려 걸그룹 경험이 축적돼 트로트의 맛과 매력에 더 빠져 살고 있어요. 내친김에 트로트 반란의 주역으로 우뚝 서야죠."

유튜버로서도 그는 개성이 넘친다. 이는 과거 아프리카TV에서 자신의 애칭 'dj파카혜연'으로 열혈 시청자들과 교감한 경험도 한몫을 한다. 그는 '와따 강혜연 응답하라' 라이브 방송(매주 화요일 오후 8시 30분~10시 30분), 금 오후 8시 커버 영상, 비정기 브이로그 패션, 일상 영상 등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강혜연은 EXID 출신 일부 멤버 중에선 외모의 변화가 가장 적은 것으로도 누리꾼들 사이에 주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소속사 J&J EMG 최용수 대표는 "깨끗한 이미지에 보기 드물게 가창력을 겸비한 아이돌 출신이란 점이 최대 강점"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강혜연은 트로트에 대한 평소 소신과 열정, 각오를 강하게 내비쳤다. "제 음색은 트로트로 싹 바뀌었고 이젠 어디로든 되돌아갈 퇴로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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