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편집자 주>

'꼰대인턴' 다시 하고 싶을 만큼 행복했던 현장

[더팩트｜이진하 기자] "악역만 맡으면 성공률 100%."

박기웅이 지난 5월 28일 서울 성동구에서 진행된 MBC 수목드라마 '꼰대인턴'(극본 신소라·연출 남성우) 촬영 현장 공개 및 기자간담회에서 악역 성공론에 대해 언급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악역 성공률'은 통했고 그가 출연한 '꼰대인턴'은 수목극 시청률 1위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박기웅은 지난 1일 종영한 '꼰대인턴'에서 그룹의 총수인 남궁표 회장의 외아들이자 준수 식품의 대표 이사인 남궁준수 역을 열연했다. 그룹의 대표 이사지만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신임하는 가열찬(박해진 분)과 대립각을 세우며 질투와 열등감을 드러내는 등 그동안 보여줬던 악역과 다른 악동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줬다.

인터뷰 일정이 잡히고 질문을 고심하면서 촬영 현장에서 처음 실물을 접했던 그날을 떠올렸다. 기자간담회 장소였던 카페 한가운데 앉아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출연 배우들과 수다를 떨었고 특유의 큰 눈망울로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지나치는 현장 스태프들과 기자들에게 눈을 돌리는 등 호기심 많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컬러풀하게 프린팅 된 아이보리 색 티셔츠에 회색 수트를 입은 그는 의상만으로도 자유분방한 남궁준수 그 자체였다. 또 다리를 꼬은 채 뒤로 젖혀 앉아 옆에 있는 의자 위에 팔을 받친 모습에서 자신감마저 넘쳐 보였다. 기존 드라마를 통해 각인된 악동 같은 이미지가 그대로 보였다.

3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박기웅을 두 번째 보았다. 주황색 티셔츠에 모자를 눌러쓴 그는 30대 중반이라고 보기에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또 성수동에서 봤을 때와 달리 장난기 가득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눈빛과 말투 행동 하나하나 진중함이 묻어나 전혀 다른 사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드라마 종영이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대외적으로는 24부작이고 6주 동안 12부작이 방영됐는데 재미를 느끼려고 하니 끝나버린 것 같아요. 배우들 단톡 방에서 이야기할 때면 종영이 더 실감이 안 나서 내일 다시 촬영을 나가야 할 것 같아요."

드라마 촬영 기간 중 코로나19 사태가 악화되면서 어려움도 겪었지만 그만큼 배우들과 돈독해지고 친해졌다고 말하는 그는 마치 전학을 가서 또래 친구들과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다. 유독 이번 작품은 배우들과 케미스트리가 좋았다고 말하는 그는 조심스럽게 시즌2를 희망하기도 했다.

"사실 저 말고도 모두가 다시 한번 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어요. 작품이 짧아서 그런지 또래 배우들과 친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말 행복하게 촬영했어요. 음식으로 비유하면 '삼겹살 집에서 1인분만 더 시킬까' 하는 그런 느낌이라면 이해되실까요?(웃음) 열린 결말로 끝난 것도 있고 배우들 모두가 시즌2를 희망하지만 저희 뜻만으로 쉽게 결정될 일은 아니죠."

그는 '꼰대'를 주제로 한 드라마이기에 '꼰대'에 대한 생각과 현장에서 꼰대 같은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꼰대'라고 지칭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고 재차 밝혔다. 또 현장에서 가장 가까워진 사람으로 배우 손종학을 꼽았다. 두 사람은 지난 2018년 상반기 SBS 드라마 '리턴'(극본 최경미·연출 주동민)에서 한 차례 호흡한 적이 있다.

"손종학 선배랑 전작을 함께 출연했지만 많은 신을 함께 하지 않았어요. 이번 작품은 정말 배우들과 스태프들과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손종학 선배랑은 유난히 말을 많이 하지 않았죠. 그런데도 연기의 합이 너무 잘 맞았어요. 연기가 통했던 거죠. 그리고 꼰대 같은 사람은 정말 없었어요. 사실 주변 배우들도 가장 좋아하는 연기자 선배님들만 모아 놓은 현장이 바로 저희 현장이었죠."

박기웅은 중간에 진행됐던 기자간담회와 다수의 인터뷰를 통해 현장 분위기를 많이 언급했다. 그 배경에 대해서는 첫 번째로 '꼰대가 없었다'고 말했고 다음은 '공감대가 맞는 또래와 함께해서'라고 말했다.

"배우들이 나이가 거의 비슷했어요. 그래서 공감하는 것도 많았죠. '너 옛날에 무슨 전과 썼냐?'부터 시작해서 '대전엑스포' '부레옥잠' 등의 키워드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해진이 형은 제가 엄청 놀렸는데, 특히 그 형이 마지막 국민학교 졸업생이라 '국졸형'이라고 놀렸어요."

악역이면서 대표이사 역이라 마케팅 영업부 사람들과 완전히 어울릴 수 없어서 아쉬웠다고 말한 박기웅은 자신의 신이 없어도 현장에 미리 가서 배우들과 수다 떨고 놀았다고 밝혔다. 이렇게 또래에 목이 마른(?) 것은 아무래도 전작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이번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한 게 전작품 같아요. '신입사관 구해령'(극본 김호수·연출 한현희)에서 왕 이진 역을 맡았기 때문에 그때 너무 힘들고 외로웠어요. 한참 선배분들이 오랜 시간 제 앞에 서서 연기하시는데 저는 의자에 앉아 용포를 입고 있으니 얼마나 불편했겠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정반대의 의상을 입었고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또래 배우들과 함께하는 신들이 있어 재미있게 촬영한 것 같아요."

자유분방한 남궁준수를 표현하기 위해 박기웅은 의상 준비도 철저하게 했다고 말했다. 질투심 많고 열등감 많은 아이 같은 준수를 표현하기 위해 일반적인 느낌의 회사원 복장보다 반바지나 트레이닝 복처럼 파격적인 의상을 입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고 전했다.

"감독님이 처음 남궁준수 역을 설명해주셨을 때 밉상이지 않은 악역 연기를 보여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의상도 신경 쓴 거죠. 반바지를 입고 있으니 용포 입을 때보다 편하잖아요. 그래서 막 엎드려서 회의하고 그런 모습을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기적인 배우, 이기적인 사람을 싫어한다고 밝힌 그는 '꼰대인턴' 팀워크가 좋았던 이유에 대해서도 '그런 사람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구팀과 축구팀 등 단체 운동에 비유했다. 물건도 쉽게 떨어뜨리거나 쉽게 바꾸지 않는다며 평소 휴대폰도 쉽게 바꾸지 않고 오래 쓰는 편이라고 밝혔다. 배우로서 대중들의 반응에는 얼마나 민감할까.

"평소에 저는 테레비(?)도 잘 안 보고 인터넷도 잘하지 않는 편이에요. 포털 사이트에 댓글 기능이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라이브톡이나 영상 클립에 댓글 기능이 있다는 걸 전 타임 인터뷰에서 알게 됐어요. 하지만 대중의 반응을 신경 안 쓰는 건 아니예요. 대배우라고 하는 알파치노가 연기를 해도 만약 대중들이 '저 연기 별로야'라고 하면 별로인 거죠.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대중의 반응을 살피는 게 숙명이라고 생각돼요."

한층 진지해진 그의 눈빛에서 17년 차 배우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데뷔 초 휴대전화 CF 속 '맷돌춤'이 여전히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그는 2005년 영화 '괴담'으로 데뷔해 2010년 KBS2 드라마 '추노'와 2012년 '각시탈'에 출연했고 2018년 SBS '리턴', MBC '신입사관 구해령' 등 다양한 작품에서 악역과 선한 역을 오가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작품 선택의 기준이란 게 그냥 평범하지 않는 걸 선택하는 편이에요. 무조건 대본은 재미있어야 읽게 되고 또 그 속에 캐릭터를 제가 잘 표현할 수 있는 걸 선택하죠. 제가 좀 삐딱한가 봐요. 남주인공과 여주인공 둘이서 극을 이끌어가는 건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리턴'이 특히 그랬는데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잖아요. 마치 미드처럼 그래서 그 작품을 선택했어요. '꼰대인턴'도 분명 주인공은 존재하지만 캐릭터 각각의 느낌이 잘 살아있어 좋았고요."

박기웅은 최근 현장의 여건이 너무 좋아졌다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그는 과거 드라마 촬영 때 8박 9일 동안 누울 수 없었을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했다고 말했다.

"그 당시 배우들이 '무슨 부위 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까지 힘들게 일하나'란 말을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 촬영장은 너무 좋아졌죠. 또 배우들이 합을 맞추기 위해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환경을 만들어준 제작진에게 너무 감사해요."

시트콤 빼고 다해봤다고 말한 박기웅에게 어떤 어른으로 남고 싶냐고 물어봤다. 그는 "멋있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저는 그냥 거창하지 않아요"며 "지금보다 힘도 빠지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나이 먹고 싶어요. 축구할 때 메시나 박지성에게 볼이 가면 믿음이 가듯 그런 배우가 되는 게 제 바람이에요"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저는 다 잘합니다. 20대 초부터 배우로서 변하지 않는 생각이 있다면 쓰임이 많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스펙트럼이 넓은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연기를 보이고 싶어요. 제 또래 중에 저처럼 다양한 배역을 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외국인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정말 다양하게 활동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

자신만만한 그의 대답에서 과거 박기웅이 JTBC '한끼줍쇼'에 출연했던 모습이 생각났다. 당시 그는 "섭외가 들어와서 이 프로그램을 몰아서 보게 됐다"며 "그동안 신도시를 오면 그림이 비슷하던데"라고 말하는 등 프로그램 '그림'까지 꼼꼼하게 분석하는 모습에서 프로다움을 느꼈다.

성수동에서 자신만만하게 앉아있던 준수는 캐릭터가 아닌 인간 박기웅의 자신감이 아닐까. '삐딱하게'라고 표현했지만 매번 남다른 작품 선택으로 독자적 행보를 이어가는 배우 박기웅의 다음 도전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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