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살 넘어 늦깎이 금화(金畵) 도전, '인고의 시간'이 만든 결실
[더팩트|강일홍 기자] 김일태(66) 화백은 세계 미술계에 금빛 한류를 선도하고 있는 99.9% 순금 화가다. 누구나 좋아하는 금을 소재로 동양적인 철학과 감성을 녹여낸다는 점에서 작품성 뿐만 아니라 독창성을 인정받는다. 영원불멸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빚는 그의 작품 세계는 그래서 천년이 가도 변함이 없다.
"단 하나의 색감으로 수천 수만가지 다른 느낌을 낼 수 있는 재료는 황금색뿐이에요. 같은 그림이라도 빛의 방향, 높낮이에 따라 변화무쌍합니다. 더구나 황금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잖아요. 누구에게라도 거부감이 없는 보편타당한 색깔이기도 해요."
그의 작품성과 명성은 해외에서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팝스타 마돈나를 비롯해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에릭 슈미트 구글 전 회장, 영국 마이클 왕자 등이 그의 금화(金畵)를 소장하고 있다. 국내에선 가수 싸이가 금돼지 작품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등에게 선물하면서 이슈가 됐다.
김 화백은 마흔 살의 늦은 나이에 금화에 눈을 떴다고 한다. 경기 양평에 허물어지는 농가주택을 구입해 10여년간 은거했다. 그는 "처음엔 붓만 사용한 원근법에 머물다가 황토를 물에 개서 입체와 양각, 명암기법에 눈을 돌렸다"면서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전혀 새로운 영역을 선택한 게 신의 한수였다"고 말했다.
그가 구현해낸 금화는 조각, 소묘, 입체 등 다섯 가지의 다양한 기법과 순금, 흙, 물, 불 등의 천연재료를 활용한 자연 친화적인 종합예술로 평가받는다. 금빛 한류로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그의 작품세계를 직접 들어봤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일 김 화백의 상설 갤러리 '아트뱅크'(서울 청담동)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전 세계 유일무이한 순금 화가로 정평이 나 있다. 우선 어떤 계기로 금을 캔버스 위에 올릴 생각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저도 처음엔 유화를 많이 그렸어요. 한데 시간이 갈수록 케미칼 오일로 채색하는 서양화의 단순 모방과 따라하기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저를 괴롭혔어요. 아무리 실력을 연마해도 정형화된 기존의 틀을 뛰어넘을 수는 없더라고요. 단 10불에도 팔리지 않는 서양화에 매달리느니 차라리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나만의 미술을 해보고 싶었어요. 마침 '금을 활용해 동양적 철학과 감성을 담은 그림을 그려보라'는 어머니의 충고와 권유에 깨우치듯 새로운 시도에 눈을 돌렸고, 전혀 다른 형태의 미술작품이 탄생한거죠.
김일태 화백은 2016년 금화의 창의성을 인정받아 영국 사치갤러리(The Saatchi Gallery) 초청으로 한국인 최초 단독 전시회를 가졌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사치갤러리는 현대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시장으로,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미술 작품의 기획 전시로 명성이 높다. 2018엔 로어리트 브랜드퍼스낼리티상(APBF100대 브랜드 선정) 등을 수상한다. 이후 그는 유럽 각국과 미국, 중국 말레이시아 등 세계 20여개국에서 80회 이상 작품전시로 성가를 올리며 세계적 입지를 다진다.
-정 재계는 물론 대중문화계, 특히 연예계 유명 스타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고 있다. 대중 친화력을 갖게 된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나.
특별한 분들이 제 작품에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배우도 가수도 아니지만 그림을 매개로 수많은 문화예술인과 가까이 교류한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런 과정을 통해 제 작품이 자연스럽게 대중적으로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죠. 그동안 국내외 여러 개인전을 통해 판매된 작품이 300여점 가량 되는데 이중 절반 가량은 대중 스타들을 포함한 유명인들이에요. 또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내로라할 재벌가 총수나 유력 기업인 거실에도 걸려있고요.
김일태의 금화는 배종옥 장미희 강문영 유동근 진미령 김수미 김성환 김완선 박상민 전현무 등 유명 연예인 100여명 이상이 소유하고 있다. 배종옥은 자신의 초상화를 갖고 있을 만큼 김 화백과 특별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칭화대 이연 화백과 공동전시회를 앞두고 지난 2015년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 홀에서 가진 중한통코리아 창립 및 전략 선포식에는 국내 연예인들과 정 재계 인사 350여명이 참석해 화제를 모았다. 중한통(中韓通)은 한중간 통합 전자상거래 플랫폼 회사다.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미술계가 이단아라고 폄하한다는 얘기는 뭔가. 이 부분에 대한 개인적 입장이 있다면 솔직하게 밝혀달라.
미술계는 특정 인맥이나 학맥 등 파벌이 유독 심해요. 정해진 틀을 벗어나면 용납하지 않으려고 해요. 미술인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기득권을 장악한 그들이 누군가 새로운 인물이 튀는 걸 못보는거죠. 알고보면 어느 분야나 시기와 질투는 동종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주로 합니다. 제가 국제적 전시회를 가질 때마다 수천 건의 악성댓글이 붙어요. 바로 미술계 사람들이 뒤에서 욕하고 흠집을 내는 겁니다. 물론 저는 26년간 오로지 금화 하나만 보고 제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그런 시선에 전혀 흔들리지 않아요. 다만 잘못된 관행은 과감히 부정하고 배격해야 병폐가 사라진다는걸 200만 미술학도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어요.
김 화백은 지난 4월 TV 프로그램 '명불허전'(OBS)에 출연해 대한민국 미술계가 반성하고 고쳐야할 병폐를 신랄하게 지적했다. 그는 "일부 화가들이 '금으로 그린 그림이 무슨 미술품이냐'고 한다는데 이는 고대 인류가 숯이나 돌로 그리고 조각한 미술품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면서 "그런 시각으로 보는 것 자체가 이미 넌센스이고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그의 금화 작품들은 금속탐지기로 100% 입증(순금 99%)될 만큼 독특하다. 그는 5년 전 중국 칭화대 이연 총장이 금화기법 전수를 조건으로 연봉 60억에 교수로 초빙하는 제안을 거절한 바 있다.
-갤러리에 들어서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금화의 가격이다. 99% 순금으로 제작된다는 사실만으로 일반인들은 호기심이 발동할 수밖에 없지 않나?
특정 작품을 두고 소장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측정한다거나, 값이 얼마냐의 문제는 저한테 그리 중요치 않아요. 다만 저를 포함한 모든 창작인들은 자신의 혼이 담긴 예술품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가 스며 있다고 자부해요. 말씀드린대로 제 작품들은 상표등록이 인증된 순금(24k) 분말을 천연오일과 섞어 채색을 합니다. 기본 재료비가 워낙 고가여서 호당 작품값이 높은 편이에요. '돼지' '장미꽃' '탱화' 등 대체로 한국적 또는 동양의 정서에 기반한 그림이 많아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긴 한데 어떤 분들은 돼지보다 거칠게 그려진 장미꽃 그림을 선호하기도 하죠.
서울 청담동 '아트뱅크' 갤러리에는 30여점이 전시돼 있으며 이중 수 억대 이상의 작품도 수두룩하다. 그의 작품에 대한 통상적인 호가는 크기나 주제, 선호도에 따라 호당 300만원에서 500만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마카오 리츠 칼튼 전시회 당시엔 중국 갤러리들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호당 500만원 정도에 완판이 되기도 했다. 가장 상징적인 작품은 '복돼지'로 다산과 풍요로움, 다복과 사업번창을 상징한다. '장미'는 영원한 사랑과 정열 의미를 담고 있다. '최후의 만찬' '십자가 예수' 등 종교적 색깔을 담은 그림도 많다.
-금화 한 폭이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일반 회화 미술품이 아닌 만큼 탄생하는 과정도 궁금하다.
소 한 마리(뼈와 가죽)를 일주일가량 끓이면 2kg 분량의 끈적한 물질(천연아교)이 나옵니다. 이걸 1차로 캔버스 위에 입체화를 만들고, 제가 5가지 자연 추출물로 개발한 오일에 순금 분말을 섞어 일일이 조각하듯 세밀한 음영을 구현해요. 그 사이에 서너차례 고온으로 굽고 식히는 과정이 있어요. 비법은 가마에 넣어 가열하는 온도인데요. 금이 녹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온도를 찾아내는데만 11년이 걸렸어요. 평면금도자기는 흙으로 빚는데 아무리 질 좋은 황토라도 마르면 전체 크기가 25%가량 줄어들면서 미세한 크랙이 생기거든요.
그의 손을 거쳐 탄생되는 금화는 황금화, 백금화, 평면금도자기 등 세 가지 형태의 작품으로 만들어진다. 황금화 중에서도 광택이 없는 무광화(無光畵)는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좋아하고, 금의 양이 무광에 비해 두배 이상 소모되는 유광화(有光畵)는 한중일 3개국 국민들이 선호한다고 한다. 황금화에 비하면 백금화는 드물게 제작되는 편이다. 그는 "반돈쭝(2g)에 100만원을 호가할 만큼 백금(플래티넘)이 일반 금값보다 4배나 비싼데 실제 작품값은 30% 이상 책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캔버스 위에 입체적 형상으로 빚어내는 평면금도자기화는 흙과 아교로 빚은 뒤 유약과 금채색 과정을 반복해 만들어진다.
-마흔을 넘겨 금화를 시작했는데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금화가 탄생하기까지 밑그림이 됐을 회화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40살의 늦은 나이에 금화의 세계에 뛰어든 건 맞지만, 미술을 처음 접한 것은 5살 때부터입니다.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이 모두 교직에 계셨고, 어머님은 37년간 미술선생님으로 근무하셨어요. 저는 형들과 틈만 나면 호마이카상(밥상을 겸한 협탁) 위에서 그림을 그리며 자랐어요. 그런데 정작 대학 진학할 무렵엔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미대를 못가고 농대로 진로를 바꿀 수 밖에 없었죠.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한 후에야 원래 꿈이었던 미술을 시작했어요. 타고난 소질을 벗어날 수 없었던 거죠. 유학을 다녀온 뒤 시골 농가에 칩거하며 고된 시행착오를 반복했어요. 금화는 어머니의 조언이 결정적이었어요.
그는 군복무 후 부동산 관련 일을 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났다고 한다. 그는 "운 좋게 돈을 좀 벌고 형편이 피니 그림에 대한 욕구가 스멀스멀 생겨났다"고 했다. 결혼 후 30대 초반 어머니까지 모시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아트스쿨에서 3년간 미술을 전공했다. 다시 프랑스와 영국을 오가며 2년간 더 유학한 뒤 귀국했다. 한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공허함이 더했다고 한다. 그는 "저의 절박함을 지켜봐온 어머니가 '남의 그림 말고 너만의 독창적 그림을 연구해보라'며 귀띔해주신 게 바로 금화를 선택하는 모티브가 됐다"고 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는다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술 세계와 재화 가치를 모두 갖춘 독창적 미술세계를 열었는데 후학들에게 조언해줄 얘기가 있다면.
미술인은 과학자가 아닙니다. 규격화되거나 검증된 객관적 행위를 반복하는게 아니에요. 미술은 무한 상상력을 발휘해 보이지 않는 세상을 캔버스에 구현하는 창의적 예술이에요. 수많은 창작품을 통해 삶의 에너지를 자극하고 활력소를 내뿜게 하는 전달자이기도 해요. 배우는 연기로, 가수는 노래로, 그리고 화가는 말이 아니라 그림으로 대중과 소통합니다. 미술가는 하얀 벽과의 싸움, 오직 캔버스와 대화를 통해 삶의 희노애락을 담아내는 고독한 작업이에요. 자신만의 미술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답습을 반복하는 행위부터 배제해야해요.
현대미술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일태 화백은 서울 청담동 '아트뱅크'(예술은행)에 자신의 순금화 작품만을 전시하고 있다. 대중과 수시로 교감할 수 있는 일종의 상설 쇼룸이다. 그는 "두 달전 문을 열었는데 코로나 여파로 아직 정식 오픈식은 갖지 않았다"면서 "그럼에도 알음알음 수많은 갤러리들이 찾아와 열기가 뜨겁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압구정동에 10여년간 미술관을 유지하다 해외 순회 전시가 대폭 늘어나면서 휴관한 바 있다.
김일태 화백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화가'로 정평이 나 있지만, 동시에 '괴짜 미술인'이란 닉네임도 붙어있다. 캔버스에 완성된 금화를 구현해내기까지 화학제를 섞은 금이 검은색으로 변색되는 경험은 부지기수, 부동산 등 사재를 털어 무려 80억원 대 금을 쏟아부으면서도 그는 집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는 그의 대기만성형 미술세계가 뒤늦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서울과학대학 초빙교수를 비롯해 6년째 대학강의를 통해 자신의 미술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국내 미술계의 불투명한 유통구조를 바꾸기 위해 갤러리 오로를 가동 중이며, 유튜브 채널 아트뱅크를 오픈해 온라인 관객들과도 직접 소통하고 있다.
김 화백은 순금으로 그림을 그리는 세계 유일의 화가다. 그의 금화는 중국 등 아시아의 부자들의 거실은 물론 교황청 집무실에도 걸려있을 만큼 유명하다. 아시아태평양 브랜드 재단의 100대 브랜드에 선정되면서 K팝, K드라마에 이어 금빛 한류를 빛낸 민간대사로도 인정받는다. 캔버스에 순금가루를 뿌리며 세계 무대에 우뚝 선 그는 필자의 눈엔 끈기와 뚝심의 사나이였다.
eel@tf.co.kr
※김일태 화백=세계 최초 99% 순금화가/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하고 30대 초반까지 부동산업에 종사/ 결혼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스쿨에서 3년간 미술 전공/ 프랑스와 영국 오가며 2년간 유학 후 귀국/ 마흔살에 경기 양평의 외딴 집에 칩거하며 10년6개월간 금화 구현에 몰두/ 전세계 20여 개국에서 80여차례 개인전/ 브랜드로어리트 브랜드퍼스낼리티상, 대한민국 혁신리더 문화예술상, 글로벌미래창조공헌 대상, 대한민국 문화경영 대상 현대미술상, 글로벌 인물대상 문화예술상,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