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구속 134km '천재 야구소녀'의 성장기
[더팩트 | 유지훈 기자] 너클볼은 변화무쌍한 변화구다. 하지만 부상을 당한 선수가 요행을 바라고 연마하는 구종이기도 하다. '야구소녀'는 프로선수가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이유로 너클볼을 던진다. 다들 소녀를 보고 "넌 그래도 안 돼"라며 비웃는다. 변화구라는 게 던진 투수조차도 어떤 궤적을 그릴지 모르는 데도 다들 속단하는 데 참으로 급급하다.
영화 '야구소녀'는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자이자 최고구속 134km에 볼 회전력의 강점으로 '천재 야구소녀'라는 별명을 얻은 주수인(이주영 분)의 프로선수 도전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해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초정작으로 선정돼 주목 받았으며 지난 18일 개봉했다. 12세 관람가이고 상영시간은 105분이다.
주수인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며 수많은 상을 휩쓴 유망주'였'다. 고등학교 졸업반이 된 그는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언론을 통해 소개됐던 최고구속 134km라는 기록은 훌쩍 커버린 남자 선수들과 견주게 된 순간 의미를 잃었다. '여성'으로서는 빠르지만 프로팀에서는 의미 없는 속도였다. 지원해주던 엄마(엄혜란 분)조차 이제 포기하라며 쓴소리를 뱉는다. 하지만 수인은 프로팀 입단의 꿈을 놓지 못한다.
새로 부임한 코치 최진태(이준혁 분)도 주수인을 무시한다. 그 무시를 이겨내고자 호기롭게 던진 직구는 어린시절부터 함께 꿈을 키웠던 이정호(곽동연 분)가 쉽게 쳐낸다. 수인은 '여자'가 아니라 그저 수많은 선수 중에 하나로서 평가받길 원하고 최 코치는 이를 받아들인다. 선수로서만 바라본 수인은 "실력이 없는" 수많은 프로 지망생 중에 하나였고 "힘이 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최진태는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릴 너클볼 연습을 제안하며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야구소녀'는 "한국 프로야구 출범 당시 '의학적으로 남성이 아닌 자'는 부적격 선수로 분류됐다. 1996년 규약에서 이 문구가 사라진 뒤 여자도 프로야구 선수로 뛸 수 있게 되었다"라는 인트로로 시작된다. 여자도 프로야구 선수로 뛸 수 있게 된 세상이 열린 지 24년 째다. 하지만 아무도 그 벽을 깨지 못했고 그래서 야구는 '남자들의 공놀이'로만 소비됐다. 이 영화가 '여자도 야구를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와 같은 평범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스포츠가 선수의 신체 조건이 승패를 좌우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모두가 이견이 없을 터다. 그래서 주수인이 겪는 좌절은 더 현실적이고 그 메시지를 편하게 소화해낼 수 있다. '야구소녀'가 던지는 너클볼은 신체적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부각시킬 유일한 해결책이니까. 주수인은 너클볼을 던지고 또 던진다. 남자들의 불친절한 공놀이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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