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모범생? 기분 좋은 칭찬이죠"
[더팩트 | 유지훈 기자] tvN 드라마 '비밀의 숲' 속 도도한 검사 영은수가 영화 '결백'으로 옮겨졌다. 직업은 변호사로 살짝 바뀌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발음으로 그는 어머니를 열렬하게 변호했다. 좁은 브라운관을 벗어나 널찍한 스크린에서도 그는 여전히 착실히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연기 모범생'이었다.
'결백'은 7년차 배우 신혜선의 첫 영화 주연작이다. 치매를 앓고 있지만 살인 용의자로 내몰린 어머니 화자(배종옥 분)를 변호하는 주인공 정인 역을 맡았다. 정인이 누구 하나 마음 편히 기댈 곳 없는 시골에서 사건을 해결해나가듯 신혜선은 영화의 중심을 잡고 110분 내내 열연을 펼친다. 기억을 잃은 화자 때문에 몇 번이고 눈물을 쏟느라 감정소모도 많았고 괴한들로부터 습격을 받는 장면에서는 딱딱한 길바닥에 몸을 던져야 하기도 했다.
10일 개봉에 앞서 지난 5일 '결백' 시사회를 끝내고 <더팩트>와 만난 신혜선은 그저 행복해 보였다. 스스로를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정도였으니 오랫동안 공들였던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흥분될 터다. KBS2 '아이가 다섯' '단, 하나의 사랑',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사의찬미' 등 수많은 드라마를 성공시키며 '시청률의 여왕'이라고 불리게 된 그는 이제 흥행보증수표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향해 나아간다.
Q. 코로나 19로 미뤄졌던 영화가 드디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시사회는 어떻게 봤나.
"솔직히 객관성을 잃었다. '왜 저렇게 했지' 하고 아쉬운 부분만 보였다.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속도감이 잘 나와서 굉장히 만족스럽다. 오프닝이 먹걸리 살인사건 현장이다. 원테이크로 쭉 밀고 나간다. 널찍한 스크린으로 보니 몰입감이 엄청나더라. 내가 영화 주연이라는 게 실감났고 너무나 떨렸다."
Q. 박상현 감독이 tvN '비밀의 숲'에서 연기하는 것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대본을 작업하실 때 '비밀의 숲'을 보셨던 것 같다. 캐스팅 당시에는 그 작품을 보고 날 선택했다고 하진 않으셨다.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두 캐릭터가 좀 비슷한 결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은수는 양반집 규수, 정인은 시골에서 자라 트라우마가 더 깊다."
Q. '결백'을 선택한 이유, 시나리오가 매력적이라고 느낀 부분이 있나.
"배경이 시골이고 젊은 여성은 나 혼자다. 다들 충청도 사투리를 쓰고 농사짓는 차림이다. 정인이 혼자 대조적으로 서울 말투를 쓰고 투피스의 세련된 차림이다. 그 대비가 흥미로웠다. 그리고 시골이 배경이라는 것도 좋았다. 내게 시골이란 언제나 정겹고 바람 쐬러 가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시나리오 속 시골은 숨막히고 끈적하다. 내가 가진 느낌과 달라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Q. 어머니의 치매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비롯해 감정 신이 많다. 소화하는 데 버겁진 않았나.
"눈물연기라는 게 참 복불복이다. 감정이 한번 오면 수월하게 촬영이 끝난다. 하지만 감정이 오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끝내기가 힘들고 결과물도 만족스럽지 않다. 감정신이 있으면 연습을 화장실에서 한다. 큰 거울에 조명도 있어서 감정잡기 좋다(웃음). 배종옥 선배와 만나 눈물 흘리는 장면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너무 부담됐는데 촬영이 시작되고 선배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선배 덕분에 수월하게 감정연기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Q. 코로나 19 때문에 영화 개봉이 미뤄지기도 했다. 기다림이 힘들진 않았나.
"성격이 내가 좀 급하다. 드라마는 찍고 나면 반응을 바로 볼 수 있다. 영화는 그걸 볼 수가 없더라. 관객의 평가를 확인하기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어서 불안했다. 결과를 모르고 기다리는 게 너무 힘들더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되려 스태프들끼리 똘똘 뭉치게 됐다."
Q. 괴한들에게 맞는 장면도 많았다. 맞는 것도 액션 연기는 어땠나.
"사실 약간의 액션을 좋아한다. 하면서도 재미있다(웃음). '결백'에서 대단한 액션이 나오지는 않는다. 처음 맞는 장면은 액션팀이 와서 합을 맞춰줬고 무리 없이 잘 나왔다. 하지만 그 다음 맞는 장면은 여러 번 합을 맞췄는데도 내가 실수해서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경미한 뇌진탕이 와서 상대 배우분과 서로 미안해했다."
Q. 정인이 대학을 가기 위해 가출하고 변호사가 되어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은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연기를 하는 데 있어서 나름 그 공백을 구상해봤을 것 같다.
"아마도 치열하게 살았을 거다. 정인이를 표현하는 데 있어 눈빛을 중요하게 봤다. 순진무구가 아니라 혼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 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을 거고 밤낮으로 공부했을 거다. 아무것도 없는 소녀가 변호사가 된다는 건 힘든 일이니 분명 독해졌을 거라고 봤다."
Q. 집을 떠나기 전 고등학생 정인도 직접 소화했다.
"솔직히 이건 아역을 쓰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고등학생이었으니까(웃음). 내가 나이가 엄청 많은 것은 아니지만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건 애매했다. 그래도 상큼하지 않은 세상에 찌든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괜찮지 않았나 싶다. 분장 덕도 많이 봤다."
Q.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허준호와 호흡은 어땠나.
"한 번은 기가 확 죽었다. 평소 선배는 웃음 많은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추시장 연기를 하니 달랐다. 내가 예상했던 호흡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그 모습이 너무 비릿하게 느껴져서 소름이 돋기도 했다. 촬영은 해야 하는데 기가 한번 죽으니 맞서기가 어려웠다. 힘들어도 눈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허준호 선배와 함께 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Q. '연기를 하며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고 했었다. 어떤 부분이 버거웠나.
"연기가 버거웠다기보다는 정인이를 완전히 이해하는 게 힘들었다. 배우로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반성도 많이 했다. 캐릭터가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으니 왜 이런 대사를 하는지도 고민하게 됐다. 여기에 이어서 이 아이가 뱉는 숨조차도 '이렇게 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까지 왔다. 그래서 '숨을 쉬기 힘들었다'고 했던 거다. 하지만 촬영이 진행될수록 정인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정인이는 안개에 싸여있는 모호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것도 맞다는 걸 알게 됐다."
Q. '연기 모범생' 같다. 성실하고 연기를 공부하듯 열심히 한다는 느낌을 준다.
"모범생 이미지라니 정말 좋다. 학교 다닐 때는 모범생이 아니었다(웃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는 한다. 살면서 어떤 일에 몰두하고 내 열정을 불사르는 경험이 연기 외에는 거의 없었다. 배우라는 일은 영혼과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한다. 그리고 그게 나중에 카타르시스가 되어 돌아온다. '연기는 열심히 안 하는 게 좋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대본 공부는 열심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작품 할 때는 최선을 다한다. 다시 생각해도 '연기 모범생'이라는 말은 참 좋다."
Q. 배종옥과 차기작 tvN '철인왕후'에서 다시 만난다.
"서로 자주 만나게 되는 캐릭터다. '결백'과는 다른 관계라서 재미있게 보지 않을까 싶다. 여러 요소가 많이 담긴 작품이 될 거다. 어느 순간부터 선배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해졌다. 선배가 코미디를 갈구해왔다. 그래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실지 더 기대된다."
Q. 어느덧 7년차 배우다. 슬럼프는 없었나.
"슬럼프는 정점을 찍어야 온다. 난 아직 아니다(웃음).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다. 다만 가끔씩 지칠 때는 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이 시끄러워진다. 그때는 그냥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진다."
Q. 인터뷰를 하다 보니 신혜선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은 야망 같은 것이 느껴진다.
"야망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세상을 정복하겠다거나 하는(웃음)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다. 그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막연하게 티비에 나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드라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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