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MEME)'은 온라인에서의 놀이문화였다. 별다른 의미가 없이 주고 받는 시시한 장난 같은 것이어서 오프라인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기세가 심상치 않다. '야인시대' 김영철과 '타짜' 김응수에게 예상치 못한 전성기를 안겨주고 비의 실패곡 '깡'을 재조명한다. 37살의 무명래퍼 염따마저 주류광고 모델로 만드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오프라인으로 저변을 넓힌 밈은 이제 남다른 파급력을 가진 하나의 문화현상이다.<편집자 주>
밈의 한계, 그리고 '양면성'
[더팩트 | 유지훈 기자] 보통 텔레비전에서 조명받아 인지도를 얻고 대중의 사랑을 받기 마련인데 요즘은 그 반대다. 출신 불명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더니 방송에 진출하고 음원차트에서 인기를 과시한다. 이제는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과 SNS가 유행을 선도하게 됐다. 방송국은 그 유행의 후발주자로 움직인다.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뒤바뀐 '역전'의 세상이다.
디지털 콘텐츠 제작사 딩고의 힙합 채널 딩고프리스타일은 이 '역전' 현상과 함께 해왔다. 인디고뮤직과 협업한 프로젝트 음원 'Flex(플렉스)'를 발매해 음원차트 상위권을 점령했고, 84년생 중견 래퍼 염따를 발굴해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여 그에게 전성기를 안겨줬다. 하이어뮤직과 발매한 또 다른 프로젝트 음원 'iffy(이피)'를 통해서는 해외에서 유행하던 '챌린지'를 시도했다. 'iffy'의 경우 큰 파급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직캠을 보면 무대를 꾸미는 래퍼들과 관객들 모두 '챌린지'를 통해 따라 했던 춤을 다 같이 추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플렉스'의 음원 성적, 염따의 인기, 'iffy' 챌린지까지 모든 것이 '밈'이다. 관련 콘텐츠들은 모두 유튜브와 SNS를 통해 공개됐고 누리꾼들은 그 영상 아래 마련된 댓글 창을 통해 소통하며 자신들만의 '밈'을 만들어갔다. 래퍼들이 부를 뽐내는 말 'flex'는 이제 10대 20대들이 큰 소비를 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소확행이나 과소비 같은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말을 대체하는 '힙'한 단어다. 그들이 서로 만나 "flex"를 뱉자 온라인에서의 '밈'은 현실의 유행어가 됐다.
당시 딩고프리스타일의 연출을 맡았던 정혜진 PD는 "딩고프리스타일 유튜브와 SNS는 정통적인 플랫폼이 아니었다.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같은 역할을 했다"며 "사람들이 공개된 콘텐츠를 가지고 어떻게 노는 지가 중요했다. 콘텐츠를 만들면 그 재료들을 가지고 유저들이 유쾌하게 변형시켰다. 자연스럽게 이뤄진 일이었을 뿐 억지로 밈을 만들려고 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정 PD의 말처럼 밈은 곧 온라인상에서의 자연스러운 변형과정을 거쳐 파급력을 가진다. 염따는 '하루에 4천만원을 쓰겠다'는 슬로건을 걸고 돈을 펑펑 쓰며 "'FLEX' 해버렸지 뭐야"라고 뱉는다. 누리꾼들은 "해버렸지 뭐야"라는 말 앞에 각자의 애드리브를 첨가하고, 염따가 이를 다시 받아 "XX 해버렸지 뭐야"를 또 자신만의 스타일로 변경해 전달하는 식이다.
염따는 그저 댓글 창을 자세히 들여다봤을 뿐이다. 그리고 그 안에 자리잡은 밈으로 그 누구보다 즐겁게 소통해 지금의 인기까지 누리게 됐다. 티셔츠를 팔아 12억 매출을 달성했고 차도 세 대나 가지게 돼 이를 보란듯이 자랑한다. 그가 딩고프리스타일 콘텐츠에서 외쳤던 추임새도 온라인에서 변주를 거쳐 소위 말하는 '요즘 것들' 사이에서는 유행어 "빠끄"가 됐다. 그리고 한 주류회사는 염따와 콜라보 해 병뚜껑에 "빠끄"라는 글귀를 새기기까지 했다.
정 PD는 "염따는 자기가 아무것도 창조한 게 없다고 했다. 콘텐츠에서 뱉은 말이 댓글 창을 통해 자연스럽게 변주되고 염따는 그걸 차용해 같이 놀았을 뿐"이라며 "나의 경우에도 콘텐츠에 달린 댓글을 모두 다 읽는다. 그들의 리액션을 보지 않으면 함께 놀 수 없다"고 '밈'의 흐름을 읽는 중요함을 강조했다. 때로는 조회수보다 댓글 창 속 소통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딩고를 떠나 CJ ENM에서 STRIT(스트릿)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정 PD는 최근 '갱생(GANG生)'이라는 콘텐츠를 선보였다. 누리꾼이 만들어낸 밈으로 유쾌한 나날을 보냈던 그였지만 '갱생'은 다소 무겁다. 이 콘텐츠는 팔로알토(Paloalto)가 우울증 및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불리 다 바스타드(Bully Da Ba)를 만나 건강한 삶을 제안하는 과정을 담백하게 담아냈다. '갱생'의 기획과정에는 '밈의 한계와 양면성'이라는 정 PD의 깊은 고민이 숨어 있었다.
정혜진 PD는 "밈은 재미있는 문화이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부분도 크다. 주로 악플이다. 콘텐츠의 모든 댓글을 보는 만큼 나도 악플도 많이 보게 됐다"고 토로했다. 때문인지 '갱생'에서 팔로알토가 제안하는 건강한 삶은 마치 악플러들을 향한 일갈이자 악플에 괴로웠던 사람들을 향한 따스한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어 정 PD는 "'갱생'은 다른 콘텐츠에 비해 댓글이 적고 그래서인지 이렇다 할 밈도 없다. 하지만 꼭 한번 짚고 가야 할 기획이었다. 생각이 필요한 댓글이면 사람들은 잘 남기지 않는다. 밈이 생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유쾌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다. 하지만 너무 유쾌하고 자유로운 나머지 악플도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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