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MEME)'은 온라인에서의 놀이문화였다. 별다른 의미가 없이 주고 받는 시시한 장난 같은 것이어서 오프라인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기세가 심상치 않다. '야인시대' 김영철과 '타짜' 김응수에게 예상치 못한 전성기를 안겨주고 비의 실패곡 '깡'을 재조명한다. 37살의 무명래퍼 염따마저 주류광고 모델로 만드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오프라인으로 저변을 넓힌 밈은 이제 남다른 파급력을 가진 하나의 문화현상이다.<편집자 주>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 소비 방식 '밈'이 문화 트렌드를 이끈다
[더팩트 | 정병근 기자] 2012년 7월 발매돼 9월 미국 빌보드 핫100 2위에 오른 싸이의 '강남스타일'. 수많은 패러디물이 쏟아지며 전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자 그 요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결국 '놀라운 현상' 정도로 요약됐던 당시의 신드롬. 그 발생구조가 바로 '밈(MEME)'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등장하는 단어 '밈'은 새로운 용어가 아니다. 이미 1976년 리처드 도킨스가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문화의 복제와 전달을 설명하며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메메(mimeme)'와 유전자를 뜻하는 '진(Gene)'을 합성한 단어 '밈'을 처음 제안했다.
그 밈이 40년도 더 지난 지금 유명세를 치르게 된 건 본격 온라인 시대와 맞물린다. SNS, 유튜브, 틱톡 등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어 공개할 수 있는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또 일상에 깊게 들어오면서 누리꾼들은 하나의 소스를 변화시키고 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밈 현상이라고 하면 갑자기 뭐가 확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이뤄지고 있던 일"이라며 "인터넷이 생기면서 그때부터 콘텐츠들을 그냥 소비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갖고 와서 자기거화시키는 창의적인 소비가 이뤄졌고 그게 밈"이라고 설명했다.
예전에도 존재했던 밈은 플랫폼의 다양화와 함께 온라인상의 대표적인 '놀이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그 위상과 영향력이 달라졌다.
배우 김영철이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외쳤던 "4딸라"나 김응수가 영화 '타짜'에서 했던 대사 "묻고 더블로 가" 등은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자 주류 미디어로까지 진출한 대표적인 사례다. 김영철과 김응수는 오래 전 작품에서 했던 저 대사로 TV 광고까지 찍었다.
김응수가 지난 20일 열린 MBC 새 수목드라마 '꼰대인턴' 제작발표회에서 '타짜' 속 곽철용 캐릭터로 전성기를 맞은 것과 관련해 "14년 전에 연기했던 캐릭터가 이렇게 큰 임팩트로 부활하니까 너무 놀라웠다. 광고가 100개가 넘게 들어왔다"고 말할 정도로 파급력은 컸다.
사실 '4딸라'와 '묻고 더블로 가'는 온라인에서 확대 재생산된지 이미 오래다. 온라인에서 끝물일 때에서야 주류 미디어에서 주목을 했지만 '그들만의 리그'였던 '온라인 놀이 문화'가 주류로 스며들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일이었다.
신림동의 집과 상암동의 회사를 오가는 시간에 특히 밈을 즐긴다는 A씨는 "방송 등 주류 플랫폼에서 밈의 대상이 회자되는 순간이 끝물이다. 그건 더 이상 놀이가 아닌 상업적인 소재가 됐다는 의미이고 자연스럽게 재미도 시들해진다"고 말했다.
최근엔 좀 달라졌다. 밈을 몇 차례 지켜본 주류에서도 발빠르게 활용하는 모습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7년 발매된 비의 '깡'이다.
깡을 즐기는 무리를 일컫는 '깡팸'(깡 패밀리)이라는 말까지 등장한 이 열풍의 시작점을 찾는 것 자체가 밈스럽지는 않지만 한 여고생이 공개한 '1일 1깡 여고생의 깡' 영상이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짧은 영상을, 지난 3월 풀버전 영상을 공개했다.
그리고 지난 5월 16일 비가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했다. 신작 때문이 아니고 '1일 1깡' 덕이었다. 비는 자신을 향한 조롱일 수도 있는 지금의 현상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1일 3깡은 해야 한다"며 "'깡'으로 더 재밌게 놀아달라"고 말할 정도로 스스로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재빨리 영역을 넓힌 '깡'은 그것을 기반으로 밈이 더 확산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더불어 '밈'이란 용어도 더 유명세를 얻게 됐다.
밈은 댓글과 패러디 등에 한정되지 않는다. 광범위하다. 뚜껑 따기, 트래시태그, 덕분에 등 여러 형태의 '챌린지'로 확장됐다. 사회적인 영역에서부터 대중문화의 영역까지 폭도 넓고 경우에 따라 그 파급력도 크다.
그렇다 보니 밈을 마케팅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도 있다. 올해 초 신드롬을 일으킨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는 그 경계선에서 출발했다. 홍보의 목적으로 상업적인 이해 관계에 놓여 있는 당사자가 챌린지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확산해 밈의 형태가 됐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지코 이후 여러 가수들이 신곡을 발표하면서 여러 형태의 챌린지를 기획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경우는 없다. 밈은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챌린지는 그 자체로 새로운 홍보 툴이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조롱 속에 생명력이 끝난 '깡'마저도 유쾌함을 입혀 되살린 밈. 더불어 여러 형태의 챌린지로 영역을 확장한 '밈의 챌린지'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정덕현 평론가는 "동영상으로 재생산하기 어렵던 시절에는 사진이 있었지만 이젠 영상도 익숙하고 플랫폼도 있다. 대중문화 소비에 있어서 밈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소비자들이 콘텐츠를에 힘을 실어주고 트렌드를 이끌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밈은 소비자끼리만 갈 수 있는 문화는 아니고 원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그걸 누군가 끄집어내고 확산하는 형태"라며 "밈은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 소비 방식이고 밈 마케팅도 나오고 있다. 어느 정도까지는 수용이 되겠지만 지나치면 대중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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