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한소희'] 잘 구워진 벽돌처럼 단단한 배우

배우 한소희가 26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부부의 세계 종영 기념 인터뷰를 가졌다. /나인아토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편집자 주>

'과거도 지금도 나'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한소희

[더팩트|이진하 기자] 정말 오랜만이었다. 드라마에 이토록 감정이입을 하며 본 것은. 엄마가 그랬고, 과거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불륜 치정극'은 중년의 여성들이 좋아할 드라마라고 생각했지만 미혼인 내가 더 몰입해 보면서 나의 편견을 흔들어 놓았다. 그래서 한소희가 연기한 여다경이 미웠고, 끝에서는 불쌍했다.

한소희는 '부부의 세계'에서 고산 지역 유지인 여병규(이경영 분)의 외동딸이자 필라테스 강사 여다경으로 열연했다. 여다경은 이태오(박해준 분)의 내연녀에서 아내가 된 인물로 지선우(김희애 분)의 완벽했던 '부부의 세계'에 균열을 내며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결국 여다경도 지선우와 같은 균열을 겪은 후 지선우와 달리 이태오를 과감하게 버리고 떠나는 똑부러진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배우 한소희와 인터뷰 일정을 잡고, 여다경이 아닌 자연인 한소희에 대한 알아보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이름 석자를 검색했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트레이너와 주고받은 카톡 내용이었다. 장난스럽고 솔직한 그의 모습은 속을 감추고 있는 여다경의 모습과 정반대였다. 여다경을 연기한 한소희에 대해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26일 오후 인터뷰 장소인 강남의 한 카페를 찾았다.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자 한소희의 뒷모습이 보였다. 조금 넉넉해 보이는 흰 블라우스에 청바지를 입고 긴 머리를 무심하게 집게 핀으로 말아 올린 작고 마른 여성이었다.

잠시 정돈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사라진 그는 금세 돌아와 기자들을 향해 "얼굴이 엉망이라고 해서 옆에 가서 좀 두드리고 왔어요"라고 무심히 말했다. 화장을 고쳤다는 표현을 저렇게 하는 여배우는 처음 봤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털털하게 웃어 보였다. 연이은 인터뷰 일정으로 살짝 상기된 얼굴이었지만 인터뷰가 진행되자 마치 처음 인터뷰를 하듯 진지한 모습으로 임했다.

부부의 세계에서 여다경 역을 맡은 한소희는 내연녀 역할만 세 번째라며 이미지 고착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매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JTBC 제공

먼저 '부부의 세계'에 대한 종영소감에 대해 물었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였어요. 길고 긴 시간 함께해서 그런지 행복보단 우울한 마음이 더 크네요. 여러모로 도움을 받은 작품이고, 또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아쉬운 마음이 우울한 마음으로 변하는 중인 것 같아요"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한소희는 '부부의 세계'를 통해 많은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그러나 2017년에 데뷔한 그는 드라마만 7편 째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광고 모델 아르바이트가 그를 연예계 생활로 이끌었다. 그 뒤에는 '다시 만난 세계'와 '돈꽃', '백일의 낭군님'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특히 작품에서 내연녀로 연기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 작품에서도 비슷한 배역을 맡아 캐릭터 고착에 대한 고민은 없었을까.

"내연녀 이미지가 굳어버릴까 걱정을 안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사실 똑같은 캐릭터란 생각도 했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다른 인물이에요. 큰 틀에서는 '돈꽃'의 서연이나 '부부의 세계' 다경이가 같아 보이지만 캐릭터가 살아온 환경, 직업, 욕구와 욕망의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결코 비슷하게 생각되진 않더라고요. 한편으로는 비슷한 캐릭터를 다르게 연기하는 것도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했죠."

한소희는 자신이 연기했던 여다경에 대해 거침없는 발언도 서스름 없었다. "다경이는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금수저 딸이라 그런지 부모님이 오냐오냐 키웠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무모한 짓도 저지를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사실 간단히 말하면 제 결론은 '함부로 애 낳지 말고, 결혼하지 말자'예요. 예전에는 사랑만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태오처럼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책임감에도 무너지는 게 결혼 생활이라면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신중해도 무너질 수 있는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한 거죠. 댓글을 보면 '비혼 장려 드라마'란 글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란 생각도 들고요."

한소희는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 역을 맡은 김희애와 연기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JTBC 부부의 세계 캡처

인터뷰가 무르익을수록 그의 볼은 점차 붉어져갔다. 드라마에 대한 여러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을 경청하면서 어쩔 때는 신기하다는 듯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바라봤다. 처음에는 지쳐 보였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신이나 있었다. 쏟아지는 질문에 방긋 웃으며 그는 "우리 드라마에 대한 열띤 토론이 하고 싶었어요.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말하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극 중 태오에 대한 분노는 여전히 남은 듯했다.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태오가 끝까지 준영이만 찾는 모습에 화가 났어요. 제니와 저는 아예 없었던 사람처럼 굴어서 떠나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렇지만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가장 힘들었을 준영이는 참 안타까워요. 드라마 속 최대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전 준영이가 부모를 떠나는 장면에서 너무 이해됐고, 보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장면이에요."

거침없는 발언 후 그는 태오를 향해 '나쁜 놈'이라고 나지막이 말하는 모습이 여느 시청자들과 다르지 않아 보여 귀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한소희는 입버릇처럼 "솔직히"란 말을 참 많이 했다. 진심 어린 답변을 이어가려는 모습으로 보였다.

"평소에 솔직한 편이에요. 거짓으로 말하면서까지 '나 잘살아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거든요. 극이 한창 방영되는 동안 제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의식하지 않았어요.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죠. 그저 사람들이 저의 과거의 부분을 이해해줄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과거 타투와 담배 사진으로 논란이 됐던 그는 그림을 전공한 평범한 여대생이었다고 말했다. 자화상을 그리고, 개인 블로그에 종종 일기 같은 글을 남기며 자신을 표현하는 데 스스럼없는 한소희는 연기자를 꿈꿔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맞아요. 저는 이쪽 일을 꿈꾸지 않았어요. 미술을 전공하면서 그냥 서울 가면 뭐든 되지 않을까 꿈꾸는 촌년이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비극적이었죠. 2~3년 동안은 서울에 왜 왔는지 모를 정도로 생활을 위한 아르바이트만 했어요. 꿈이 아닌 돈을 좇으며 허송세월을 보내다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이 일이 간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논란이 된 과거에 대해서도 쿨하게 인정하며 당찬 모습을 보인 한소희는 앞으로 연기자 생활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는 고백도 털어놨다. /나인아토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소희를 처음 봤을 때 여다경처럼 곱게만 컸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밖에 이력이 밝혀지자 그가 새롭게 보였다. 주얼리 가게, 옷가게, 고깃집, 호프집, 장난감 가게 등 아르바이트 목록을 나열했다. 평범한 20대를 보낸 한소희는 이 중 가장 오래 한 아르바이트는 강남에 있는 호프집이었다고 밝혔다.

"가장 시급을 많이 줘서 호프집을 가장 오래 하게 됐어요. 정확히 4년 전까지 했었죠. 첫 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를 촬영할 당시에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는 강남의 카페에서 일했어요. 여러 아르바이트로 월급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한 달 고정 수익이 들어오지 않으면 불안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시종일관 털털한 매력을 뽐낸 한소희를 보니 처음 새침할 것 같다는 생각은 모두 깨졌다. 인간 한소희에 대한 팬심마저 생겼다. 이번 작품으로 기력을 다 소진했다는 그는 다음 작품에서는 부디 '사랑'이나 '로맨스'가 아닌 '우정', '희망'을 그리는 평화로운 내용의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을까.

"일단 많은 분들이 보내주시는 지금의 관심이 거품처럼 끝나지 않게 잘 유지하고 싶어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는 말처럼 언젠가 지금 받은 관심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죠. 처음부터 단숨에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기초공사가 튼튼한 배우로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어요. 결국 제가 잘해야 많은 분들도 사랑을 해주시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한소희는 극 중 여다경이 단칼에 이태오를 도려내고 떠났던 것처럼 이성적이고 결단력 있는 똑똑한 여성이었다. 또 그의 과거와 현재를 털어놓을 때는 마치 잘 구워진 빨간 벽돌처럼 단단한 모습도 보였다.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한층 한층 쌓아가는 그는 단순히 드라마 인기에 편승한 라이징 스타는 아니었다. 한소희가 말하는 단단한 배우가 되기 위해 오직 연기로 쌓아나갈 '한소희의 세계'가 더욱 기대된다.

jh311@tf.co.kr
[연예기획팀|ssent@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