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넷플릭스 '킹덤'이 쏘아 올린 신호탄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서양의 판타지가 동양의 세계관과 만났다. 사극부터 현대물까지 시대도 가리지 않는다. 기괴한 울음소리와 함께 펼쳐지는 시체들의 습격. 이제는 '한국형 좀비물' 혹은 'K좀비물'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작품들의 약진이다.
최근 '한국형 좀비물' 혹은 'K좀비물'이라는 수식어를 내세운 작품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 3월 13일 드라마 '킹덤'의 두 번째 시즌을 선보였으며 영화관에는 '#얼론' '반도' 등과 같은 좀비를 주제로 한 작품이 여름 개봉을 목표로 준비에 분주하다. '그냥 좀비물이 비슷한 시기에 나오고 있다'고 넘겨짚기에는 규모가 다소 크다. 6부작인 '킹덤2'는 회당 20억, '반도'는 200억이 넘는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이고 '#얼론'은 제작비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박신혜 유아인이라는 스타 캐스팅을 내세운 기대작이다.
한국 좀비물의 약진은 2016년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으로 시작됐다. 작품은 주인공 석우(공유 분)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딸 수안(김수안 분)과 함께 부산으로 떠나는 과정을 담았다. 좀비가 주는 공포와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기심 등 구성은 기존 해외 좀비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배우들이 열연한다는 것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했고 11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부산행' 이전에 한국에 좀비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1년 영화 '괴시'가 그 시작이었고 2006년 '어느날 갑자기 네 번째 이야기 – 죽음의 숲(이하 '죽음의 숲')' 2007년 '불한당들' 2009년 '이웃집 좀비' 2014년 '좀비스쿨' 등이 꾸준히 제작됐다. 하지만 대부분 낮은 완성도로 혹평을 샀고 '불한당들' '이웃집 좀비' 등은 저예산 영화, 다양성 영화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좀비를 향한 관객들의 호기심이 무르익는 때를 기다리고 이를 시각적으로 잘 전달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부산행'은 어설픈 특수 분장과 조악한 CG가 아닌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생생한 시체들과의 추격전을 그려냈다. 이는 관객의 심장을 뛰게 만들기 충분했다. '부산행'은 국내 1100만 관객 돌파는 물론 대만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홍콩 등에서도 인기를 누렸다. '좀비물'의 시장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충무로의 기술력도 입증하는 'K 좀비' 열풍의 신호탄이었다.
2018년 '창궐'은 159만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지만 좀비를 표현할 수 있는 기술력은 준비가 끝났음을 보여줬다. 앞서 언급했던 올해 개봉되는 두 작품은 그 기술력 기반에 더 새로운 요소로 관객몰이에 나선다. '반도'는 강동원 주연에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부산행'의 후속작이라는 이유로 이미 어느 정도의 성공이 예측되고 있다. '#얼론'은 박신혜 유아인이라는 스타 캐스팅을 마쳤다. 유아인은 혼자 살아남은 게이머 준우 역, 박신혜는 또 다른 생존자 유빈 역에 분한다. 스케일보다는 극한 상황 속 '생존'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춘다.
웹툰 IP(지적재산)가 영화 드라마 웹소설 다큐 등 2차 콘텐츠로 만들어지는 최근의 시장 변화도 좀비물의 탄생을 가속화 한다. 인기 웹툰 IP는 이미 기존 팬을 보유하고 있고 그 팬이 1020세대인 만큼 활용도가 높아졌다. 드라마로는 tvN '치즈 인 더 트랩' '미생' '김비서가 왜그럴까' JTBC '이태원 클라쓰' OCN '타인은 지옥이다', 영화는 '이끼' '강철비' '신과함께' '내부자들' 등이 원작 팬과 유입된 팬이 한데 어우러지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
다른 장르의 작품들이 영상화 되는 동안 좀비물은 웹툰판을 벗어나지 못했다. '데드데이즈드' '지금 우리 학교는' '1호선' '좀비딸' '당신의 모든 순간' '죽은자를 상대하는 방법' '극야'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 '드림사이드' '언데드킹' 데드라이프' '언데드' '미시령' '데들리키스' '살아있다' 등 연재가 끝난 것까지 합치면 웹툰에서 인기를 누렸던 작품은 100여 편이 훌쩍 넘는다. 하지만 '부산행'의 성공은 이 좀비 웹툰들의 시장성 재고로 이어졌다.
이 작품들을 시각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영화가 적합했다. 하지만 웹툰은 2시간짜리 영화보다 훨씬 호흡이 길다. 그렇다고 드라마로 제작하기엔 심의가 발목을 잡고 영화에 비해 낮은 제작비 때문에 시각적 완성도마저 떨어진다. 하지만 OTT(Over The Top, 인터넷으로 영화 드라마 등 각종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의 등장은 해결책이 됐다.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 콘텐츠에 자본을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긴 호흡과 거대자본이 필요한 한국 좀비물은 넷플릭스 드라마로 물꼬를 트게 됐다.
앞서 언급했던 '킹덤'은 웹툰 '신의나라: 버닝헬'을 원작으로 한다. 넷플릭스의 자본으로 완성도를 높였고 주지훈 류승룡 배두나 허준호 등 한국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웠으며 서양의 판타지인 좀비와 한국적 세계관을 한데 버무렸다. 국내에서의 뜨거운 반응과 더불어 "'왕좌의 게임'이 그립다면 몰아봐야 할 완벽한 시리즈"(Thrillist), "좀비보다 더 무서웠던 최고의 빌런 계비 중전"(Cosmopolitan), "기대치를 뛰어넘었다"(TheCinemaholic) 등 해외 매체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잘 만들어진 한국형 좀비물이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청신호였다.
넷플릭스는 '킹덤'과 같은 웹툰 원작 좀비물 '지금 우리 학교는' 제작을 확정했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에 고립된 이들과 그들을 구하려는 자들이 극한 상황에 놓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2009년 네이버 웹툰에서 수요일 연재작 가운데 1위를 기록했던 작품이기에 이미 기본 수요층은 보장됐다. 아직 캐스팅이나 규모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연출을 맡은 이재규 감독과 공동 제작사 필름몬스터에서 이전부터 꾸준히 공들였던 작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킹덤'도 두 번째 시즌 말미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등장시키며 차기작을 예고했다. 물오른 충무로의 기술력과 웹툰 IP의 선전 그리고 넷플릭스의 과감한 투자가 한데 어우러져 맞이한 한국 좀비물의 전성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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