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인터뷰] 윤성현 감독, '사냥의 시간'으로 그린 지옥도

"넷플릭스로 공개…전세계 관객 만나 기뻐"

[더팩트 | 유지훈 기자] 영화 '파수꾼'의 뒷맛은 참으로 길었다. 2만 6000관객을 동원한 이 독립 영화는 큰 파장을 일으켰고 평단과 대중의 고른 지지를 받아 명작으로 불렸다. 주역을 맡았던 박정민과 이제훈은 스타덤에 올랐다. 연출의 윤성현 감독 역시 차기작으로 꾸준히 관심을 받았다. 9년이라는 기다림 끝에 영화 '사냥의 시간'은 베일을 벗었다.

'사냥의 시간'는 지난 2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의 여파로 스크린이 아닌 넷플릭스를 통해 관객들을 만났다. 작품은 희망이 사라진 대한민국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감옥에서 출소한 준석(이제훈)은 가족 같은 친구들 장호(안재홍 분)와 기훈(최우식 분), 그리고 악연이었으나 힘겹게 다시 손을 잡은 상수(박정민)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 그들은 도박장을 털고 희망찬 미래를 그렸지만 정체불명의 추격자 한(박해수 분)이 등장하며 위기를 맞는다. 한은 사냥감을 쫓는 재미를 즐기듯 준석 일행을 쥐락펴락하며 관객들에 폭발적인 긴장감을 안긴다.

윤성현 감독은 희망이 사라진 대한민국을 스크린에 담아내기 위해 붉고 어두운 톤의 빛을 택했다. 이 빛은 거리의 네온사인과 노을로 변해 질주하는 캐릭터들을 끊임없이 내리쬔다. 추격전 끝에 피칠갑을 하고 신음을 뱉는 인물들, 공허를 안기는 황량한 도시,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울려 퍼지는 총성. 윤 감독은 '파수꾼' 이후 습작을 거듭해 '사냥의 시간'이라는 지옥도를 완성시켰다. "여러 상황들을 거쳐 영화가 공개됐다. 그저 관객들과 만날 수 있어 감사하다"는 고 뱉은 윤 감독의 표정은 그 지옥도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었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관객들을 만나게 된 것은 감독에겐 가장 큰 행복이다.

윤성현 감독은 파수꾼 이후 9년 만에 사냥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제공

Q. '파수꾼' 이후 9년 만의 신작이다. 전작이 성공해서 준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나.

'파수꾼'이 히트작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독립영화였으니까, 일반 관객들까지 많이 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그 테두리 안에서 잘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준비했던 시나리오가 있었는데 SF였다. 드라마고 큰 규모였다. 쓰면서도 내가 영화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만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성격상 칼을 뽑으면 끝까지 베는 스타일이라, 영화로 못 만들어져도 끝까지 써보자는 생각으로 작업했고, 그래서 4~5년 시간을 보냈다.

Q. 습작과 우여곡절 끝에 개봉하는 '사냥의 시간'이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오랜만에 관객들을 만날 수 있어서 흥분된다. 떨리고, 기대가 됐다. 작품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나로서는, 전세계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라 영광이었다. 전 세계인들이 '사냥의 시간'을 어떻게 볼지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Q. 영화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하는 데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개봉 전부터 사운드에 심혈을 기울였으니 영화관에서 관람해달라 하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해외 관객들도 작품을 빨리 볼 수 있어서 기쁘다. 모든 관객들이 집에 5.1 사운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분들은 거의 없을 거다. 어떤 분은 텔레비전 사운드, 어떤 분은 스마트폰으로 볼 거다. 공들인 사운드를 고스란히 전달 드리긴 어려울 거 같아서 신경 쓰이긴 한다. 하지만 요즘 기술들이 정말 좋아져서 괜찮다. 각자 더 좋게 볼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봐주셨으면 한다. 사운드가 반 이상을 차지하는 영화다

Q. 5년간 습작이 끝난 후 '사냥의 시간' 집필을 바로 시작했나.

16년부터 썼다. 습작으로 SF를 쓰다 보니 판타지적인 요소 담고 싶었다. 그 습작의 세계관이 살짝 묻어 있다. '사냥의 시간'이 습작에 비해 작은 규모긴 하지만 그럼에도 90억이라는 예산이 필요했다. 장르적으로도, 형태적으로도 기존 방식과는 달랐다. 준비하는데 4년이나 걸렸다. 9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사냥의 시간은 윤성현 감독이 만든 지옥이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붉은 빛을 쏱아낸다. /사냥의 시간 포스터

Q.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연출로 보여주는, '비주얼 텔러'라는 수식어로도 불렸다.

작년 말, 올해 초에 많이 들었다. 그전에는 한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번 영화를 작업하며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부담도 없었다(웃음). 인터넷으로 나를 찾아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커뮤니티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나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다. 하루하루 산책하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현실에서 더 발을 딛고 있다.

Q. '파수꾼'에 이어 '사냥의 시간' 역시 청춘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가.

개인적으로 청춘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한국 영화 중에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소설 중에서는 '데미안'과 '파리대왕'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젊은 사람들, 미성숙한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가 자연스럽게 커졌다. 투철한 철학이 있어서 연달아 젊은 층의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사냥의 시간'은 청년들의 박탈감, 그들이 지옥으로 보는 세상을 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그 내용들을 우화적인 영화로 만들어보고자 했다.

Q.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박해수가 주인공이다. 젊은 친구들과의 작품인 만큼 에너지가 강했을 것 같다.

모든 배우들 캐스팅 과정에서 내게 결정권은 없다. 그건 투자사, 제작사에 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모든 배우들이 내 마음 속에 1순위로 뒀던 인물들이었다.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조합이다. 박해수는 영화계에는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지만 비중이 정말 컸다. 한에 대해 생각했을 때 박해수가 섭외 1순위였다. 이분만이 한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촬영하다 보니, 도전하는 부분이 정말 많았다. 촬영, 라이트, 연기적인 부분 모두 도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해주고, 아끼는 친구들이다. 그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윤 감독은 사냥의 시간의 주인공인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박해수를 직접 캐스팅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대신 운 좋게도 그들은 윤 감독의 캐스팅 1순위였다. /넷플릭스 제공

Q. 추격자 한에 대한 궁금증이 크다. 총으로 쏴도 죽지 않고, 마치 전능한 신 같다.

본명이 후반부에 나오지만 그 역시 모호하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싶었다. 장르적인 형태로는 '죠스'의 상어, '터미네이터'의 로봇이라고 봐줬으면 한다. 이해 가능하고 친숙해서 공포스러운 게 아니라, 낯설고 의미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는 공포감이 크다. 캐릭터에 대해 정답을 만들어놓고 그걸 관객에게 강요하고 싶은 스타일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한은 이것입니다' 하고 말씀 드리긴 조심스럽다.

Q. 영화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붉고 어두운 톤을 유지한다. 지옥을 표현하기 위해 준비한 장치인가.

그렇다. 색 콘셉트를 레드로 잡았다. 전형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붉은색이 지옥을 상징한다. 그래서 가장 많이 차용했다. 이 외에도 장면마다 특징적인 색이 있었다. 지하주차장, 병원, 아이들의 공간에서 색상이 각자 다 다르다. 영화의 기본은 지옥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붉은 색을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라이트를 과감하게 쓸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굉장한 반대가 있었다. 일반적인 상업영화에서 그런 톤이라면 다들 말린다. 내가 고집을 부려서 그 톤을 유지했다. 연출적인 입장에서 이런걸 밀어붙였다. 많이 힘들었지만 내가 원하는 색을 잘 보여줄 수 있었다.

Q. 영화가 열린 결말로 끝난다. 후속작을 위해 남겨둔 복선이라는 이야기도 많다.

사실 후속작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영화가 프로파간다는 아니지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배경이 지옥을 빗댄 한국 사회다. 캐릭터들은 끊임없이 생존과 돈, 탈출을 갈망한다. 엔딩을 통해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벗어나고 외면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맞서 싸울 필요도 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메시지를 떠나 그냥 영화의 서스펜스, 비주얼, 총격전 액션 등 각자가 원하는걸 즐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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