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조와 신념의 '대찬 여가수' 설운도 작곡 '우연히' 히트
[더팩트|강일홍 기자] '트로트 디바' 우연이(51·본명 우은미)는 들꽃 같은 여가수다. 그는 19살 때인 80년대 중반 호텔나이트클럽 오디션을 거쳐 처음 무대에 섰다. 당시 팝 발라드 언더가수로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대중적 인지도에 대한 목마름이 늘 아쉬웠다.
그는 "당시엔 팝이 아닌 일반 대중가요는 같은 가수들 사이에서도 그레이드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처음엔 실력으로만 인정받는 게 더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차츰 제 노래와 이름을 알리는 게 절실해졌고 결국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뒤늦게 리메이크곡 '남자인데'(2001년)로 데뷔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4년간 무명 시절을 보내다 선배 가수 설운도가 작곡한 '우연히'(2005년)를 부르면서 대중적 관심을 받는다. 이 곡은 수년간 노래방 인기차트(애창곡 20위)에 오르며 그의 존재감을 키웠다.
우연이는 '대찬 여가수'로 소문날 만큼 지조와 신념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음색과 창법을 눈여겨본 유명 작곡가들의 러브콜을 받지만 모두 거절했다. 대신 '우연히' 히트 이후 '몰랐네' '그 남자' '불타는 사랑'에 이어 최근 낸 신곡 '길' '사랑의 바보'까지 모두 설운도와 콤비를 이룬다.
이런 인연으로 설운도와는 사실상 가요계 스승과 제자처럼 특별한 유대감을 이어오고 있다. 설운도는 "우연이 씨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없이 자기애가 강한 가수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의 독특한 가수 이력을 들어봤다. 스페셜인터뷰는 총선 다음날인 지난 16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가요계에서 욕심많은 가수로 소문 나 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인가, 최정상을 밟아보고 싶은 욕구인가.
솔직히 장윤정 홍진영도 부럽고 송가인도 부러워요. 다들 부러우면 진다면서 아닌 척 하는데 제 생각은 그렇지 않아요. 같은 가수로서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앞에서 인정하는 척 하고 뒤돌아서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욕한다면 스스로 발전이 없어요. 이런 저한테 욕심이 너무 많다고 말하시는 분도 계세요. 상관없어요. 욕심이든 욕망이든, 아니면 음악에 대한 열정이든 정상급 가수로 대중적 관심을 받고 싶은거죠. 가수는 언제나 노래로 승부를 걸면 된다고 믿어요. 늘 그랬듯이 긍정 마인드로 묵묵히 걷다보면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요.
-오랫동안 선배가수 설운도와 특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설운도 스타일의 음악만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 처음 만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특정 음악 스타일만 고집하려는 건 아니에요. 팝 발라드로 출발했기 때문에 정통 트롯보다는 변형된 세미 트롯이 더 자연스러울 뿐이죠. 그 점에서 보면 설운도 오빠의 곡 스타일이 저한테 잘 맞는다고 생각하죠. 그동안 의리를 지킨다는 저 나름의 기준도 있었고요. 설운도 오빠는 작곡가 선생님이나 가수 선배 그 이상이에요. 제가 무명 가수로 어렵고 힘들 때, 노래 실력을 인정해주시고 저한테 맞는 곡을 직접 써주셨어요. 누구도 손을 잡아주지 않았는데 돌파구를 만들어주신거죠.
우연이가 오랜 무명생활을 벗은 건 설운도의 곡 '우연히'가 뜨면서다. 설운도는 그에게 은인 같은 존재다. 우연이는 "클럽에서 언더가수로 제법 잘나간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음반을 내고 대중가수로 방향을 바꾸고나서야 얼마나 미미한 존재였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이후 그가 데뷔곡 '남자인데'로 4년 넘게 고생하고 있을 때 설운도의 친동생이자 가요기획사 대표 이춘섭 씨를 만난다. 이춘섭 대표의 주선으로 설운도의 '우연히'를 받고, 1년 만에 히트가수로 자리매김한다.
-국악고를 나온 뒤 밤무대 가수가 된 건 선배가수들의 영향이 컸다고 들었다. 당시 클럽에서는 주로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궁금하다.
국악고 출신 가수가 많아요. 민해경 언니가 6년 선배이고 유지나 언니가 4년, 양수경 언니가 3년 선배예요. 가수 이영화 이세진 씨도 모두 동문 선배죠. 선배님들이 이름 난 가수로 활동하다 보니 많은 후배들이 가수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었어요. 호텔 클럽에 놀러간 것도 그런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인데 우연찮게 오디션을 보게 됐고요. 당시엔 팝이 아니면 레벨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주로 70년대 빌보드 차트곡인 '블루 아이스 크라잉 인 더 레인'을 비롯해 '와이미' '돈 폴 러브 위드 미' 등이 레퍼토리였죠.
우연이는 서울 이문동에 있던 국악고등학교(현재는 안양 소재) 출신이다. 여고 3학년때 대구에 사는 친구한테 놀러갔다가 우연히 동천호텔 나이트클럽 관계자를 만나 오디션을 보게 됐다. 그는 "겁도 없이 20인조 브라스밴드 오디션을 받았다"면서 "학교 선배였던 민해경 언니의 '사랑은 이제 그만'을 불렀는데 덜컥 합격 했다"고 말했다. 엄마한테 50만원을 받아 의상을 구입하고 그 길로 클럽무대 가수로 진출했다. 그리고 판코리아 국일관 올림피아호텔 등 야간업소의 인기가수로 활동한다.
-과거 그룹활동을 하면서 남자가수들과 컨트리송을 많이 불렀다고 들었다. 당시 허스키 보이스로 정평이 났는데 혹시 목소리 톤이 바뀌었나?
목소리는 환경에 따라 조금씩 바뀐다고 하는데 제 경우는 좀 특이한 케이스예요. 나이 들수록 맑고 낭랑한 보이스가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해요. 팝과 발라드를 많이 부를 때는 분명 허스키였거든요. 실제로 저는 달라지거나 변화를 시도한 게 없는데 그렇게 들린다니 신기하긴 해요. 호흡도 길어지고 키도 더 올라가 일반적인 경우와는 반대거든요. 아마도 원래 목소리가 변했다기보다는 노래 장르나 스타일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와닿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첫 결혼에 실패한 뒤 힘든 시기를 많이 겪었다고 들었다. 음악적 교감을 가진 뮤지션과 재혼하지 않았나?
너무 철없는 나이에 결혼을 했어요. 음악 외엔 세상 물정이란 걸 몰랐어요. 가요계에 뛰어들어 망망대해 같은 낯선 느낌으로 살다보니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충동이 있었고, 음악적 도움을 주는 분한테 이끌릴 수밖에 없었죠. 저는 갓 스물을 넘었고, 남편은 우리 엄마 아빠와 비슷한 나이의 23살 연상이었어요. 지금은 이혼한 지도 오래됐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 상황이라서 조심스럽긴 한데 꼭 필요한 상황이 되면 성심껏 도와드리려고 해요. 유일한 제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잖아요.
그의 첫 남편은 작곡가 겸 트럼펫 연주자인 강 모씨다. 80년대 이후 김수희 민해경 최진희 최유나 이용 등 인기 가수들의 음악작업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갓 신인이었던 우연이한테는 하늘 같은 존재였고, 음악적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가까워져 결혼으로 골인했다. 우연이는 "음악만 하는 분이라 경제적 어려움에 늘 시달리며 살아야했고 자녀 교육 등의 문제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후 MBC 악단에서 활동했던 장 모씨(현 실용음악 교수)와 재혼했다.
-19살부터 노래를 부른 이후 음악활동을 한 지 34년째다. 마지막으로 가수로 살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말해달라.
가수가 된 걸 지금껏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게 노래이고 보면 천상 가수란 생각이니까요. 대신 아쉬운 건 너무 많아요. 음악적으로 충분히 인정을 받고도 정상을 찍어보지 못했어요. 늘 정상 문턱에서 더 이상 치고 올라가지를 못한 것 같아요. 그럴 때마다 대중 인기는 실력 말고도 운과 때가 동시에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절감하곤 해요. 또 하나는 엄마로서도 아들한테 제대로 된 사랑을 베풀지 못한 자책감이에요. 어찌보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아쉬움이죠.
우연이의 아들 강원휘 씨(29)는 첫 남편과 사이에 낳은 외동이다. 그는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캐나다 밴쿠버로 홈스테이 유학을 떠나보냈다. 이후에도 미국 샌 안토니오(텍사스)에 거주하는 부모(외조부모)한테 맡겨져 살았다. 우연이는 "중요한 나이에 엄마의 모자 간 정을 나누지 못했다는 게 가장 가슴아프다"고 했다. 다행히 아들은 반듯하게 잘 성장해 지금은 엄마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는 "아들이 엄마 아빠의 DNA를 닮았는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면서 "이제부터라도 아들이 원하는 일을 적극 밀어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우연이는 트로트 데뷔 전까지 그룹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음악적 토양을 쌓았다. 데블스 싱어로 활동하면서 서울패밀리 위일청이나 서기1979의 조항조 등과도 자주 교감했다. 트로트 가수로 방향을 튼 뒤에도 그는 음악적으로는 늘 '변방'이 아닌 '실력파'라는 자부심을 지킬 수 있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의리를 중시하는 것은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틀린 생각까지 고집스럽게 지키겠다는 게 아니에요. 무엇이든 바꾸고 개선해야 다같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잖아요. 더 좋은 노래, 의미있는 노래를 부를 기회가 많아졌으면 해요."
최근 신곡 '길'을 낸 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30년지기 '인생 자매' 사이인 스타코리아 이주연 대표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단독콘서트를 열겠다는 다짐이다. 그는 "안 풀릴 때마다 가요계의 약육강식 논리를 탓했는데 내려놓으니 빛이 보이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과연 그는 평소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주며 각오도 솔직 담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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