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어린이 방송 대표 캐릭터...펭수 인기 타고 '재소환', 맹활약
[더팩트|강일홍 기자] 김성은(51)은 90년대 KBS1 'TV유치원 하나둘셋'에서 온종일 깔깔깔 웃어대는 '깔깔마녀'로 활동하며 어린이들의 '대모'로 큰 사랑을 받았다. 87년 MBC 대학개그제 은상을 받고 연예계에 데뷔한 뒤 '뽀식이' 이용식, '뚝딱이' 김종석과 함께 3대 어린이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깔깔마녀는 지난 1996년부터 2015년까지 어린이 프로그램 '딩동댕 유치원'과 'TV유치원 하나 둘 셋' 등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김성은이 맡아 무려 19년간 활약한 캐릭터다. 특히 9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30~40대는 '깔깔마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40~50대가 기억하는 '뽀미언니'와는 또다른 의미로 그의 존재감은 살아있다.
김성은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최근 20~30세대 사이에 '펭수'가 인기를 누리면서다. '펭수'는 EBS 채널과 유튜브 '자이언트 펭TV' 채널에서 선보인 뒤 일약 스타 캐릭터로 떠올랐다. 덩달아 과거 EBS의 인기 캐릭터인 뿡뿡이, 짜잔형, 뚝딱이 등도 소환됐다. 덕분에 김성은도 '깔깔마녀'를 새롭게 이미지화해 유튜버로 변신했다.
'추억의 깔깔마녀, 인기는 지금의 뽀로로 버금가는 수준', '아니, 그런데 어떻게 아직도 그대로시지? 나이를 안드시네'. TV에서 깔깔마녀를 봤던 어린이들은 20년이 지난 지금 '어른'이 돼 댓글을 남기고 있다. 지난해 채널 '깔깔마녀TV'를 개설한 이후 누리꾼들의 반응은 폭발했다. 김성은은 "아마 96년 'TV유치원' 시절 저를 본 팬들이라면 지금 학부형이 됐을 나이"라며 "그 분들이 잊지않고 꾸준히 호응해주신다"고 말했다.
김성은은 이 같은 관심을 바탕으로 파격 변신을 벼르고 있다. 그는 3월 6일부터 SH아트홀에서 개그계 '빅마우스'로 불리는 박미선 권진영 등과 함께 거친 입담 대결을 펼친다. '박미선, 김성은, 권진영의 여탕쇼(Show)'. 어린이 캐릭터로 오랜 사랑을 받은 그가 '19금 성인 수다' 이미지를 어떻게 풀어낼 지도 궁금하다. 각오를 직접 들어봤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21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정말 오랜만이다. 20여년 전 MBC '웃으면 복이와요' '청춘만만세' 등 개그콩트 프로그램에 출연할 당시 만나고 처음이다. 그 사이 전혀 다른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강 기자님의 오랜 연륜과 내공이 단번에 저를 과거 20년 전으로 되돌리네요. 사실 저를 인터뷰한 수많은 기자분들도 '깔깔마녀'는 알아도 '개그우먼 김성은'을 잘 기억하진 못하더라고요. 그동안 거의 쉬지않고 방송활동은 했는데도 주로 어린이 프로그램에만 출연하다보니 과거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모습과 매칭이 안 되는 거죠. 어찌보면 이젠 그만큼 어린이 캐릭터에 더 익숙해진 셈이에요. 데뷔 후 예능에서 나름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지만, 워낙 휘발성이 강한데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보니 짧은 공백에도 쉽게 흩어지더라고요. 뒤늦게 어린이프로그램을 하면서 방송인으로 저의 또다른 매력을 발견한 거죠.
김성은은 80년대 후반 MBC 대학개그제 1기로 방송에 입문했다. 이경실 정재환 최홍림 김은태 등이 동기다. 7080 개그세대 막내 격이지만 90년대 콩트코미디의 주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당시 김성은은 '길 떠나는 은장도'(MBC '웃으면 복이와요' 코너)에서 과객을 유혹하는 내숭꾼 과부 역할로 주목을 끌었다. 그는 "툭하면 가슴에 품은 은장도를 꺼내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를 외쳐도 과객은 관심조차 안가져 속상해하는 일종의 반전 개그였다"면서 "이 캐릭터로 그해 MBC 연예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테마게임'에서 조혜련 서경석 등과 호흡을 맞춘 뒤 한 차례 더 연예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승승장구하던 예능을 떠나 갑자기 어린이 프로그램에 안주한 이유가 궁금하다. MBC에서 잔뼈가 굵었는데 KBS로 옮겨 주로 활동하지 않았나.
아시다시피 요즘엔 소속이나 출신보다는 개인의 스타성 또는 화제성이 중요하잖아요. 방송사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물론 당시에도 특급스타들은 영역 구분없이 활동했지만, 저는 이상하게 눈치가 많이 보이더라고요. 다행히 콩트 코미디가 서서히 물러가는 추세였고, 대부분의 7080 개그맨들의 활동 무대가 축소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그저 어디서라도 생존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더군요. 더구나 예능이 아닌 어린이 프로그램이라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고요. 그러는 사이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듯 '마녀 이미지'가 어린이들과 학부형들 사이에 서서히 흡수됐어요. 새로운 어린이 캐릭터가 생성되면서 롱런할 기반이 만들어진거죠.
김성은은 MBC 코미디프로그램에서 '왈가닥' 이미지로 굳었을 즈음인 90년대 중반 우연히 KBS1 'TV유치원 하나 둘 셋' 출연 제의를 받았다. 평범한 어린이프로그램에 반전을 주기 위해 그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귀엽고 인간미 넘치는 마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타고난 순발력과 예능감으로 어린이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는 2016년까지 무려 20년간 이 프로그램에서 '깔깔마녀' 닉네임으로 활약했다. 김성은은 "당시 분위기로만 보면 저 나름대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는데 어느순간 또다른 방송인 캐릭터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박미선 권진영과 함께 '여탕쇼'라는 이색 토크쇼를 준비 중인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딱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여자들끼리 주고받는 '19금' 토크예요. 남자들이 접근 불가능한 '여탕'에서 착안한 콘셉트인데요. 우선 여성들의 시각으로 대사가 매우 대담하고 솔직해요. 과거 입담 개그맨들의 상설 장외무대였던 '코미디클럽'과 비교할 수 있지만, 단순 '19금' 유머와는 또 달라요. 육아와 일상에 지친 주부들의 묵은 때를 시원하게 풀어준다는 점에서 얼핏 여자들의 얘기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남자들한테 더 공감이 가는 내용이거든요. '여탕쇼'는 여성전용 공연을 표방하지만, 호기심 많은 남성 관객들을 위해 아내나 여친의 손을 잡고 들어오면 허용한다는 예외를 뒀어요.
박미선 권진영 등과 펼칠 '여탕쇼'(Show)는 지난해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 처음 선보였던 '19금' 토크쇼다. 여탕에서 펼쳐지는 세 여자의 은밀하고 위험한 수다와 함께 여자들끼리 똘똘 뭉쳐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발칙하고 유쾌한 3색 토크쇼다. 독신을 고수하고 있는 김성은이 싱글여성의 매력과 아픔을, 권진영은 고부갈등을 털어놓는 신혼부부의 아내로, 결혼 26년차인 박미선은 남편과 자식 등 중년 여성의 고민과 내면 갈등을 토로하는 것으로 역할분담을 했다. 부코페 스페셜 공연을 통해 '같은 여자의 입장이지만 각기 다른 상황묘사가 기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돌싱'이 아닌 미혼인데 독신을 고수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결혼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궁금하다.
결혼에 대한 아쉬움이 왜 없겠어요. 한때는 멋진 남자를 배필로 맞고 싶은 소망이 간절했어요. 맘에 좀 든다 싶으면 1% 부족한 대시로 실망을 시키니 골인에는 매번 실패한 거죠. 어려서부터 2남1녀 틈에 자라다보니 와일드하고 보이시한 부분이 좀 있긴 했어도, 마음을 열면 저도 다소곳한 여성스러움이 넘치는 여자예요. 다만 결혼이 절박하지 않으니 관심을 덜 두게 된 것 뿐이에요. 게다가 '진짜 보석'을 구분하지 못하고 엉뚱한 쪽에 시선을 둔 어리석은 남자들 탓도 있고요. 아무튼 전 지금 독신 생활이 더 편하고 좋으니 결혼 가능성은 갈수록 희박해지는 거죠.
-뒤늦게 어린이 이미지를 특화한 유튜버로 합류했다고 들었다. 반응이나 호응도는 어느 정도인가.
어린이 프로그램을 그만 둔지 4년이 지났지만 '깔깔마녀'에 대한 관심도는 여전해요. 특히 처음 출발 당시 저를 봤을 어린이들은 지금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어른이 됐을텐데요. 요즘 20~30대는 취직도 어렵고, 여러가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세대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TV유치원 하나 둘 셋'을 보며 마냥 즐거웠던 어린시절 추억을 되새기고 싶어 저를 찾는다는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깔깔마녀'는 악역이라기보다는 개구지고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친숙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같아요.
김성은이 새로 개설한 '깔깔마녀TV'는 '펭수' '뚝딱이' 등 EBS가 불러 일으킨 어린이 캐릭터 복고 열풍에 힘입어 부활했다. 어린이 프로그램 출연 '20년 내공'을 고스란히 담은, 그리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그만의 차별화된 유튜브 채널이다. 뒤늦게 유튜버로 변신하게 된 계기도 절친이자 방송 동료 박미선의 적극적인 권유와 격려가 한몫을 했다. 그는 "미선이와는 MBC 대학개그제를 통해 1년 차이로 방송에 입문한 뒤 줄곧 친구처럼 지내온 사이"라며 "힘들고 어려울 때는 물론 기쁨과 즐거움을 늘 함께 나누다보니 진심에서 우러난 조언을 자주 해준다"고 말했다. 절친인 둘은 일산의 덕이동과 마두동에 사는 이웃 주민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유튜버 활동에 제약은 없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보고 즐기는 채널이어서 유익한 어린이 정서나 정보에 초점을 맞춰야할 듯한데 주로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 궁금하다.
아이들이 주 시청층이다보니 최대한 건전하면서도 잔잔한 재미를 가미해야 해서 쉽지는 않아요. 특별한 제약이 있는 건 아닌데 화제성을 몰고다닐 노이즈마케팅은 상상도 못하죠. 주로 평범하고 잔잔한 내용들이에요. 8살 꼬마 파트너인 쭈니(준희)랑 케익, 빙수, 와플도 만들고 동화책을 읽거나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여러가지 게임도 해요. 현재 구독자가 3500여 명으로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긴 한데 중요한 건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만족하며 한다는 사실이에요. 다양한 방식으로 관련 내용을 영상에 담아 표출해가는 작업도 흥미롭고요. 아직은 기본 편집 수준이지만 팔로어들의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차츰 콘텐츠를 업그레이드해갈 생각입니다.
그는 자신이 생산하는 콘텐츠에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다. 관심에 대한 보답으로 일일이 댓글을 다 읽고 직접 답글을 단다고 한다. 김성은은 "댓글을 읽는 재미는 쏠쏠하지만 올리는 영상마다 수 백개가 넘는 누리꾼 반응에 답글을 다는 일도 만만찮은 작업"이라면서 "저한테는 몇 백개라도 댓글을 단 사람한테는 한 개의 댓글이기 때문에 역지사지 입장에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댓글 중에는 너무 반갑고 기뻐서 눈물이 날 만큼 가슴 찡한 내용도 많다"면서 "모든 걸 직접 해결해야하다 보니 에로사항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당장은 비용과 효과를 따지지 않고 보람된 작업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은의 학창시절은 전교생들이 '재밌는 아이'로 인정할 만큼 끼가 충만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단연 '으뜸'이었기 때문이다. 평소엔 말수가 없다가도 명석을 깔아놓으면 돌변하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는 "성격상 나대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닌데 일단 뭔가 해야한다고 맘을 먹으면 똑 부러져야 직성이 풀린다"고 말한다.
"예능인들 중엔 의외로 저처럼 조용한 성격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일단 마이크나 카메라 앞에 서면 180도로 확 달라지는거죠. 제 스타일을 잘 아는 가까운 주변분들도 그래서 더 의외라고 말들을 하세요. 다만 저 스스로 느끼는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작은 일에도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는 완벽주의 성격이에요."
그는 20년간 어린이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동안 NG 한번 내지 않아 제작진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얻었다. 어린이 출연자들 앞에서 대사 한마디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덕분이다. 모든 일엔 양면성이 있다. 그가 스스로를 갉아먹는 단점이라고 말하는 '완벽주의 성격'은 다른 측면에서보면 '롱런의 비결'이 됐던 셈이다. 성인토크 '여탕쇼'에선 어떤 기발한 변신을 할지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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