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첫방 '나는 트로트가수다' , 진정한 프로들의 자존심 경연
[더팩트|강일홍 기자] TV조선의 '미스트롯' 성공에 이은 '미스터 트롯'의 대폭발로 방송가의 지형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트로트 열기의 원조 격인 '미스트롯' 제작진이 1년 만에 재출격한 '미스터 트롯'은 방영 5회 만에 자체 기록을 뛰어넘고 종편 최고 시청률 25.7%(종전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 23.8%)를 찍었다. 개국 직후 한동안 1%대 이하(평균 0.5~0.7%)의 '시청률 벽'에 허덕이던 때와 비교하면 TV조선으로선 말그대로 '꿈의 도약'이다.
트로트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방송 트렌드가 바뀌고, 채널 위상도 뒤바뀌었다. 지난해부터 KNN '골든마이크'와 MBN '보이스퀸'이 방영됐고, 트로트 프로그램 제작에 인색하던 지상파까지 뒤늦게 유사프로그램 기획에 나섰다. 봇물처럼 터지는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제작 열기는 최근 방송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대변해주고 있다. TV를 켜면 온통 트로트 일색이고 전국민이 트로트 스타들의 탄생과정을 보며 탄성을 지른다.
'미스트롯'이 이끌어낸 파급효과는 공연계에도 상당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방송 전까지는 말 그대로 '히트곡 하나 없는 무명의 가수들'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내일은 미스트롯'이란 깃발 아래 70여 회의 공연 매진과 20만 명 이상의 관객 동원, 총 200억에 이르는 공연 매출을 기록했다. 콘서트 외에 각종 행사 개런티와 방송 출연료까지 합치면 이들이 신(新) 트로트 붐을 일으키며 창출해낸 경제적 효과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 트로트 경연프로그램 봇물, 기성 가수들 박탈감과 위기 속 미묘한 갈등
반면 트로트 경연프로그램이 늘면서 기성 가수들은 미묘한 갈등의 기로에 서 있다. '아마추어 스타 탄생'으로 대중적 관심과 열기가 커질수록 무대의 주도권을 빼앗긴 듯한 분위기 때문이다. 무명의 트로트 가수들이 일약 스타 반열에 오른 뒤 우려는 현실로 다가섰다. 방송사마다 앞 다퉈 이들을 먼저 섭외하고, 독무대였던 지자체 행사 등에서도 밀리는 양상이다. 상대적으로 기성 트로트 가수들의 박탈감과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트로트 경연프로그램의 마스터로 참여한 한 중견 가수는 "서바이벌 출신 신인들이 트로트 활성화에 기여한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면서 "기성 가수로서 마땅히 박수를 치고 환영할 일이지만 막상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방송에서 대등한 입장으로 만나면 난감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한때 히트곡 없는 아마추어 가수의 인기는 거품이라고 폄하했던 입장이고 보면, 거꾸로 그들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이러니다.
◆ 입지 좁아진 기성 가수들 '반격', '트로트 나가수' 돌파구
반격은 시작됐다. 5일 밤 10시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MBC 에브리원 '나는 트로트 가수다'(이하 '트로트 나가수')는 기성 가수들이 펼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매회 7명의 트로트 가수가 경연을 펼치고 500명의 청중평가단에게 심사를 받는 방식이다. 아마추어가 아닌 수십 년간 대중적 사랑을 받으며 활동한 프로 가수들이 실력으로 평가받고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는 점에서보면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룰렛 게임'이다.
'트로트 나가수'는 2011년부터 3차례 시즌제로 방영된 '나는 가수다'의 트로트 버전이다. 각기 다른 콘셉트와 이미지로 이미 '최고'의 명성을 얻은 가수라도 경연에서 밀리면 탈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일부 가수들 중엔 '참여하는 순간 독배를 마시는 게 아니냐'는 회의론적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일산 MBC 스튜디오 녹화장에서 만난 가수 김용임은 "무대 위에서 이렇게 떨어보기는 난생 처음"이라고 압박감을 토로했다.
안주하면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 '미스트롯' 이후 기성 가수들은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 채찍질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다행인 것은 '트로트 나가수' 사전 녹화 현장의 열기다. 직접 녹화장면을 지켜본 필자의 눈에도 아마추어들과 다른 진정한 프로 가수들의 맛과 깊이가 뚜렷이 드러났다. 공연계는 벌써부터 출연진 대상 '입도선매'에 나설 정도다. 한껏 '좁아진 입지', 더이상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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