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안방극장 사로잡은 '핫' 드라마
[더팩트|박슬기 기자] 야구 비시즌인 겨울, 선물 같은 드라마가 찾아왔다. 야구장 대신 안방극장에서 야구를 즐기는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극본 이신화, 연출 정동윤)가 그 주인공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팬들은 물론,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이들까지 울리고 웃기는 '스토브리그'는 최근 핫한 작품으로 떠올랐다.
'스토브리그'는 전작 200억 이상을 들여 만든 '배가본드'(최고 시청률 13%) 시청률보다 높은 17%를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이고 있다. 결방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시청자들의 원성을 들으며 '드림즈 앓이'를 하게 만드는 이 작품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 지금껏 본 적 없는 프런트, 야구 아닌 사람 이야기
'스토브리그'는 선수와 감독 중심의 이야기가 아닌 그라운드 뒤편의 프런트를 배경으로 했다. 구단과 구단주의 관계, 선수들과 연봉협상, 트레이드, 승리를 위한 전략까지 구단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야구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오피스의 이야기를 결합해 시청자의 폭이 확대됐다.
이 가운데서도 시청자들의 가장 큰 지지를 받는 건 신임 단장 백승수(남궁민 분)의 활약이다. 절제된 감정으로 매번 대쪽같은 결단을 내려 묘한 통쾌함을 안긴다.
극 중 씨름단, 하키, 핸드볼팀 운영 경험이 있던 백승수는 야구팀의 신임 단장으로 부임하면서 '미운 오리 새끼'가 된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과를 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비상식적인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지키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백승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모든 게 정답인 것 같아 그를 전적으로 믿게 만든다.
그런 백승수의 곁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있다. 그가 "배부른 돼지인 줄 알았다"고 표현한 드림즈의 프런트는 사실 누구보다 드림즈의 우승을 갈망하는 배고픈 이들이다. 하지만 이 작은 사회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알력과 이권 다툼, 여전히 쉽지 않은 여성의 사회생활, 장애인 차별, 학연·지연으로 인한 고질적인 병폐와 악습 등이다.
'스토브리그'가 야구 소재를 내세운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이처럼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해와 갈등이 반복되는 가운데서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분투는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자아낸다.
◆ 실제 사건 뭐가 있을까?
야구팬들이라면 실제 사건과 비교하는 재미가 가장 크다. 대표적으로 신임 단장 백승수의 파격적인 행보, 드림즈의 스카우트 전 팀장 고세혁(이준혁 분)의 비리 사건, 30% 연봉삭감 등이 거론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의 한 팬인 김종헌 씨(33)는 "새로운 전략을 짜는 백승수 단장은 성민규 단장의 행보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드림즈처럼 4년연속 꼴찌팀을 해본 유일한 구단이기도 하고, 파격적으로 82년생 단장을 새로 들여왔다"며 "드라마 흐름과 유사하다"고 했다. 이로 인해 남궁민과 성민규 단장의 이름을 합친 '남궁민규'라는 별명도 생겼다.
실제 성민규 단장은 외부 FA로 안치홍 영입, 내부 FA 프랜차이즈 전준우를 잡는 파격적인 행보로 관심을 모았다. 성 단장은 KBS스포츠 '이광용의 옐카'에 출연해 "('스토브리그')는 내가 부임 전 이미 진행 중이었다. 날 따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 팀(롯데 자이언츠)이랑 비슷한 건 많다. 펜스 확장 고민까지 했던 게 공감됐다"고 말했다.
극 중 비리로 경질된 고세혁 전 스카우트 팀장이 에이전시를 설립한 사건도 실제 이야기와 비교되고 있다. 이는 양승호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의 이야기로, 양 전 감독은 2011년과 2012년 롯데를 2년 연속 플레이오프까지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부터 입시 청탁과 금품을 받은 혐의로 2014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 3개월과 추징금 1억 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후 그는 2018년 스포츠 에이전트사 대표로 취임했고, 롯데 전준우와 선수 계약을 체결했다.
'스토브리그'가 더 현실적인 건 전준우 선수가 양 전 감독과 결별 후 직접 연봉 협상에 나선 사연까지 담아서다. 극 중 곽한영(김동원 분)은 무리한 몸값을 요구하며 협상 테이블을 짜는 고세혁 팀장과 계약을 파기하고, 직접 연봉계약서에 사인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또 드림즈의 연봉 30% 삭감 에피소드도 큰 관심을 끌었다. 드라마 소재로서도 파격적이었던 이 사건은 실제로도 일어났을까? 이는 2007년 해체된 현대 유니콘스 선수단을 거둬들여 창단한 히어로즈 사례라고 한다. 당시 2007년 외국인과 신인선수를 제외한 현대 총연봉은 41억 2970만 원으로, 2008년 우리 히어로즈 연봉은 35.4%가 삭감된 26억 6900만 원으로 줄었다.
두산의 오랜 팬인 이송희 씨(27)는 "두산의 모기업 재정이 안 좋은 탓에 대형 FA도 놓친다는 인식이 강한데 그런 점이 드림즈와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비시즌이라 굉장히 심심했는데, 스토브리그라는 드라마가 나와서 재밌게 보낼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 탄탄한 대본, '신의 한 수' 캐스팅
국내에서 스포츠 소재의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둔 사례는 보기 드물다. 특히 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이 그동안 다수 나왔지만, 흥행과 화제성을 다 잡은 작품들을 찾아보긴 힘들다. 그런 이유에서 '스토브리그'가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방송 관계자들은 이 드라마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스토브리그'는 2016년 MBC 드라마 극본공모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당시 MBC 파업 등 내부 잡음으로 방송을 타긴 힘들었다. 기존 드라마 PD들이 파업에 참여하며 일부 신입 PD들이 작품 타진을 계획했지만, 당시 하는 드라마마다 저조한 성적을 내 '스토브리그'의 제작은 물거품 됐다.
이후 방송 시장에 나온 '스토브리그' 각본은 SBS 품에 들어가게 됐다. 이 각본을 접한 몇몇 남자 배우들은 백승수에 매력을 느껴 출연 의지를 강력하게 어필했다. 하지만 주인공은 남궁민이 됐다.
결론적으로 남궁민의 출연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앞서 '닥터 프리즈너' '조작' '김과장' '미녀 공심이' '리멤버' 등 다수의 작품에서 절제된 감정 연기를 탁월하게 소화한 만큼 '스토브리그' 속 백승수 단장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고 있다. 탄탄한 대본과 감각 있는 연출이 한몫했지만, 남궁민의 캐릭터 분석력도 드라마 인기 요인에 큰 영향을 끼쳤고,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내며 승승장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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