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9년 충무로
[더팩트|박슬기 기자]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은 2019년도 벌써 끝을 향해 달려간다. 올해는 다섯 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했고,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받는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스크린 독과점과 젠더 갈등 등이 아쉬움을 자아냈다.
<더팩트>가 2019년 한 해 동안 있었던 영화 성적과 이슈 등을 정리했다.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또 어떤 아쉬움이 남는지 확인해보자.
1월, '극한직업' 천만돌파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의 기분 좋은 출발은 2019년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2019년 첫 천만영화 '극한직업'은 무려 1626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 작품은 코미디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관객수를 기록해 관심을 끌었다. 이로 인해 한동안 외면 받던 코미디 장르가 다시 부활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같은 달 개봉한 '내 안의 그놈'(감독 강효진)은 호평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했다. 또 공효진, 조정석, 류준열이 출연한 '뺑반'(감독 한준희)은 산만한 스토리와 진부한 설정, 떨어지는 개연성 등으로 "뇌를 뺑소니 당했다"는 혹평을 받으며 외면 받았다.
2월, UBD 탄생
'역대급' 최악의 영화를 배출한 달이다.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감독 김유성)이 그 주인공으로, 흥행에 처참히 실패했다. 무려 100억원의 큰 제작비가 들었지만, 관객수는 17만 명에 그쳤다. 제작비와 관객수가 철저히 반비례했다. 이로 인해 한 누리꾼은 '자전차왕 엄복동'의 저조한 흥행 성적을 비꼬며 '17만=1UBD'라는 공식을 만들었고, 이후 UBD는 흥행참패지수를 결정하는 새로운 단위로 쓰이게 됐다.
하지만 정우성·김향기 주연의 '증인'(감독 이한)과 이정재·박정민 주연의 '사바하'(감독 장재현) 등이 탄탄한 연출과 신선한 내용으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특히 '증인'의 정우성은 이 작품으로 제5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에서 대상을 거머쥐었으며 제40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3월, 류준열 활약
혹평의 연속이다. 영화 '악질경찰'(감독 이정범)은 "영화가 악질"이라는 평을 받으며 관객의 외면을 받았고, 영화 '우상'(감독 이수진)은 과도한 멋부림으로 관객과 소통에 실패했다. 관객은 "감독만 이해하고 끝난 영화"라고 평하며 실망감을 표했다.
그나마 류준열 주연의 영화 '돈'(감독 박누리)이 중박을 쳤다. 338만 관객을 동원한 이 작품은 여의도 증권가를 배경으로 한 오락영화다. 류준열의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활약이 돋보였다.
4월, '어벤져스: 엔드게임', 두 번째 천만
봄의 시작을 알리는 4월엔 '어벤져스: 엔드게임'(감독 안소니 루소·조 루소)이 국내 팬들의 마음을 휩쓸며 2019년 두 번째 천만영화에 등극했다. 1393만 관객을 동원한 이 작품은 국내 마블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피해가지 못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형 영화관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반면 유의미했던 한국 영화들은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상업영화로서는 처음 세월호 이야기를 다룬 '생일'(감독 이종언)이 많은 논란 끝에 겨우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배우 설경구, 전도연의 열연이 빛을 발했지만 대중은 "시기적으로 이르다"라고 판단했다. 2016년 4월에 벌어진 세월호 사건을 약 3년 만에 영화로 다시 마주하기에는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를 상업영화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은 충무로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섬세한 연출력과 여성들의 이야기를 내밀하게 표현하며 감독 김윤석으로서 새롭게 평가 받았다. 관객들은 "김윤석은 연기를 잘하는 게 아니라 영화를 잘하는 것"이라고 호평했다. 저예산 영화로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해 아쉽지만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5월, 천만 영화 2개 탄생 '알라딘' '기생충'
무려 2개의 천만 영화가 탄생한 달이다.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감독 봉준호)과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이 그 주인공이다.
올해 세 번째 천만 영화로 등극한 '알라딘'은 지니 역을 맡은 윌 스미스가 '하드캐리'(캐릭터를 완벽에 가깝게 소화했다는 의미)한 작품이기도 하다. 노래부터 춤, 연기까지 3박자가 맞아떨어졌다. 여기에 배우 메나 마수드와 나오미 스콧이 각각 알라딘과 자스민 역을 맡아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했다. 누적 관객은 1255만이다.
'기생충'은 한국 사회를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비판한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으로 호평을 받았다. 아울러 봉 감독의 페르소나 송강호와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등 구멍없는 열연이 빛을 발했다. 1008만 여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
하지만 '페미니즘 논란'으로 곤혹을 치러야만 한 작품도 있었다. 바로 라미란·이성경 주연의 '걸캅스'(감독 정다원)다. 이 작품은 두 여배우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 남성 캐릭터를 지질하게 그렸다는 이유에서 개봉 전부터 평점 테러에 시달리며 '걸복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일부 관객이 일명 '영혼 보내기'(관람을 하지 않더라도 표를 구매하는 행동) 운동을 벌이면서 손익분기점 150만 달성에 성공했다.
6월, '기생충' '알라딘'에 가린 비운의 작품
아쉬움이 많이 남는 달이다. '범죄도시'로 새로운 흥행 신화를 썼던 강윤성 감독의 신작 '롱 리브 더 킹'이 큰 빛을 보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액션, 멜로,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한데 섞은 오락영화였지만, 5월 말 개봉한 '기생충'과 '알라딘'의 영향으로 관객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비스트'(감독 이정호)는 배우 이성민, 유재명, 전혜진 등 충무로 연기파 배우들이 출동한 작품이다. 관객들은 "배우들 연기 빼면 시체인 영화"라며 "영화 보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좋은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지 못한 이정호 감독의 연출에 아쉬움이 남는다.
7월, '엑시트' 900만 돌파
영화 '엑시트'(감독 이상근)가 942만 관객에 그치며 아쉽게 천만영화에 등극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신선한 연출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내용, 조정석과 윤아의 찰떡 궁합이 조화 등 천만영화 못지않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송강호 박해일 주연의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가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렸고, '청년경찰'을 연출한 김주환 감독은 '사자'로 쓴맛을 봐야했다. 관객들은 "박서준의 불주먹이 파괴한 영화"라며 "감독부터 구마의식을 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평했다.
8월, 저예산 영화들의 반란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이 478만 관객을 동원하고, '변신'(감독 김홍선) '유열의 음악앨범'(감독 정지우) 등 많은 상업영화들이 나왔지만, 관심을 받은 건 저예산 영화인 '벌새'(감독 김보라)와 '우리집'(감독 윤가은)이다.
두 작품은 어린 아이들의 시선으로 각각의 시대상을 그려냈다. 직관적인 어린아이들의 시선은 사회 문제를 더 아프게 꼬집었고, 많은 어른들을 반성하게 했다. 특히 남성 중심인 충무로에서 두 여성 감독의 활약은 변화하는 영화계 흐름을 보여줬다.
9월, 그저 그랬던 추석 영화들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감독 권오광), '힘을 내요 미스터리'(감독 이계벽) '나쁜 녀석들: 더 무비'(감독 손용호)가 추석 연휴를 겨냥해 나왔다. 최종 승자는 '나쁜 녀석들: 더 무비'였다.
사실 영화계에서는 세 작품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나쁜 녀석들'은 연출, 스토리, 개연성, 연기 등 그 어떤 것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게 없어서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457만 관객을 돌파하며 반전 흥행에 성공했고, 일각에서는 "운때가 잘 맞아떨어져 관객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10월, '82년생 김지영' 논란 속 호평
캐스팅 단계부터 논란이 된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이 베일을 벗은 달이다. 원작 동명의 소설인 '82년생 김지영'은 앞서 '페미니즘 논란'에 휩싸인 바 있어 영화 역시 '평점 테러'에 시달려야 했다. 지난 5월 개봉한 '걸캅스'와 비슷한 흐름이다. 하지만 날카롭고 차가운 느낌의 원작과 달리 따뜻하게 풀어내 많은 이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깨는 계기가 됐고, 367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현실 로맨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감독 김한결)도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배우 공효진, 김래원의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연기와 로맨틱 코미디는 많은 커플들의 '필람무비'(필수 관람 무비)로 등극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개봉 8일 만에 손익분기점은 150만 관객을 돌파했고, 총 292만 관객을 동원했다.
11월, 스크린 점령한 '겨울왕국2'
역시나 '겨울왕국2'(감독 크리스 벅·제니퍼 리)가 올해 다섯 번째 천만영화에 등극했다. 이렇게 된 데는 스크린 독과점의 공이 크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대형 영화관의 스크린을 장기 집권하며 다른 영화들의 설자리를 잃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겨울왕국2'는 시즌1보다 "재미없다"는 평에도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인 대책위원회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겨울왕국2'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지적하며 영화법 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달에는 정지영 감독의 '블랙머니'가 탄탄한 내용과 배우 조진웅, 이하늬의 호연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겨울왕국2'에 처참하게 밀렸다. 또한 '나를 찾아줘'(감독 김승우)로 14년 만에 충무로로 복귀한 이영애 역시 관심에서 벗어났다. 오랜만에 작품으로 이영해는 활발한 홍보활동까지 펼쳤지만, '겨울왕국2'의 스크린 독과점에는 당해내지 못했다.
이 가운데 천정명 주연의 영화 '얼굴없는 보스'(감독 송창용)는 '자전차왕 엄복동'만큼 혹평을 받았다. 시대 흐름과 동 떨어지고, 건달 미화, 천정명의 어색한 연기력 때문이다. 한 관객은 "이 영화를 한 번 더 볼 바에 군대 한 번 더 갔다오는 게 나을 정도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12월, 전쟁 ing
뜨거운 연말이다. 지난 9월, 추석에 이어 또 한 번 영화 '빅3' 전쟁이 발발했다. 박정민 마동석 주연의 영화 '시동'(감독 최정열) 이병헌 하정우 주연의 '백두산'(감독 이해준·김병서) 최민식 한석규 주연의 '천문: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가 그 주인공이다.
관객들의 반응을 비교했을 땐 '천문:하늘에 묻는다'가 우세하다. 최민식과 한석규의 '미친 연기력'과 허진호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빛을 발했다는 평이다.
하지만 '백두산'이 독보적인 흥행질주를 하고 있다. 이병헌·하정우의 '코믹 케미'와 화려한 CG 등 배우들의 열연과 풍성한 볼거리가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개봉 사흘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선 '백두산'은 개봉 8일째 45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 가운데 맷데이먼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영화 '포드V페라리'(감독 제임스 맨골드)가 호평에 호평을 거듭하며 역주행하고 있다. 또 '나이브스 아웃'(감독 라이언 존슨) 역시 몰입도 높은 전개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영화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부 영화 팬들은 "'겨울왕국2'에 밀려 이런 좋은 영화들을 못 본다는 게 아쉽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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