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과 베끼기, 유사프로그램만 양산될까 우려
[더팩트|강일홍 기자] 트로트로 통칭되는 성인가요계는 한동안 전통가요 프로그램 제작에 인색한 방송사를 향해 원망의 목소리를 많이 냈다. 그동안 가요계에서는 공영방송인 KBS 사장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채널을 가동해 트로트 프로그램 신설을 요구했다. 남진 송대관 설운도 등 가요계를 대표하는 가수들은 종종 국회에서 '트로트 살리기 세미나'를 갖고 방송사들이 트로트 프로그램 활성화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트로트는 언제부터인가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전파매체로부터 홀대를 받았다. 트로트가 남녀노소 대부분의 시청층이 골고루 좋아하고 즐기는 장르임에도 아이돌 프로그램이나 일반 예능프로그램과 달리 젊은층 시청자들이 외면한다는 이유에서다. 방송프로그램은 광고를 떼놓고 설명할 수 없고, 결국 두터운 시청률을 수반하는 경제논리를 피할 수 없다. 같은 시청률이라도 타깃 시청자(광고 소비층)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얘기다.
올해 방송가 최고의 화두는 트로트의 부활이다. 올 상반기 TV조선 음악 예능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이 높은 시청률로 폭발적 관심을 불러모으면서다. 방송을 넘어 콘서트 열풍으로 이어지며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공연계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미스트롯' 신드롬과 함께 출연 가수들의 몸값이 치솟고, 이들이 등장하는 방송프로그램은 예외없이 시청률 상승을 이끌었다. 트렌드는 언제든 바뀌고 관심도 바뀐다. 방송계도 마찬가지다.
◆ 새해 '미스터트롯' '트로트 나가수'등 새 프로그램 줄줄이 대기
'미스트롯' 이후 방송사들이 잇달아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나서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비슷한 색깔로 벤치마킹하거나 아예 똑같은 포맷으로 진행중인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만 최근까지 4~5개에 이른다. 지난 5월 '미스트롯' 종영 두달 뒤인 7월 지역 민영방송 9개사가 공동제작한 KNN '골든마이크'는 스타성 부재의 아쉬움속에도 지방 방송사상 역대급 시청률인 13% 를 기록하고, 유튜브 조회수 1400만회를 기록했다.
종편채널 MBN이 새로 선보인 '보이스퀸'은 지난 5일 불과 방송 3회 째만에 8.102%(종합1위-예능1위, 닐슨코리아 제공)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열기를 달구고 있다. 주부들의 노래에 관한 열망, 그리고 숨겨진 재능을 발굴한다는 취지로 출발한 이 프로는 트로트를 포함한 전 장르를 망라해 시청층을 넓히고 주목도를 더했다. '미스트롯' 3회 시청률(7.743%)을 뛰어넘고 최종 시청률(18.1%)을 경신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 '골든마이크' '보이스퀸' 등 '미스트롯' 방식 그대로 벤치마킹
지상파도 트로트 프로그램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MBC가 준비 중인 '트로트 나가수'(가제)는 '나는 가수다' 시리즈의 트로트 판이다. '나는 가수다'는 실력파 가수들을 무대에 올려 서바이벌의 장점을 접목한 지상파 대표 음악경연프로그램으로, 최근 일고 있는 트로트 열기를 통해 4년여 만에 중장년 시청자들의 니즈와 만나게 됐다. SBS는 주현미 설운도 진성 등 5명의 가수들과 해외에서 진행하는 트로트버스킹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미스트롯'으로 트로트 열기를 촉발시킨 TV조선도 조만간 '미스터트롯' 방영을 앞두고 있다. '미스트롯' 남자가수 편 격인 '미스터'는 새해 초 첫 방영을 앞두고 최근 강원도 일대 콘도에서 참가자들의 합숙 트레이닝 겸 카메라 워크숍을 가졌다. 참가자 중 한 명인 신인가수 R씨는 "남자가수들의 대결장인 이 프로그램엔 이미 상당한 인지도를 쌓은 가수들까지 합류하면서 벌써부터 뜨거운 경쟁과 신경전이 만만찮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봇물이 터진 것처럼 터져나온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제작 열기는 최근 방송가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대변해주고 있다. 트로트 프로그램이 늘면서 기성 가수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어느 순간 '트로트 홀대'라는 말이 무색해진 셈이지만, 여전히 기획력 부재라는 한계는 남아있다. '골든마이크'처럼 '보이스퀸' 역시 기존 '미스트롯' 성공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처럼 찾아온 트로트 열기가 시청률에 목 맨 유사프로그램만 양산되다 사그라드는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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