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서기 1999년'의 리드보컬로 가수활동, '거짓말' 등 수많은 히트곡 배출
[더팩트|강일홍 기자] 록 밴드 출신 조항조는 독특한 음악적 세계를 구축한 가수로 통한다. 그의 노래는 확실히 다르다. 똑같이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에 등장해도 시청자들에게 조항조는 뭔가 다른 색깔을 가진 가수로 인식돼 있다. 록 발라드 리듬을 가미한 애절하고 사연 깊은 서정적 노래를 많이 부른 탓이다.
전통가요 또는 대중가요로 불리는 성인가요계는 소위 '뽕'이 가미된 정통 트로트가 중심축을 이룬다. 최근엔 젊은 팬층이 두터워지면서 다소 빠르고 신나는 분위기의 변형 세미 트로트가 선호되는 트렌드다. 조항조는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그가 드라마 OST '사랑찾아 인생찾아'를 처음 선보였을 때 시청자들은 어디선가 들은 듯한 친숙한 멜로디와 함께 그의 미성(美聲) 음색에 깊이 매료됐다.
1978년그룹사운드 '서기 1999년'의 리드보컬로 가수활동을 시작한 조항조는 20년 뒤인 1997년 발표한 '남자라는 이유로'가 빅히트를 치면서 성인가요계를 뒤흔드는 인기 가수로 거듭났다. 이후 '만약에' '사나이 눈물' '거짓말' '옹이' 등 슬로우 비트 발라드와 트로트를 섞어놓은 듯한 음악들을 주로 불렀다. 기존 트로트와 비교되는 그만의 경쟁력이자 동력인 셈이다.
조항조는 자신의 이런 노래 스타일을 좋아하는 마니아 층이 폭넓게 확산되면서 대중적 인기가수로 거듭났다. 그리고 가요계가 인정하는 라이브 콘서트의 강자로 우뚝 섰다. 그의 공연에는 늘 전국 각지에서 열성팬들이 몰려든다. '거짓말' 같은 노래 인생 41년을 살고 있는 트로트계 신사와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서울 상암동 <더팩트> 사옥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남자라는 이유로'를 발표하면서 음악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것으로 안다. 결과적으로 이 곡은 인생곡이 되지 않았나.
제 인생곡이란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사실 그 이전까지 록밴드 활동에 익숙했기 때문에 트로트로 전향한다는 게 쉽진 않았어요. 무엇보다 음악적으로 낯설었기 때문이죠. 정통 트로트는 소위 '뽕짝'이라고 말하는 4분의 2박자입니다. 요즘엔 약간 빠른 댄스를 가미해 세미 트로트란 변형된 장르로 많이 바뀌었지만 기본 흐름은 변함이 없어요. 저는 그동안 해온 음악에 R&B를 믹스해 저만의 스타일을 찾은 셈이에요. 처음엔 어색했지만 자꾸 부를수록 익숙해지더라고요. 트로트와 발라드의 중간 지대에서 새로운 형태의 변형 장르가 빛을 본 것이죠.
조항조는 록밴드 시절 팝과 록, 펑키, 펑키솔, 디스코 등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며 음악적 깊이를 더했다. 79년 첫 밴드 앨범을 내고 활동했지만 이렇다할 대중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8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적 팝스타들의 공연을 접하며 음악에 빠져들었다. 96년 미국 영주권을 반납하고 국내 가요계에 복귀, 이듬해인 97년 '남자라는 이유로'를 발표했다. 이 노래의 히트에는 IMF라는 특수한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했다. 그는 "대중 가요는 히트하려면 때론 운도 따라야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곡은 원래 나훈아가 부른 '무시로'라는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였다고 들었다. 그리고 시대적 아픔이 있는 노래라는 얘기도 있다.
나훈아 씨가 불러 히트한 노래 '무시로'의 원곡이었죠. 그런데 나훈아 씨가 가사를 바꾸고 새로 곡을 붙여 '무시로'를 불렀어요. 현재의 '남자라는 이유로'는 다시 가사를 만들어 설운도 최진희 씨를 거쳐 박우철 씨한테 갔고요. 박우철 씨가 음반을 냈지만 활동을 거의 안 해, 다시 저한테 왔는데 가사는 그대로여도 리듬이나 가창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 불렀어요. 편곡자(작곡가 송태호)에게 트로트 느낌을 빼달라고 주문했고, R&B 악기사운드를 접목해 분위기 자체가 달라진거죠. 송태호 씨와는 함께 밴드활동을 한 경험이 있어서 음악적 교감은 있었어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IMF라는 국가적 위기와 맞물린 노래이기도 해요.
이 곡은 당시 IMF로 구조조정을 겪는 직장인들과 명퇴, 실직자들 사이에 '남자를 위로하는 곡'으로 통했다. 애절하고 구성진 그의 목소리에 실려 중장년 남성팬들의 애창곡으로 불리며 깊이 각인된다. '누구나 웃으면서 세상을 살면서도 말못할 사연 숨기고 살아도/ 나 역시 그런저런 슬픔을 간직하고 당신 앞에 멍하니 서있네/ 언제 한번 가슴을 열고 소리내어 소리내어 울어 볼 날이/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그 세월이 너무 길었어~'. 조항조는 "녹음을 할 당시부터 사랑 때문이든 경제적 이유이든 힘든 남자의 절절함을 노래의 중간 곳곳에 의도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라이브 콘서트에 유독 강한 편이다.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은 가수 중 한명으로 인정받는데 록밴드 시절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하나.
그런 평가를 해주신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죠. 정기적으로 유료 관객 콘서트를 한다는 게 꼭 히트곡만 많다고 되는 건 아니잖아요. 록 밴드 시절은 비록 대중적 인지도가 없는 무명가수였어도,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그 시기에 갈고 담금질한 음악적 토대가 바탕이 돼 라이브 무대에 대한 자신감을 키웠으니까요. 다만 공연은 관객과의 교감인 동시에 음악적 성취감을 확인하는 곳이기도 해요. 가수가 흥행만을 위해 무대에 서는 건 아닙니다. 공백과 휴식은 반드시 필요하고, 언제 어느 시기에 진행해야 적절한 지 인터벌의 사이클을 놓고 늘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조항조는 2009년 부산을 시작으로 처음 전국 투어콘서트를 시작했다. 이후 6년간 단독콘서트를 꾸준히 진행하며 라이브 가수의 경쟁력을 키웠다. 후배가수 장윤정과 콜라보를 시도하며 공연계 트렌드 변화를 이끌었고, 지난해와 올해 김연자, 구창모 등과 각각 두 차례씩 콜라보 무대를 갖기도 했다. 콘서트 무대와는 별개로 매년 한 차례씩 송년 디너쇼를 갖고 있다. 올해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 12월 24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갖는다. 그는 "디너쇼의 특성상 전국에서 열성팬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가운데 진행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 OST곡으로 열풍을 일으킨 '사랑찾아 인생찾아'는 기존 스타일과 다른 느낌으로 조항조의 매력을 극대화했다는 평을 들었다.
글쎄요, 솔직히 가수로서 저한테는 행운이었요. 오랜 기간 활동하면서 처음 느껴본 특별한 경험이었고요. 아시다시피 드라마 OST는 트렌드를 좇기 때문에 발라드 가수가 대세를 이루잖아요. 사실 이 곡은 잘 들어보시면 이전 히트곡 '만약에'와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어쩌면 제작진이 이를 알고 처음부터 저를 겨냥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아무튼 '사랑찾아 인생찾아'는 제 첫 OST곡이었고, 이후로 최근까지 5곡을 더 부르게 됐어요. 팬들도 저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거죠. OST에도 적합한 가수라는 말을 듣는 건 영광이고 기쁨입니다. 대중들로부터 젊고 감성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평가를 듣는 셈이니까요.
지난 2014년 부른 '사랑찾아 인생찾아'는 드라마 제작진이 기획단계부터 수많은 후보가수들을 제치고 조항조를 낙점했다. 드라마의 내용에 맞게 느린 발라드보다는 트로트 선율에 빠르고 경쾌한 리듬이 필요했다. 또 주말드라마의 특성상 남녀노소가 다 좋아할 대중적 취향도 고려됐다. 예상대로 이 곡은 전국민적 히트곡으로 부상했다. 전국 투어콘서트에서도 앙코르 곡으로 자주 소환될만큼 한동안 인기를 누렸다. 이후 그는 '그놈의 사랑' '사랑꽃' '브라보' '최고의 결혼' '오빠가 뛴다' 등의 드라마 OST를 불러 호평을 얻었다. 동시에 두 개 드라마에서 한꺼번에 제의를 받을 만큼 역량있는 OST 가수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최근 1~2년 사이 주옥같은 음원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성인가요계에서는 이런 예가 많지 않은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요즘 저는 목소리 절정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상의 컨디션인 지금 가능한 한 많은 곡을 발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사실 트로트쪽에서는 1년에 한곡씩만 발표해도 많다고 하잖아요. 히트하든 하지 않든 보통 짧게는 1~2년, 길면 3~5년씩 타이틀곡으로 미는 게 관행으로 굳어져 있죠. 한 곡이라도 일단 팬들의 귀에 익숙해져야 더 많은 분들이 따라 부르고 히트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나름 히트곡이 많이 있고, 제 노래의 특성상 일부러 찾아 듣는 마니아들이 많은 편이에요. 이 많은 곡을 한꺼번에 방송에 소개할 방법도 없지만, 온라인과 SNS에만 음원을 공개했는데도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조항조는 2년 전부터 올해까지 3년간 '기다림' 시리즈 음반 3편을 연달아 출시했다. 각 음반에 10곡씩을 담았다. 최근 싱글 '수고했다'까지 31곡을 발표했고 나머지 4곡도 마무리해 곧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최근 몇년간 국내 최고의 유명 작사 작곡가 분들이 주신 수많은 곡 중에 35곡을 엄선했다"면서 "곡 하나 하나가 저한테는 모두 소중해서 따로 타이틀곡을 정하지 않고 콘서트 때마다 번갈아 부른다"고 했다. 올해 정규 음반 외에 내놓은 싱글 '수고했다'는 자신을 향해 묻고 답하는 메시지를 담아 더 특별하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칭찬한다는 의미를 새겼다.
-오는 24일 크리스마스 디너쇼를 앞두고 컨디션 조절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평소 목소리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따로 목을 관리하지는 않아요. 체력유지가 곧 목소리를 보호하는 일이니까요. 저는 매일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연습을 하는데 몸 컨디션이 안 좋으면 즉각 반응이 나옵니다. 미세하지만 목소리에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술은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마시는데 요즘엔 아예 1~2잔 정도로 대폭 줄였고, 담배는 수십년 전부터 피우지 않습니다. 대신 틈나는 대로 걷기 등 유산소 운동을 하죠. 기본 근력운동은 항상 하고요. 무대에서 노래하는 일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평소 관리를 해두지 않으면 탈이 날 수 있어요.
조항조는 지난해 63빌딩 디너쇼에 이어 이번 하얏트 호텔 디너쇼를 앞두고 최상의 컨디션을 위한 체력보강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10월 11월 행사가 많아 체력을 많이 소진했다"면서 "디너쇼는 팬들이 많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어지겠지만 그럴수록 더 파워풀한 무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대 위에서 강약조절이 가능한 가수다. 이를 위해 요즘 직접 피아노나 기타 연주로 가볍게 곡 다듬는 시간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한다. 올 송년 디너쇼에서는 기존 히트곡 외에 '기다림' 시리즈 음반에 실린 신곡들이 많이 소개될 예정이다.
조항조는 음악적 스펙트럼이 크고 넓은 가수로 정평이 나 있다. 출발점도 다르다. 배호 나훈아 이미자의 정통 트로트를 동경하고 따라부르다 가요계로 뛰어든 가수들과 구분되기 때문이다. 팝, 록, 펑키, 펑키솔, 디스코 등 록 밴드 시절 경험한 음악적 다양성이 지금의 '조항조 색깔'을 만드는 기틀이 됐다.
그의 매력은 차분함과 은근함이다. 한순간 폭발하는 대중적 인기보다는 조용한 가운데 음악적 공감대를 이어가는 스타일이다. 팬들의 가슴에 뚜렷이 각인된 강렬한 존재감은 다름아닌 그의 노래다. '남자라는 이유로'(1997) '사나이 눈물'(2001) '만약에'(2005) '거짓말'(2009) '정녕'(2011) '사랑꽃'(2014) 등 그가 부른 노래는 모두 주옥같은 히트곡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거짓말'은 지금도 라이브 카페 등지에서 중년들의 사랑을 받는 애창곡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했다는 그말도 거짓말/ 돌아온다던 그말도 거짓말/ 세상의 모든 거짓말 다해놓고/ 행여 나를 찾아 와있을/ 너의 그마음도 다칠까/ 너의 자리를 난 또 비워둔다/ 이젠 더이상 속아선 안되지/ 이젠 더이상 믿어선 안되지/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다시 한번만 더 나 너를/ 다시 한번만 더 너에게 나를 사랑할 기횔 주어본다.' 10년이 넘는 인기곡 '거짓말'의 가사와 조항조의 음색은 우리 일상사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꾸준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조항조는 또 '기다림 시리즈'(待, Waiting For You 1,2,3)를 순차적으로 발매하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내 이름' '옹이' '후' '고맙소' 등 애절함을 더한 보다 깊고 서정적인 노래로 보답하겠다는 각오다. 지금껏 추구해온 음악세계를 스스로 즐기면서 완성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이런 자신감 때문일까. 인터뷰 중에도 그는 '트로트 발라드' 원조, 신(新)라이브 강자다운 포스를 내내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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