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여가수 협박논란' 털어내고 2년 만에 복귀, 신곡 '평행선' 호평
[더팩트|강일홍 기자] 문희옥(50)은 이미자 주현미 김용임과 함께 정통 트로트의 맥을 잇는 주역으로 평가받는 가수다. 여고시절인 80년대 후반 트로트 하이틴스타로 가요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8도 디스코 사투리 메들리'로 무려 360만장의 음반 판매 기록을 갖고 있다.
문희옥은 꿋꿋이 자신만의 색깔을 지켰다. 데뷔 후 32년간 300여곡(11집)을 불러 40여곡의 히트곡을 냈다. "팬들이 선호하는 최적화된 장르를 굳이 바꿀 이유가 없었어요." 그가 오래도록 대중적 사랑을 받아온 비결이기도 하다.
문희옥이 데뷔 32년 만에 스타일과 이미지를 바꿨다. 최근 KBS1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등에 잇달아 출연하며 새로운 변화로 눈길을 끌고 있다. 노래는 물론 의상까지 파격이다. 오리지널 정통 트로트 장르를 벗고 흥겨운 디스코 리듬을 가미한 빠른 EDM곡으로 선회했다. 대중의 선호도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을까.
꽃길만 걸을 수 없는 게 인생사다. 앞서 그는 '후배 여가수 사기협박'이란 불명예 소송에 휘말렸다. 뒤늦게 무혐의로 밝혀졌지만 큰 상처를 입었다. 아픔을 겪으면서 덩달아 굴곡진 인생사도 알려졌다. 그간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스페셜 인터뷰는 지난 25일 서울 상암동 한 카페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불미스런 소송에 휘말리며 대중 가수로서 겪지 말아야할 아픔을 맛봤다.
살면서 누구나 힘든 일은 한 두차례 겪게 마련이에요. 저 역시 예상치 못한 고통에 시달리며 또 한 번 세상을 알게 됐어요. 아끼고 사랑했던 후배 가수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선배로서 더이상 상처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언을 해줬는데 그걸 협박으로 몰고 가 난감했어요. 다 지나간 일을 다시 들춰내고 싶진 않지만 2년간 하루 하루 숨 막히는 나날들은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워 모두 다 포기할까 생각한 적도 있으니까요.
문희옥은 KBS1 '가요무대'와 '전국노래자랑'에 최근 잇달아 출연하면서 복귀를 알렸다. 2017년 '후배 여가수 사기협박'이란 불명예 소송에 휘말린 지 2년 만이다. 그는 전 소속사 대표가 같은 소속사 후배 여가수를 성추행한 사실이 알려진 뒤, 이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협박논란에 엮였다. 해당 신인 여가수가 법적대응에 나서면서 불똥이 튀었다. 당시 제기한 사기협박 부분은 1년여 만인 올 2월 무혐의로 최종 종결됐으나 무대로 돌아오는데 다시 1년 가까이 걸렸다.
-뒤늦게나마 억울함이 풀리고 팬 곁에 다시 돌아와 다행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 역시 피해자의 한 사람일 뿐이에요. 같은 소속사 선배라는 것, 그리고 대중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가수라는 점 때문에 사건이 더 크게 부각됐어요. 물론 선배가수로서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사건을 키우기 위해 저까지 '사기'나 '협박' 같은 무시무시한 올가미에 가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에요. 진실은 언젠가 꼭 밝혀지게 돼 있고 억울함이나 오해도 결국 풀리게 돼있어요. 그런데 그땐 이미 모든 걸 잃은 뒤의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받은 고통과 피해는 되돌릴 수 없잖아요.
문희옥은 심한 우울증에 6개월간 화병 치료를 받았다. 사건에 휘말린 뒤 가장 힘든 일은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여고시절 데뷔 후 줄곧 노래만 알고 살아 생활인으로서는 무지했다. 한마디로 세상 일엔 깜깜했다. 십 수년간 모든 수익은 소속사가 대부분 다 가져갔고, 문희옥은 따로 돈을 모으거나 자신 소유 주택 하나 마련하지 못했다. 소속사가 해체된 후 그는 오히려 자신 명의 통장으로 빚만 잔뜩 떠안았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좌절감에 무너져 내렸다. 그는 "답답하고 힘들 때는 천창을 바라보며 펑펑 울었다"고 했다.
-지금 다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응원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동안 누구로부터 어떤 위로를 받으며 견딜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비온 뒤에 땅이 더 단단히 굳는 것처럼 저에게 쏟아진 시련이 한 단계 더 성숙할 기회가 된 것 같아요. 저는 절벽 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어요. 희망이 아예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아들을 향한 모정과 신앙의 힘, 그리고 언니와 형부 등 가족들이 곁에서 다독거려주지 않았다면 정말 생을 포기했을지도 모르죠. 세상 모든 일은 마음 먹기 달려있다고들 하잖아요. 모든 걸 다 잃었다는 걸 깨닫고 인정하고 내려놓는 순간이 돼서야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설 용기가 생기더군요.
문희옥은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하면서 데뷔 32년 만에 처음으로 'NG'(녹화 중 실수장면)라는 걸 냈다고 털어놨다. 그는 "객석에서 제 노래에 맞춰 춤추고 환호하는 장면을 보고 저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했다. 불과 2년의 공백이었지만 그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문희옥은 "가요계에 나 하나 없어진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는 자포자기 심정이었지만, 이젠 향후 더 멋진 무대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현재 설운도 김혜연 등이 있는 새 소속사에 둥지를 튼 건 후배 가수 조정민과의 인연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무슨 얘기인가.
제가 아는 한 조정민은 멀티가수로 대성할 재목감이에요. 끼가 넘치는데다 무엇보다 배움의 자세가 돼 있고, 겸손하고 예의 바른 친구예요. 조정민이 '가요무대'에 출연을 앞두고 제게 창법 등 노래 지도를 부탁한 적이 있어요. 받아들이고 습득하는 속도가 꽤 빠르다고 느꼈는데 방송 후 반응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잘 소화한 셈인데 지금은 저를 '스승님'이라고 불러요. 주변의 가까운 지인들이 '기왕이면 같은 소속사에 몸담으라'고 권유를 많이 했고, 저 또한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가짐으로 한집 식구가 된 거죠.
문희옥은 올초 최종 무혐의 결정이 난 뒤 설운도 김혜연 등이 포진한 루체엔터테인먼트에 합류했다. 그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요계를 영원히 떠날 생각을 했다"면서 "노래 대신 하나님의 찬송과 간증을 하며 전혀 새로운 삶을 살고자 마음을 먹었는데 소속사 식구들과 인연이 닿으면서 (마음을) 되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창 인기를 누릴 때는 몰랐는데 곤경에 처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뼛속까지 가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신곡 '평행선'의 반응이 빠르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스타일이 크게 바뀌었는데 이런 변화는 처음 아닌가.
맞아요, 데뷔 후 처음이에요. 조금 변화를 준 게 아니고 180도로 확 바뀌었다고 보시면 되요. 그동안 정통 트로트만 고수해왔기 때문에 EDM 스타일의 디스코 리듬(템포 134)이 생소할 수도 있어요. 일단 곡이 빨라서 엄청 신나고 흥겹죠. 의상 콘셉트도 미니 스커트와 반바지의 언밸런스를 절묘하게 매칭시켰어요. 가장 문희옥스럽지 않은 노래와 변화이면서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는 말들을 많이 들어요. 반응이 폭발하고 있으니 일단은 대성공이죠.
문희옥은 복귀 이후 각종 가요프로그램 섭외 1순위로 올라섰다. 전국 9개 지역민방이 공동제작하는 '전국TOP10'을 시작으로 MBC '가요베스트', OBS '스타가요쇼' 등에 잇달아 출연했다. KBS1 '전국노래자랑'과 함께 성인 대중가수들의 자존심인 '가요무대'에도 출연했다.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 일정은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그는 "정말 오랜만에 다시 데뷔시절의 신인가수 같은 느낌으로 돌아온 기분"이라며 '가요무대' 녹화장에서 만난 선후배님들이 '안방가수가 돌아왔다'고 격려해주고 응원해 감격했다"고 말했다.
-이번 곡은 요즘 세태와도 무관치 않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가.
평행선은 영원히 서로 만날 수 없는 두개의 선(線)이잖아요. 맞서거나 마주 보기만 할 뿐 하나가 될 수 없어요. '너는 너밖에 나는 나밖에',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죠. 여야 대치정국일 수도 있고, 노사갈등이나 고부 또는 연인갈등일 수도 있어요. 모두 현실을 살고있는 우리들의 얘기인 셈이죠.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듣는 분들마다 서로 존중하고 양보해야 상생한다는 철학적 의미에 공감한다고 해요.
'평행선'은 송태호의 세련된 편곡이 귀에 쏙 들어온다. 중독성 있는 반복 리듬은 툭툭 던지듯 내뱉는 문희옥의 중저음 터치의 목소리와도 잘 어울린다는 평가다. '나는 나밖에 모르고 너는 너밖에 모르고/ 그래서 우리는 똑같은 길을 걷지 평행선/ 나는 나밖에 몰랐지 너는 너밖에 몰랐지/ 그래서 우리는 만날 수 없는 거야 평행선/ 아직 사랑하고 있는데 서로 바라보고 싶은데/ 나는 다가서지 못하고 다른 길을 가고 있어/ 우리 서로 다시 만날 수 없는가 캄캄한 미로를 헤매이네/ 우리 서로 사랑할 수는 없는가/ 끝없는 평행선 걷고 있네'.
-여성스러운 이미지와 달리 성격은 화끈하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스타일인지 말해줄 수 있나.
성격상 '모' 아니면 '도'이고, 매사 화끈한 편이에요. 내면으로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심성을 가졌지만 강한 남성스타일로 비칠 때가 많죠. 가요계에서도 선후배들과 어울리면 대체로 이런 말을 들으니까요. 이런 스타일을 고수하게 된 건 어쩌면 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색일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남을 워낙 쉽게 잘 믿는 편이라 손해를 보는 일이 종종 생겨요. 좀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를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게 편하긴 한데 이제부터라도 조금은 지혜롭게 믿고 판단하려고 해요.
문희옥은 강원도 삼척에서 2남 3녀 중에서 4째로 태어나 학업을 위해 서울로 왔다. 막내 동생이 요절한데 이어 큰 언니가 유방암 수술을 한 아픔을 갖고 있다. 그의 소신은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다. 끊고 맺는 게 분명해 어려움에 부딪치면 피하거나 숨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성격이다. 전 소속사 대표의 후배 여가수 성추행 사건으로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이런 극약처방(劇藥處方) 스타일로 재기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팬들은 밝고 환한 모습을 다시 보게 돼 반기는 분위기다. 현재 느낌이나 소감, 향후 계획이나 소망이 있다면 밝혀달라.
저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어요. 돈도 모르고 연애도 몰랐어요. 노래 외의 일엔 관심이 없었어요. 짧은 기간 많은 걸 배우고 터득한 것 같아요. 2년의 공백을 가지면서 마치 알에서 깨어난 듯 다시 태어난 기분입니다. 이제라도 새장 속에서 벗어나 훨훨 날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련을 통해 거듭날 기회를 얻은 것같아 행복해요. 다시 도약할 자신이 있어요. 내년 데뷔 33주년엔 더 멋진 콘서트로 팬 분들께 보답할 수 있었으면 해요.
문희옥은 여고시절인 80년대 후반 데뷔와 동시에 승승장구했다. 일약 인기 가수로 명성을 떨쳤다. 록과 댄스 음악이 물결치던 90년대 이후 주춤했지만, 그는 '성은 김이요' '사랑의 거리' '강남 멋쟁이' '정 때문에' 등 정통 트로트를 끝까지 고수하며 자신만의 영역을 지켰다. SBS 가요오락프로 '도전 1000곡'과 tvN '오페라스타 2011' 등에 출연하며 실력파다운 트로트여제의 모습으로 거듭났다. 올 연말 작곡가 송강호 30주년 기념콘서트에 메인 게스트로 출연한 뒤 내년엔 자신의 단독콘서트를 계획 중이다.
문희옥은 신곡 '평행선'을 처음 받아들고 화를 냈다고 한다. 정통 트로트 가수에게 EDM의 빠른 곡을 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한 발 양보했고, 약간의 편곡을 거친 뒤 내놓은 이 노래는 예상밖의 호평을 얻으며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더구나 누구보다 인생의 쓴맛을 본 경험이 문희옥을 새롭게 담금질했다. 깊은 절망의 터널을 거친 그는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인생의 길흉화복은 변화가 많아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란 세상사의 이치를 실감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장윤정 홍진영 김연자, 그리고 최근의 송가인까지 트로트 가요계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특히 김연자는 일본 엔카계를 수십년간 장악했지만 국내 복귀후 힘든 시기를 겪다 '아모르파티'로 존재감을 되살렸다. 문희옥의 파격 변신이 또다른 주목을 받는 이유다.
꼭 2년 전 이맘 때쯤 필자는 그의 아픈 곳을 건드리는 기사([단독] 가수 문희옥 '여후배 사기협박', 매니저는 '성추행' 공동 피소)를 보도했다. 필자와 만남 자체가 부담스러웠을 문희옥은 "많이 원망스러웠지만 속내를 털어내고 나니 후련하다"고 했다. 시종 굳은 표정의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에야 비로소 활짝 웃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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