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강일홍 기자] 대낮에 대로변 인도에서 한 남자가 한 여성을 폭행하고 있다. 볼썽사나운 모습에 어떤 이들은 혀를 찬다. 무자비한 주먹질에 아무도 선뜻 말리지 못하고 서성거리기만 한다. 그때 도로 맞은편을 지나가던 까만 스포츠카 폰티악 한 대가 급히 중앙선을 넘어와 차도에 섰다. 차에서 훌쩍 뛰어내린 건장한 남자는 여자를 때리던 남자를 다짜고짜 길바닥에 패대기 쳤다. 이유도 묻지 않았다. 그냥 여자를 때리는 남자를 통쾌하게 응징했을 뿐이다.
사람들이 이 멋진 남자를 향해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다. 두들겨 맞은 남자의 신고로 경찰이 왔다. 자초지종을 파악해보니 그들은 연인 사이였고, 둘이 다투다가 폭행으로 이어졌다. 지나가던 남자는 왜 끼어들었을까. 그는 "이유는 없다, 단지 힘없는 여자가 맞고 있는 걸 차마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이 '터프가이'는 바로 배우 최민수였다. 영화의 한 장면이었을까. 아니다, 90년대 초 강남 한복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날 최민수는 폭행건으로 입건됐다.
2008년 4월21일 최민수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70대 노인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는 하얏트 호텔에서 지인을 만난 뒤 직접 승용차를 운전하고 이태원 중심가쪽으로 내려오던 중이었다. 평소와 달리 차량이 긴 꼬리를 물었다. 도로변 한 음식점 앞에 늘어선 불법주차가 원인이었다. 최민수가 식당 주인(노인)에게 "불법 주차 차량들을 다른 데로 옮겨달라"고 했다. 노인은 이 건물 주인이었고, 정체에 대한 미안함은커녕 되레 도발을 했다. 막무가내였다.
최민수가 입바르게 항의하자 그의 딸과 아들 등 가족들이 나와 가세했다. 금세 다툼으로 이어졌고 상대의 얼굴을 알아본 그들은 "배우가 막말 한다"며 시비를 걸었다. 음식점이 원인 제공을 먼저 했고 욕설도 노인이 더 심했지만, 언론사에 '노인폭행'이라고 제보했다. 해당 매체는 그들의 말만 듣고 자초지종 확인없이 기사화 했다. 당시 드라마 촬영 중이었던 최민수는 "논란을 시급히 잠재워야한다"는 소속사와 제작사 권유에 따라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이 드신 분과 길거리에서 말싸움을 벌인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논란의 중심에 선 것만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대중 앞에 (항상) 떳떳하고 정당해야 할 배우가 그렇게 못했다. 내 자신이 나를 용서 못하겠는데 누가 용서하겠는가? 만약 (폭행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면 나를 용서하지 말라." 그는 억울했지만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 사건은 추후 검찰 무혐의 결정이 났지만 최초 보도한 매체는 최민수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2018년 9월 17일 최민수가 서울 여의도의 한 도로에서 운전 중이었다. 한 차량이 진로를 방해하면서 신경전이 벌어졌다. 2차선에서 주행 중이던 상대 차량이 '신호 표시등'(깜빡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1차선의 최민수 앞에 끼어들었다. 급제동을 하면서 동승자가 커피를 쏟았다. 접촉사고가 난 걸로 판단한 최민수가 경적을 울렸지만 상대가 무시하고 그냥 갔다. 최민수가 급히 추월해 상대 차량 앞에 섰고 충돌사고가 났다. 실랑이와 함께 욕설이 이어졌다.
도로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상황이지만 양보와 배려가 부족하면 사소한 일도 크게 번질 수 있다. 물론 상대에 대한 에티켓이 사라지고 규칙이 무너져서 생긴 일이다. 자기 감정만 서로 앞세우다 결국 사고로 이어진 셈이다. 시비가 커진 뒤 최민수는 특수협박, 특수재물손괴, 모욕 등의 3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1심 재판부(서울남부지법 형사8단독)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최민수가 피해 차량에 공포심을 주고, 후속 추돌사고를 초래할 위험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고, 반성하지 않았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최민수는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후회하지 않아요. 저도 그 사람을 용서 못 합니다. '연예인 생활 못 하게 하겠다' 이게 말입니까. 그런 말을 누가 참습니까? 그래서 손가락 욕했어요." 모든 싸움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또 어떤 경우라도 한쪽의 일방적 잘못은 없다. 최민수는 무엇을 간과했을까. 보복운전은 대형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일반인도 절대 하지 말아야할 보복운전을 대중 스타가 하고서도 반성하지 않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스타에게는 법을 뛰어넘는 또다른 잣대가 있다. 일거수일투족, 말 한마디가 곧 이미지이고, 대중의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현실의 최민수는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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