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되지 않은 스타는 어떤 모습일까. 요즘 연예계는 스타도 많고, 연예 매체도 많다. 모처럼 연예인 인터뷰가 잡혀도 단독으로 하는 경우도 드물다. 다수의 매체 기자가 함께 인터뷰를 하다 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심지어 사진이나 영상도 소속사에서 미리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팩트>는 순수하게 기자의 눈에 비친 그대로의 스타를 '내가 본 OOO' 포맷에 담아 사실 그대로 전달한다. <편집자 주>
이준혁 "미래 목표? 지금 잘 하는 게 중요해요"
[더팩트|문수연 기자] 작은 목소리에 느린 말투,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경직된 표정. 이준혁의 첫 느낌이었다. 하지만 말투만 차분할 뿐 답변에는 거침이 없었고 엉뚱함이 가득했다. "성격이 특이한 것 같다"는 말에 갸우뚱거리며 "잘 모르겠다"며 허심탄회하게 웃는 그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척'이 아니라 진짜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한 북카페에서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극본 김태희, 연출 유종선)에 오영석 역으로 출연한 배우 이준혁과 만났다. 카페 문이 열리자 그는 수줍게 인사를 하며 기자들을 맞았다. 그는 "여기가 집 같다. 계속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를 하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자리에 앉은 후 첫 질문이 나오기까지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조용한 카페 분위기에 이준혁도, 기자들도 쉽게 침묵을 깨지 못했다. 하지만 막상 질문이 나오자 그는 의외로 능청스럽게 말했다. "오랜만에 인터뷰를 한다"는 말에 이준혁은 "청와대를 그린 작품인 만큼 민감할 수도 있는데 감사하게도 좋은 반응이 많더라. 그래서 책이 많은 곳에 초대했다"고 말했다. 이에 "집무실 같은 곳에서 인터뷰를 한다"고 답하자 이준혁은 "책 보면서 인터뷰하셔도 된다"고 받아쳐 웃음을 자아냈다.
이준혁은 '60일, 지정생존자'에서 국가 테러를 모의하고 계획적으로 살아남은 오영석 역을 맡아 악역 연기를 펼쳤다. 그는 날카로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무려 9kg을 감량했다. 아직 체중을 회복하지 못한 그는 이날도 많이 야윈 모습이었다. "살이 많이 빠졌다. 힘들었을 것 같다"고 걱정하자 그는 쌓인 게 많은 듯 "자세히 말해주겠다"며 그동안 겪은 고충을 쏟아냈다.
'60일, 지정생존자' 전 영화 '야구소녀'를 촬영하며 살을 많이 찌웠다는 그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행복하고 건강한 일상을 보내서 좋았다. 하지만 곧 재앙이 닥쳐왔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살을 찌우면서 햄버거를 진짜 맛있게 먹었다. 그때 먹은 햄버거가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진짜 맛있었다"라며 햄버거 가게 이름을 언급하더니 "홍보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해 웃음을 안겼다.
그렇게 맛있었던 햄버거를 마지막 만찬으로 즐긴 뒤 이준혁은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아침에 눈을 뜬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건 무산소 운동과 유산소 운동이었다. 또 다른 다이어트 비법은 '크라이오테라피'(cryotherapy, 질소 중기가 든 차가운 기계에 2~3분 들어가 있는 치료법)였다.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인 이준혁은 궁금한 마음에 '크라이오테라피'에 도전했다. 테라피가 끝난 후에 받는 곰 모양 젤리가 그렇게 맛있었다는 그는 집에 가면 '내가 왜 살지?'라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식단 관리도 철저했다. 고구마, 닭가슴살이었다. 심지어 이준혁은 여기에 복싱까지 했다. 살이 안 빠질 수가 없었다.
이준혁은 혹독한 다이어트로 빈혈 증세까지 겪었다. 하지만 그는 얻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배고프면 예민해진다는 걸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봤다. 저는 원래 배고픈 걸 잘 버티는 몸을 가졌다. 제 친구는 배고픈 걸 못 견디겠다고 했는데 저는 그게 어떤 느낌인 줄 몰랐다. 그런데 이번에 극심한 다이어트를 하면서 친구의 속마음을 알게 됐다"며 웃었다.
'60일, 지정생존자'는 캐릭터도 표현하기 쉽지 않았고, 매회 시청자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어려운 작품이었다. 평소 댓글 등 시청자 반응을 자주 찾아보는 편이 아니라는 이준혁은 이번 작품만은 달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청자의 생각이 궁금해 찾아본 댓글에는 오영석에 대한 욕이 가득했다.
한 기자는 "오영석 캐릭터가 짜증 나는데 잘생겨서 더 짜증 난다"고 말했고, 이준혁은 칭찬이 부끄러운 듯 "드라마 내에서 세뇌를 하고 있다. '오영석은 잘생겼다'고 하니까 시청자들도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고 민망해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심 기분이 좋은지 수줍게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작품이 어려웠던 만큼 휴식 시간이 간절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스케줄이 끝나지 않아 뭘 할지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다음 스케줄을 읊었다. 평소 쉬는 날에도 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그는 "그나마 영화를 많이 본다"며 주로 혼자 영화 감상을 하는 게 유일한 취미라고 말했다.
어딘가 모를 쓸쓸함이 느껴지는 그의 말에 앞서 언급했던 친구를 말하며 "그 친구랑 보면 되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준혁은 "걔는 여자친구랑 본다. 4~5년 연애 중이다. 난 여자친구가 없다. 친구가 여자친구랑 싸우면 나랑 본다"고 씁쓸하게 답해 웃음을 안겼다.
이를 듣던 한 기자는 "외로워 보인다"며 안쓰러운 듯 그를 바라봤다. 이준혁은 "원래 제가 잘 돌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는지 "그렇다고 해서 '이준혁, 평생 독신 선언' 이런 기사 쓰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그는 "'이준혁, 가을 다가와 외로움 타' 이런 것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두 작품을 한 이준혁은 올해도 쉬지 않고 달릴 예정이다. '60일, 지정생존자' 이후 휴식이 아닌 작품을 선택한 그에게 "쉬고 싶은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많은 배우들 흔히 "쉬지 않고 연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에게서도 비슷한 말이 나올 거라 예상했지만 빗나갔다. 그는 "저는 엄청 쉬고 싶다. 그냥 하니까 하는 거다"라며 "안 쉬고 일만 하는 건 건강한 삶은 아니다. 잘 쉬고 잘 일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 다들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준혁의 엉뚱함에 웃음을 터뜨리자 그는 "다들 그렇지 않냐"고 물었다. 이에 "일은 안 하고 잘 쉬고만 싶다"고 답하자 이준혁은 "그렇게 된다는 얘기가 있던데…"라며 "인공지능이 다 하게 될 거라고 하더라"라고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하게 말해 인터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준혁은 단순한 듯해 보였지만 이상주의자의 면모도 보였다. 그와 1시간여 대화를 나누니 문득 어떤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지 궁금해졌다. 왠지 그는 자신만의 세상을 꿈꾸고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런 거 없다"며 "지금은 '인터뷰를 잘하자'라는 생각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살아보면 알지 않냐. 미래를 그린다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웃음) 오늘이 더 중요하다. 과거로 돌아가면 나에게 '지금 잘 살아'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은 인터뷰를 잘 마무리 짓고 싶다. 인터뷰를 준비한 홍보팀의 노력과 카페 대관료, 아침부터 일한 매니저 등 인터뷰 하나만 해도 복잡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니 '이거 하나 제대로 하자'가 내 목표다"라고 밝혔다.
복잡한 생각 없이 늘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이준혁이기에 매 작품 온전히 집중하고 노력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주어진 '60일, 지정생존자'를 무사히 마친 이준혁에게 이제 또 다른 역할이 찾아왔다. "쉬고 싶다"면서도 늘 열심히 달리는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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