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홍의 스페셜인터뷰<53>-유지나] 국악 트로트 성공 비결은 '득음'(得音)

이미자 주현미 문희옥 김용임 등 정통 트로트 가수의 계보를 잇는 그의 첫번째 매력은 구성진 목소리다. 저 하늘 별을 찾아 이후 속깊은 여자 고추 등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이동률 기자

국악인 출신 첫 트로트 가수...구성진 목소리 매력

[더팩트|강일홍 기자] 유지나(50)는 민요풍의 구성진 목소리가 감칠맛을 더해주는 트로트 가수다. 대학에서 판소리를 전공한 정통 국악인 출신답게 이런 독특한 창법으로 기라성 같은 중량급 가수들 사이에 빠르게 입지를 다졌다.

그는 대학졸업 후 잠시 국악인으로 활동하다 '저 하늘 별을 찾아'(98년)를 발표하며 성인가수로 변신했다. 이미자 주현미 문희옥 김용임 등 정통 트르트 가수의 계보를 잇는 대표 여가수로 꼽힌다. 주목받는 비교 불가 동안(童顔)에, 50대 여가수 중에서는 드물게 군살없는 S라인을 뽐내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저 하늘 별을 찾아' 이후론 '쓰리랑'(2005) '속깊은 여자'(2006) '고추'(2009)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주가를 올렸다. 특히 유지나 특유의 국악풍 리듬의 '고추'는 KBS2 드라마 '트로트의 연인'에서 정은지가 부른 뒤 화제가 된 노래다. '땡벌'(영화 '비열한거리') '타타타'(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등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경 음악으로 틀어지거나 또는 배우가 불러 히트한 사례는 많다.

유지나는 대학 시절 워커힐 호텔에서 MC 겸 가수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국악인으로 활동하며 판소리 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가수 데뷔 후 비교적 빠른 2010년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생애 첫 디너쇼를 가졌고, 2016년과 지난해 워커힐 호텔 공연에 이어 올 12월21일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네번째 디너쇼를 갖는다. 국악인으로 출발해 대중가수로 자리매김한 그의 독특한 이력을 직접 들어봤다. 스페셜인터뷰는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위치한 그의 자택(타운하우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유지나는 국악과 트로트를 접목한 독특한 창법을 구사하며 같은 트로트라도 뭔가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스페셜인터뷰는 서울 자곡동 유지나 자택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동률 기자

-국악과 트로트를 접목한 독특한 창법이 매력이다. 가요계에선 사실상 국악인 출신 첫 트로트 가수로 평가받고 있다.

중학교 때 국악원에서 처음 국악을 배웠어요. 국악계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판소리를 전공했고요. 지금은 대중가요의 중심에 서 있지만 제 삶에 국악과 민요를 뗄 수가 없죠. 아무래도 목소리에서부터 민요풍 느낌이 날 수밖에 없어요. 처음엔 트로트 장르로 바꾸면서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지만 지금은 판소리, 민요, 트로트, 발라드 등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창법을 달리 표현하는 저만의 색깔을 갖게 됐어요. 같은 트로트를 불러도 '뭔가 느낌이 시원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죠.

유지나는 고3때 KBS 전국국악콩쿠르에 출전해 학생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중학교(故 박홍남)와 고등학교(故 정권진) 시절부터 당대 국악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심청가' '춘향가' 등을 사사했다. 대학 이후에도 성창순 김수현 등 국악계 거목들의 문하생으로 판소리를 완창(흥보가) 했다. 87년 MBC 노들가요제 입상을 계기로 대중가요계에 진출, 데뷔곡 '소문났네'를 발표하고 4년간 활동한 뒤 다시 국악인으로 돌아가 판소리 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데뷔 후 대중가수로 '유지나'라는 이름으로 주목을 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신인가수가 데뷔해 인정을 받는다는 건 실력이 웬만큼 출중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에요. 요즘엔 유튜브나 SNS 같은 다양한 노출기회가 있지만, 예전엔 신문이나 방송에 잠깐 관심을 받는 것조차도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어요. 더구나 저는 국악을 하다 방향을 틀다보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기획사에도 들어가 활동했지만 처음엔 트로트 자체가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에 깊은 맛을 낼 수 없었고 당연히 도드라질 수가 없었던 거죠.

특이하게도 그는 트로트 가수로 데뷔 후에야 뒤늦게 득음(得音:목소리의 특성을 완전히 파악해 자유로이 노래할 수 있는 경지)을 했다고 한다. 득음은 흔히 판소리 창자(唱者)의 음악적 역량이 완성된 상태로 성음을 얻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남성 국악인의 경우 하성 중성 상성을 두루 섭렵해야 실력을 인정받는데 판소리 할 때까지만 해도 유지나는 상성 격인 가성(假聲)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가성이 완성되고부터 국악 특유의 목소리가 트로트에 묻어났다"면서 "늘 달고 살던 편도선이나 쉰 목소리가 나는 성대결절도 저절로 사라졌다"고 했다. 득음이 바로 국악 트로트의 성공비결인 셈이다.

IMF 직후 발표한 저 하늘의 별을 찾아는 치열한 삶의 경쟁에 내몰린 평범한 직장인들부터 대기업 회장까지 모두가 공감하는 노래로 부각되면서 그의 인생곡이 됐다. /코로낙스

-2001년 복귀하면서 내놓은 민요풍의 노래 '저 하늘의 별을 찾아'가 단기간에 히트하면서 인생곡이 됐다.

우연히 현숙 언니가 음반 녹음하는 날 녹음실에 따라갔어요. 그때 박성훈 작곡가를 처음 만났는데 제 노래 스타일을 테스트 해보더니 무릎을 탁 치시더라고요. 그렇게 탄생한 노래가 '저 하늘의 별을 찾아'예요. 저한테 딱 어울리는 곡을 만들어주신거죠. 당시엔 막 가성(假聲)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트로트에 자신감이 생긴 참이었는데 노래도 마침 IMF 직후 마음이 허전한 사람들의 심정을 건드리는 내용이었어요. 암울한 시기에 삶에 지친 분들이 가사만 들어봐도 가슴 찡하게 와닿는다고 했거든요. 운좋게 히트 3박자가 맞은거죠.

'오늘은 어느 곳에서 지친 몸을 쉬어나 볼까/ 갈곳없는 나그네의 또 하루가 가는구나/ 하늘을 이불삼아 밤이슬을 베개삼아/ 지친 몸을 달래면서 잠이드는 짚시인생/ 아침해가 뜰때까지 꿈속에서 별을 찾는다'. 유지나의 맛깔스런 목소리에 실린 이 노래는 당시 사회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며 대중의 마음을 건드렸다. 치열한 삶의 경쟁에 내몰린 평범한 직장인들부터 대기업 회장까지 모두가 공감하는 노래로 부각됐다.

-가요계에서 '유지나'는 한번 뱉은 말은 어떤 불리한 상황이 오더라도 반드시 지키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성격이길래 그런 말을 듣는지 궁금하다.

원래 성격이 똑 부러져요. 5남1녀 중 저만 여자로 자라다보니 어려서부터 끊고 맺는 걸 명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제 존재감은 묻힐 수밖에 없었어요. 성인이 된 뒤엔 이런 스타일을 저도 모르게 더 선호하게 되더라고요. 일(노래)에 욕심이 많은 만큼 때론 손해보더라도 한번 약속한 일은 꼭 매듭을 지어야 맘이 편해요. 무엇보다 의리를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안고 살죠. 마음이 통하면 상대가 누구든 제 가족이나 친구처럼 챙기고 보답해야 직성이 풀려요. 제 삶의 방식일 뿐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가 대인관계에 의리를 중시하는 이유는 자신의 언행에 대한 엄격한 책임감 때문이다. 이런 그의 스타일을 주변에선 '화끈하고 통큰 가수'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는 늘 채찍질을 한다고 한다. 반면 실제 성격은 매우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다. 그는 "산이 있으면 골이 있듯 세상사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늘 번갈아 오지 않느냐"면서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나누고 베풀면서 더불어 사는게 최고"라고 말했다.

유지나는 향후 전국 지자체 문화회관 중심의 중규모 콘서트 투어를 하며 중장년 어르신들을 위한 의미있는 도네이션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활동기간에 비하면 히트곡이 많은 편에 속한다. 최근 낸 신곡도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들었다.

너무 행복하죠. 가수들이 행사나 이벤트 무대에 서면 보통 두 세곡 정도 부르는데 저는 다른 동료가수들의 노래를 부를 틈이 없어요. 앙코르 곡으로 1~2곡을 추가해도 제 히트곡을 다 소화할 수 없으니까요. 더구나 객석의 팬들 대부분이 다른 가수들의 노래보다는 제 히트곡 중에서 불러주길 원해요. 요즘엔 '김치'와 '부탁' 등을 신곡으로 밀고 있는데 '기존 민요나 국악 스타일과 다른 느낌이 있다'는 평을 많이 들어요. 빠르고 흥겨운 리듬 때문에 초등생들 사이에서도 좋아하는 트로트 곡 중 하나가 됐어요.

유지나는 2001년 민요와 트로트를 접목한 '저 하늘의 별을 찾아'로 복귀한 뒤 단기간에 주목받는 가수로 부상한다. 이후 '쓰리랑' '속깊은 여자' '쑈쑈쑈' '고추' '하늘아 하늘아' '무슨 사랑'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고, 2009년 전통가요대상 남녀가수왕에 오른다. 이중 '쓰리랑'은 독일 플라잉문 제작사가 예술전용영화관 상영용으로 만든 파독 간호사 다큐영화 '나의 살던 고향'에 삽입돼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소개된 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디너쇼는 일반 콘서트와 달리 특별한 티켓파워가 없으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올 연말에도 디너쇼를 준비한다고 들었다.

디너쇼는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가장 멋진 무대로 팬들한테 보답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죠. 티켓값 이상의 뭔가를 되돌려드린다는 마음을 저는 한번도 잊어본 일이 없어요. 별도의 돈을 더 들여서라도 팬분들께 '명품쇼'란 만족감은 꼭 안겨드려요. 당연히 준비 기간이 많죠. 보통은 3~4개월전에 공연기획자가 호텔을 예약하고 출발하지만 저는 계획이 서면 1년 전부터 직접 대관을 해요. 올해는 12월21일(그랜드 힐튼 호텔)로 잡았는데 게스트는 아직 비밀이에요.

유지나는 그동안 색깔있는 디너쇼를 많이 했다. 자신의 주특기인 민요와 국악을 트로트와 접목한 퓨전 디너쇼 무대로 객석을 매료시켰다. 그는 "팬들에게 여운이 남는 무대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희생하고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유지나는 2010년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생애 첫 디너쇼를 한 뒤 자신감을 얻었다. 3년 뒤 부산 벡스코에서 초대형 콘서트를 가졌고, 다시 2016년과 2018년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두 차례 디너쇼를 통해 흥행가수 입지를 다졌다. 지난해까진 송해 조영남 등이 게스트로 깜짝 출연해 갈채를 받았다.

의리와 강단이 있는 여가수. 평소 화끈하고 통큰 가수로 평가받는 유지나는 손해를 좀 보더라도 한번 약속한 일은 꼭 매듭을 지어야 맘이 편하다고 말했다. /코로낙스

-최근 새 소속사에 둥지를 틀고 본격활동을 재개했다고 들었다.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네, 소속사 갈등으로 한동안 마음고생을 좀 했어요. 누구의 잘 잘못을 떠나 두번 다시 소속사엔 안 들어가려고 다짐했는데 그 놈의 '의리' 때문에 또 의기투합했어요. 마지막 둥지라고 생각하고 한번만 더 믿어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여러 계획이 있지만,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전국 지자체 문화회관 중심의 중규모 콘서트 투어를 오래전부터 꿈꿔왔어요. 최대한 공연 비용을 줄이면 일정 금액 이상 수익을 낼 수 있고, 이를 지역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주려고 해요. 또 제 주 팬층인 중장년 이상 어르신들을 위한 의미있는 도네이션 활동도 병행해야죠.

유지나는 코로나 C&C그룹이 새로 출범시킨 코로낙스엔터테인먼트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홍자 등 미스트롯 출신 가수들이 소속된 신생 기획사다. 그는 "그동안 몇차례 소속사에 몸 담아봤지만 이렇다할 도움을 받지 못하고 이런 저런 갈등으로 상처만 입었다"면서 "이번엔 대표가 과거 저와 일로 인연이 있던 분이어서 '의리'로 다시 뭉치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성인가요계 특성을 고려해 가수가 소속사에 완전히 묶이는 것보다는 쌍방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귀띔했다.

유지나는 혼자 어렵게 5남1녀를 키운 어머니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해 누구보다 살뜰한 효녀 역할을 하며 가족간 우애를 다진다. 사진은 지난달 부산의 한 별장에서 오붓한 가족 여름휴가. /코로낙스

충남 부여가 고향인 유지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갓 마흔살 된 어머니 혼자 5남1녀를 키웠고, 그는 당시 나이는 어렸지만 어머니의 집안살림을 도우며 소녀가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부재와 가난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청소년기를 어둡게 했지만, 밝은 내일의 희망은 결코 잃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국악예고 시절 전국국악콩쿠르에 대상을 수상했고, 안정적 합격선인 한양대 대신 4년 장학금을 받는 추계예술대를 선택했다. 자신의 이런 과거 기억 때문에 그는 '희망을 잃지 말고 공부하라'며 수년 전부터 학비의 어려움을 겪는 모교 후배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미자 주현미 문희옥 김용임 등 정통 트로트 가수의 계보를 잇는 그의 첫번째 매력은 구성진 목소리다. 국악인에서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뒤 뒤늦게 '득음'(得音:소리를 얻음)을 경험했고, 창법에 따라 다양하게 장르(판소리+민요+트로트+발라드)를 넘나드는 '유지나 색깔 트로트'를 만들어냈다.

유지나는 "처음엔 트로트가 왜 그리 힘들고 어려운지 몰랐는데 그 한계를 극복하고 나서야 고진감래(苦盡甘來: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다진 대중가수로서 그는 인터뷰 내내 어떤 조바심도 없는, 달관의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으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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