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토양 주신 나훈아 선배님에 대한 감사함이 먼저죠"
[더팩트|강일홍 기자] 가수 강진(64·본명 강옥원)의 인생곡은 '땡벌'이다. '땡벌'을 통해 그는 30년이란 긴 어둠의 '무명 터널'을 벗었다. 그는 "'땡벌'은 나훈아 선배의 깊고 묵직한 음악적 토양 위에 대중 가수로 탄생하는 발판이 됐고 영원히 저를 빛내주는 상징곡이 됐다"고 털어놨다.
'땡벌'은 나훈아가 1987년 발표한 자작곡이고, 4년 뒤인 91년 원로가수 정원이 '인생은 본전'이란 곡으로 가사만 바꿔 불렀지만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더 지난 뒤에야 강약이 적절히 배합된 강진 특유의 리드미컬한 리메이크 곡으로 빛을 봤다. 이를 보면 '히트곡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강진은 75년부터 나이트나 카바레 등 밤무대 등에서 활동하다 86년 '이별의 신호등'을 발표하고 정식으로 가요계에 데뷔한다. 이런 결심엔 당시 유명 그룹 가수였던 '희자매'의 멤버 김효선과 운명적 만남이 한몫을 했다. 그는 "음반을 내면서 아내보다 더 인기있는 가수가 될 것을 다짐했지만 '땡벌'로 알려지기까지 그렇게 긴 세월 그늘에 가려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웃었다.
'땡벌'이 트레이드마크처럼 굳었지만, 가수로서 뒤늦게 그의 존재감이 부각한 데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 가창(歌唱) 덕분이다. 그가 독특한 제스처와 함께 선보인 맛깔스런 '땡벌'의 매력은 원곡 가수 나훈아조차 인정할 정도다. 그의 특별한 가수 인생 이력을 직접 들어봤다. 스페셜인터뷰는 지난 16일 그의 아내 김효선이 운영 중인 라이브카페 '땡벌'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10여년 전 '땡벌'로 대중적 인기를 얻기까지 오랜 무명시절을 겪었다. 노래가 주목을 받은 사연도 매우 극적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부르면서 히트하지 않았나.
알 수 없는 게 세상 일인 것같아요. 제 의지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거든요. 인기란 것은 더욱 오묘합니다. 강 기자님이 더 잘 아시다시피 대중적 관심 속에 조명을 받는 것은 어떤 운명적 계기를 만나야 가능한 것 같아요. 저는 30년을 발버둥치며 노래를 부르고도 '인기'와는 늘 동떨어지는 삶을 살았죠. 그러다 2000년대 중반 영화 '비열한 거리'의 조인성 씨가 한번 흥얼거린 뒤 한방에 모든게 달라졌어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언젠가 한번은 꼭 만나 고마운 마음을 직접 전하고 싶어요.
-'땡벌'의 원곡자는 선배가수 나훈아다. 알고보면 뒤늦게 인기 대중가수로 발돋움하게 된 것도 나훈아와 인연이 계기가 된 걸로 알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승기 조인성 씨가 불러 촉매제가 된 건 사실이지만 저한테 첫번째 은인은 역시 나훈아 선배님이시죠. 누굴 좋아하고 자꾸 따라하면 닮아간다고 하잖아요. 노래 스타일도 그렇고요. 더구나 선배님의 노래로 제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으니 이런 기막힌 인연도 없는 거죠. 집사람과 함께 선배님을 찾아가 '땡벌'을 제가 부르게 해달라고 졸랐어요. 저를 예쁘게 보셨는지, 아니면 끈질긴 열성에 안쓰러우셨는지 결국은 허락해 주시더군요.
'땡벌'은 강진이 2005년에 발표한 5집 타이틀 곡이다. 나훈아가 원곡자이지만 정작 대중적 히트는 강진의 리메이크 곡(김기표 편곡)에서 터졌다. 평소 나훈아 모창을 많이 한 강진이 특별히 부탁해 타이틀곡으로 허락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일은 2006년 액션 영화 '비열한 거리'를 통해서다. 유하 감독이 개인적으로 좋아해 영화 삽입곡으로 선택했고, 조인성이 불렀다. 이후 드라마와 각종 오락프로그램에서 이승기·슈퍼주니어·VOS 등이 부르며 10대들 사이에서도 인기곡이 됐다. 아이돌 가수들의 무대인 KBS 2TV '뮤직뱅크'에서도 1위에 오르는 이변을 낳았다.
-한국 트로트 가요계는 나훈아 남진 이후 자신만의 색깔로 무장한 개성파 남자 가수들이 많이 등장했다. 스스로는 어떤 색깔이라고 평가하나?
솔직히 제 스스로 저만의 색깔을 말씀 드리기는 좀 쑥스럽지만 목소리에 감칠맛이 들어있다고들 해요. 같은 발성이라도 리듬의 강약이 뚜렷해 친숙하게 와닿는다고 합니다. 저는 특히 나훈아 선배님의 느낌이 많이 난다는 얘기를 들어요. 어려서부터 워낙 모창을 많이 한데다 선배님의 히트곡이 많다보니 밤무대에서도 많이 부르게 되더라고요. 무명시절엔 '목소리가 나훈아 닮아서' 또는 '이름이 너무 강하고 세서' 뜨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름이 알려지고 나니 목소리에 묘한 매력이 있다거나 이름에도 강렬한 임팩트가 있다고 해요. 그래서 인기가 모든걸 말해준다 걸 실감했죠.
강진은 "무명시절에도 가요계 선배들이 '희망을 잃지 마라, 언젠가 반드시 대형가수가 될 것'이라며 격려했다"고 말했다. 강진은 평소 자기관리에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평소 꾸준히 땀 흘리는 운동을 통해 활력 넘치는 체력을 유지하고, 술 담배를 멀리하며 항상 최고의 목소리 컨디션을 유지해오고 있다. 또 차분하고 깔끔한 성격에, 나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스타일이어서 '영국 신사'란 별명도 붙어있다. 선후배 사이에 양보를 미덕으로 삼는 건 기본이고 유흥업소 시절에도 그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불필요한 구설에 오르기 싫어 손님과의 직접 대면을 피했다.
-무명기간이 길어 뒤늦게 대중적 주목을 받았음에도 히트곡은 많은 편이다. 노래 자랑이나 노래방 레퍼토리로 유독 많이 불리는 이유가 있다면.
가수들은 대부분 비슷한 심정일 거예요. 누군가 팬들이 공개무대에서 자신의 노래를 불러주는 것만큼 뿌듯한 일은 없죠. 특히 저는 오랜 무명세월을 거친 '인생역전의 가수'잖아요. 이제는 좀 무뎌질 때가 됐는 데도 일반인 출연자가 '전국노래자랑' 같은 데서 제 노래를 레퍼토리로 들고 나와 불러주면 여전히 찡해요. 저는 노래방엘 거의 가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팬들로부터 '가사와 리듬이 마치 자신의 얘기처럼 공감되는 노래여서 자주 부르게 된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강진은 '땡벌'이 히트하면서 대중스타 가수로 올라섰지만, 이보다 훨씬 먼저 발표한 '삼각관계'(94년)를 좋아하는 중장년 열성팬들이 더 많다. 이 노래 역시 히트는 '땡벌'로 주목을 받은 뒤에야 가능했다. 그는 "가수가 아무리 맘에 든 곡이라고 내놔도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면 히트곡이 되지 못한다'는 지론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땡벌' '삼각관계' 외에도 히트곡은 '화장을 지우는 남자' '연하의 남자' '남자는 영웅' '달도 밝은데' '공짜' 등 10여곡에 이른다.
-80년대 중반에 정식 데뷔했는데, 당시엔 이름없는 밤무대 가수로 활동을 한 것으로 안다. 아내 김효선 씨는 그 무렵 인기 가수여서 결혼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당연히 쉽지 않았죠. 저는 미래가 불투명한 무명가수였고 아내는 꽤 이름 난 인기 여성 그룹 가수였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뭐 그렇게 애걸복걸 쫒아다닌 기억은 없어요. 지인의 소개로 만났는데 어떤 매력 때문인지 순순히 저한테 기대왔거든요. 만나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순탄하게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래서 배우자와의 운명적 인연은 따로 있는 모양이에요. 다행스럽게도 장모님도 '성실하고 반듯하다'며 저를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강진은 87년 서른 한살에 두살 아래인 김효선과 결혼했다. 김효선은 3인조 여성그룹 '희자매'의 멤버다. 희자매는 소울 가수 인순이가 중심이 돼 1977년 김재희 이영숙을 초기멤버로 결성됐다. 인순이 대신 성주리가 잠깐 참여했다가 6개월 만에 빠지고 김효선이 합류한 뒤 86년 해체 때까지 8년간 활약했다. 발랄한 춤과 과감한 의상을 소화한 원조 걸그룹으로 활동하며 히트곡 '실버들' 외에도 '다이아나' '핫스터프' 등 다양한 팝 리메이크 곡으로 인기를 누렸다.
-가수를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요즘처럼 가요계 진출과정이 시스템화 돼 있지 않던 시절엔 가수의 길이 더 힘들었을 것같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은 누구나 같다고 믿어요. 반세기가 훌쩍 지난 옛날 얘기 같지만 요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한번 꽂히면 남의 말은커녕 부모 말도 듣지 않잖아요. 노래를 하겠다고 말 그대로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으니 불효는 말할 것 없고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다행히 금방 실력을 인정받아 밤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비록 무명가수라도 많게는 하룻밤 7~8곳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개런티가 높지 않아도 워낙 여러곳을 뛰기 때문에 돈벌이는 괜찮았어요.
강진은 전남 영암 출신이다. 이름 때문에 종종 강진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일곱 살 때부터 트로트 신동으로 불리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그는 "코흘리개 꼬마 때부터 동네 분들이 '너는 노래를 타고났다'는 말을 많이 해주셨다"고 했다. 스물 한 살에 무작정 상경해 작곡가 사무실을 기웃거렸다. 다행히 실력을 인정받고 밤무대 등에 설 기회를 잡았다. 정식 데뷔한 이후에도 주현미('쌍쌍파티') 문희옥('8도 디스코 사투리 메들리') 등과 함께 '강진 밤무대 메들리' 시리즈로 한때 고속도로 인기차트를 휩쓸었다.
-트로트 곡은 대중 흡인력과 사이클이 긴 편이어서 기존 곡과 병행해 홍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곡 '막걸리 한잔'은 벌써부터 반응이 좋다.
네, 워낙 속도감 있게 반응이 생겨 신곡이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예요. 음반을 낸 지 6개월도 안됐는데 전국 노래강사들 사이에 '선곡 1순위'로 꼽는다고 들었어요. 45년째 노래를 불러도 요즘도 신곡을 낼 땐 항상 긴장을 해요. 이번 곡은 무엇보다 기교를 빼고 담백하게 부르는데 초점을 맞췄어요. 평생 어깨 힘을 빼는 게 골퍼들의 과제라면 가수들한테는 아마도 목소리 절제가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일 거예요. 화려하게 기교를 내면 당장은 멋져보여도 팬들은 금방 싫증을 내거든요.
'막걸리 한잔'(류선우 작사 작곡)은 토속적인 정취를 물씬 풍기는 가장 서민적인 소재를 선택한 곡이다. 막걸리를 매개로 3대에 걸쳐 세대를 뛰어넘는 한국 남자들의 끈끈한 유대감을 표현한 노래다. 복고풍 가사와 리듬이 강진 특유의 강약 리듬으로 감칠맛을 내며 중장년 남성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소재는 지극히 토속적이지만 세련된 펑키리듬에 따뜻한 인간미와 정감이 느껴지면서 잔잔한 감동으로 표출됐다는 평이다.
-가요계 선후배들 사이에 두루 사랑받는 중견가수로 자리매김했다. 마지막으로, 오랜 가수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아쉬움이나 향후 바람이 있다면.
가수로서 아쉬운 게 왜 없겠어요. 무명시절부터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오다보니 뒤를 되돌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살아보니 세상살이는 음과 양, 흑과 백, 행복과 불행, 뭐든 양면이 있더라고요. 입장 차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누군가와 갈등을 빚고 다툴 수도 있어요. 부득이 그런 일을 겪게 되더라도 중요한 건 이를 풀어가는 해법 아닐까요. 대중 가수의 토대는 팬들의 사랑과 관심입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좋은 노래를 불러 팬과 교감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죠.
강진이 암시하는 갈등이란 다름아닌 전 소속사와 미정산금에 대한 법적 분쟁이다. 오랜 무명시절을 벗고 뒤늦게 대중스타로 주목을 받고 있는 그는 이 일로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6월 강진의 전 소속사가 강진을 상대로 낸 미정산금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강진의 법률대리인은 "재판부의 일부 배상판결은 회계 업무를 담당했던 전 소속사의 오류에 따른 것이고, 패소에 대한 비중은 전 소속사 측이 더 크다"고 설명한 바 있다.
강진과 아내 김효선은 연예계 소문난 금실부부다. 김 씨가 '땡벌' 대박히트 이후 10여년간 직접 매니지먼트를 하면서 한때 '실과 바늘'이란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강진은 "아내는 원래 모든 걸 저한테 양보해온 착한 여잔데 대중적 인기를 얻고나니 갑과 을의 위상이 되레 거꾸로 바뀌더라"며 웃었다.
아내가 운영 중인 라이브카페 '땡벌'(강남구 논현동)은 사소한 구설조차도 원치 않는 평소 스타일 때문에 늘 조심스럽지만, 조용한 외조로 후원하고 있다. 70~80년대 인기 그룹 가수 출신답게 아내가 '나만의 음악적 공간을 갖고 싶다'며 적극 나서는 바람에 끝까지 만류하지 못했다고 한다.
강진은 '최고' '급상승인기' '섭외 1순위' 등 정상급 가수로 모든 희열을 다 누려봤다. 그럼에도 몸에 밴 겸손은 변함없는 팬사랑을 유지하는 비결로 굳었다. 그는 "겉으론 좀 투박해보여도 심성은 한없이 곱고 여리다"고 웃었다. 인터뷰 내내 보여준 그의 이미지는 구수한 사투리만큼이나 소박하고 담백한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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