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요사 흥미로운 '여가수 스타탄생 계보' 주역
[더팩트|강일홍 기자] 가요계는 올해 '미스트롯' 흥행 대박과 함께 등장한 걸출한 여가수 송가인에 주목하고 있다. 트로트 가수는 아이돌 가수와 달리 통상 수십년 활동을 거쳐 점진적으로 스타반열에 오른 경우가 많다. 한데 송가인은 '미스트롯' 방영 3개월 만에 초고속 존재감을 각인시키며 돌풍을 일으켰다.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마다 시청률이 치솟고, 그가 부르는 '한많은 대동강'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듣고싶은 팬들의 열기에 공연장은 연간 올 매진을 기록하는 이변을 만들었다.
이런 현상이 언론에 조명되기 시작한 뒤 기성가수들은 일시적이나마 소위 '멘붕'(멘탈붕괴 또는 이탈) 상태에 빠져 우왕좌왕했다. TV 영향력과 위력을 실감하면서도 '반짝 인기'가 결코 지속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과 분석을 하며 자위(自慰)했다. 심지어 "대중가수의 생명과 근원은 히트곡인데 변변한 자기노래가 없는 신인가수들이 무슨 뒷심을 이어갈 것인가"라며 폄하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예측은 빗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기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고, 그 중심에 송가인이 있다.
송가인의 열기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송가인은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이후 대한민국 트로트 여가수 스타탄생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한국가요 100년사에 수많은 스타가수가 명멸한 가운데 이미자-주현미- 장윤정에 이은 이른바 '20년주기 스타탄생설'의 주역이 됐다. 이미자는 59년 '열아홉 순정'으로 공식 데뷔했다. 20년 뒤 주현미는 '고향의 품에'로, 다시 20년 뒤 장윤정은 '강변가요제'(99년)로 가요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송가인이 맥을 잇는 모양새가 됐다.
◆ '엘리지 여왕' 이미자-'약사가수' 주현미-'트로트 부흥 주역' 장윤정-'미스트롯' 송가인
가요계 여가수 스타탄생 계보의 원조는 단연 이미자다. 그는 열 다섯 살 되던 해인 1957년 KBS의 '노래의 꽃다발'과 HLKZ TV 아마추어 노래콩쿨 '예능 로타리'(58년)에 잇달아 출전해 모두 1위에 오르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듬해인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뒤 '동백 아가씨' '흑산도 아가씨' '여자의 일생' 등으로 인기를 이어갔다. 가요계는 뛰어난 노래실력으로 전후 세대의 고단한 삶을 위로한 이미자에 열광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엘레지의 여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주현미는 61년 광주 동구 서석동에서 중국 산동성 출신 아버지 주금부와 한국인 어머니 정옥선 사이에 4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한국 화교 3세' 출신이다. 정식 가수 데뷔곡은 85년에 발표한 '비내리는 영동교'이지만, 그는 중학교 때 이미 노래를 시작했다. 아버지의 지인인 작곡가 정종택에게 레슨을 받고 음반(75년)을 냈다. 중앙대 약학대 시절 '강변가요제'에 출전해 입상한 뒤 약사가수로 알려졌고, '눈물의 부르스' '신사동 그사람' 등을 히트시키며 80년대 가요계를 장악했다.
장윤정은 서울예대에 재학 중이던 99년에 '강변가요제'에 출전해 '내 안의 넌'으로 대상을 수상하면서 가요계를 노크했다. 한때 재연배우로 활동할 만큼 힘든 시기를 겪지만,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며 전화위복을 맞는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트로트곡 '어머나'는 그의 인생곡이 됐다. 각종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당당히 1위를 석권하고 연말 가요 시상식까지 휩쓸면서 트로트 열풍을 일으켰다. 특히 기존 중장년층에서 2030 세대까지 팬층을 끌어올리며 트로트 대부흥기를 불러왔다.
◆ '송가인 열풍' 속에 비친 이미자-주현미-장윤정 등 흥미로운 '20년 스타탄생 주기설'
탄생한 시기와 데뷔 연도는 약간씩 달라도 이들은 정확히 20년 주기로 가요계의 '신드롬급 인기와 열기'를 확산시킨 주인공들이란 사실에 이견이 없다. 혹자는 "송가인을 이미자와 동급 반열에 올리는 게 가당치 않다"고 말하고, 다른 혹자는 "지루하게 긴 아날로그 시대와 빠르게 확산되는 디지털 시대는 가중치가 달라야 맞다"며 송가인의 대중적 관심도와 파급력을 높이 평가한다. 송가인은 같은 미스트롯 출신 가수 중에서도 유일하게 이미자의 전통트로트 장르를 고수하고 있다.
송가인은 진돗개로 유명한 전남 진도가 고향이다. 그 역시 어려서부터 음악적 자질이 도드라졌다고 한다. 초등학생이던 12살 때 이미 전국 판소리경연대회 일반부 대상을 수상한 실력파다. '전국노래자랑' 진도군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스트롯'을 거치며 확인된 그의 심금을 울리는 가창력은 가히 독보적이다. 가수로서의 음악적 평가를 넘어 다채널시대 빼어난 예능감을 발휘하며 멀티 엔터테이너로서도 거듭나고 있다. 그가 외치는 '송가인이어라' 한마디에 팬들은 열광한다.
스타는 스스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말은 대체로 일리가 있다. 아무리 기본기를 갖췄어도 대중 매체에 노출될 기회나 평가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애초 스타로 부상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실력만큼 확실한 경쟁력은 없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의 '낭중지추'(囊中之錐)는 재능과 실력을 가진 사람은 언젠가는 스스로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는 말이다. 이미자 주현미 장윤정이 그랬듯이 '송가인 열풍' 속에 비친 '20년 스타탄생 주기설'이 새삼 흥미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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